따뜻한 퇴비 더미에 몸을 맡기고 쉬는 고양이. 이곳이 바로 퇴비 찜질방이다.
그런데 이 고양이가 요즘 즐겨 찾는 곳이 있다. 거기 배를 깔고 늘어지게 잔다. 바로 퇴비 더미 위다. 퇴비란 화학비료와 달리, 유기농사에서 곡식에게 주는 거름이다. 고양이가 새끼까지 밴 다음부터는 부쩍 더 퇴비 위에 몸을 맡긴다. 그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고양이가 왜 퇴비 더미를 좋아할까? 따뜻하기 때문이다. 퇴비는 발효가 되면서 열이 난다. 무수히 많은 미생물이 활발하게 생명활동을 펼친다. 퇴비 재료가 되는 것은 온갖 농업 부산물, 음식 찌꺼기, 닭똥, 사람의 똥오줌, 톱밥, 쌀겨, 깻묵, 산의 부엽토 등이다. 이것들을 시루떡 안치듯 켜켜이 쌓으면서 물을 알맞게 뿌려주면 발효가 일어난다. 이렇게 하고 이삼일만 지나면 온도가 사진에서 보듯 70℃를 넘는다. 하지만 퇴비 거죽 온도는 50℃ 남짓. 그러니 어미 고양이도 좋지만 배 속 새끼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 아닌가.
나도 고양이에게 자극을 받아 퇴비 더미에 누워보았다. 먼저 퇴비 냄새부터 난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이 냄새가 좋다. 온갖 미생물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나는 냄새는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죽 끓이는 냄새 같기도 하고, 어머니 젖 냄새도 살짝 나는 것 같다. 좀더 미세하게 느껴보면 단내도 난다. 간장 달이는 냄새도 섞였다.
온갖 미생물이 살아 있는 곳
이런 종잡을 수 없는 냄새에 익숙해지면서 서서히 더워지는 등. 긴장하고 굳은 뼈 마디마디가 천천히 풀어진다. 온갖 미생물이 합동으로 내 몸을 뜨겁게 어루만져준다. 이름하여 ‘퇴비 찜질방’이다. 누워서 바라보는 하늘과 거꾸로 보이는 산의 나무들. 슬쩍 비껴가는 햇살과 살랑살랑 봄바람은 덤이다. 간간이 짝을 찾는 새소리는 긴 여운을 남긴다. 이렇게 퇴비 더미에 누워 있자니 산다는 게 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사람도 발효된 삶이 가능할까? 향기가 나는 사람이라면 가까이 살고 싶고, 만나고 헤어진 뒤에도 여운이 오래 남을 거다. 반면에 부패한 사람에게는 가까이 가는 것조차 겁이 난다.
오래전에 농사꾼들은 퇴비를 그냥 썩혀서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악취가 나고, 거름 효과도 적다. 오늘날은 미생물의 힘을 빌려 발효를 시킨다. 이를 우리말로는 ‘띄운다’라고 표현한다. ‘썩히다’와 ‘띄우다’는 차이가 많다. 물론 이 기준은 철저히 사람의 처지에서 바라본 것이다. 사람에게 유익한 미생물이 활동하면 발효라 하고, 반면에 고약한 냄새가 나면 부패라 한다. 부패는 사람은 물론, 곡식에게도 해가 될 수 있다.
퇴비가 발효되기 시작하면 당장 사람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냄새와 열로 그 과정을 느끼게 된다. 70℃가 넘어가면 찜질뿐만 아니라 달걀을 익혀 먹기도 한다. 달걀노른자는 70℃ 정도 돼야 익기 시작하니까 퇴비 속에서는 아주 느리게 익는다. 발효가 진행될수록 맨눈으로 보는 세계도 달라진다. 곰팡이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 누룩이나 메주에서 볼 수 있는 하얀 실처럼 생긴 곰팡이에서 덩어리진 흰 곰팡이와 노란 곰팡이까지. 퇴비 더미 속에는 수조(兆) 마리가 넘는 미생물이 빠르게 번식을 한다. 이렇게 뜨거운 열이 열흘가량 지속되다 온도가 서서히 내려가면 뒤집기를 해줘야 한다. 겉의 퇴비는 안으로, 안의 퇴비는 밖으로 나오게. 이렇게 해야 골고루 발효되고, 퇴비 더미에 남은 풀씨들은 남김없이 발아해 열로 녹아버린다. 뒤집는 과정에서 수분이 부족해 발효가 덜 된 곳이 보이면 물을 더 뿌려준다. 이렇게 뒤집기를 서너 번 해주면 퇴비가 완성된다.
<b>1</b> 퇴비 더미에 피는 곰팡이들. 눈에 보이지 않던 미생물 세계가 어느 순간 두드러지게 드러난 모습. 그 발효 과정에서 달걀이 익을 만큼 뜨거운 열이 난다.<br><b>2</b> 봄 달래무침과 오랜 시간 퇴비 열로 익힌 달걀. 묘한 조합이다.<br><b>3</b> 퇴비를 골고루 발효시키기 위해 뒤집어 준다.
미생물의 세계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가정에서 누구나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게 EM(Effective Micro-organisms)을 이용한 쌀뜨물 발효액이다. 요즘 EM은 천연세제로도 인기다. 설거지는 물론 바닥이나 화장실 청소에도 쓸 만큼. 또 빨래를 담가두면 미생물이 때를 분해해 세제도 절약되고 빨래도 잘된다. 화초나 곡식을 키울 때도 이걸 물에 묽게 타서 뿌려주면 건강하게 잘 자란다. 돈 절약도 장점이지만 더 큰 장점은 우리 몸에 좋다는 거. 그리고 환경을 정화하는 데도 놀라운 기능을 한다.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뽀얀 쌀뜨물을 1.8ℓ페트병에 1.5ℓ정도만 넣고 여기에다 설탕과 EM 원액을 조금(페트병 뚜껑으로 네 번 정도), 그리고 천일염을 찻숟갈로 한 스푼 정도 넣어 뚜껑을 닫고 잘 흔들어준다. 직사광선이 들지 않는 따뜻한 곳에 뒀다가 이삼일에 한 번 정도 뚜껑을 열어 발효과정에서 생기는 가스를 빼준다. 따뜻한 실내에서는 일주일에서 열흘이면 완성된다. 주의할 점은 살아 있는 미생물 액이니까 상온에 오래 두면 부패한다는 것. 우리네 삶이 순환하듯 한 달 이내에 다 사용하는 게 좋다.
합성세제가 수질오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강이니 환경이니를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 자신의 몸만 생각해도 된다. 우리 몸이야말로 자연 그 자체가 아닌가. 몸 안에는 수십조의 미생물이 살고, 피부에도 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다. 그러니 독한 화학세제가 몸에 좋을 리 없다.
환경을 살리는 건 곧 자신을 살리는 길이며, 자신을 살리는 길이 환경을 살리는 길이 된다. 미생물, 보이지 않는 이 세계를 존중할 때 우리 사회도 향기롭게 바뀌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