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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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이슬람 바로 알기’에 뜨거운 반응

BBC, 시리아·이집트 등 중세 이슬람 문명 다큐 방송

  • 코벤트리=성기영 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입력2009-01-13 16: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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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英,‘이슬람 바로 알기’에 뜨거운 반응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 이곳은 중세시절 꽃피웠던 이슬람 문명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여러분은 지금 로마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유적을 보고 계십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모두 아닙니다. 저는 지금 중동 하고도 시리아 땅, 바로 이라크와의 국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습니다.”

    얼마 전 전파를 탄 영국 BBC 다큐멘터리 ‘로마 그 이후 : 성전(聖戰)과 정복’의 진행자 보리스 존슨은 프로그램의 첫머리를 이렇게 장식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로마 그 이후’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사실 일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가려진 중세 이슬람 문명의 영화(榮華)를 재조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제목이 붙은 이유는,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서기 476년 이후를 ‘역사의 암흑기’로 규정해온 서구 기독교 사관에 도전적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7~14세기 정치, 군사,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번성을 누렸던 이슬람 문명의 시각에서 보면 로마시대 이후는 암흑기라기보다 오히려 전성기이기 때문이다.

    보수당 소속 런던시장이 진행해 화제

    이슬람 테러 세력에 대해 미국 못지않은 경계심이 확산되고 있는 영국에서 최근 BBC가 연말연시를 맞아 ‘이슬람 바로 알기’ 시리즈를 선보여 뜨거운 반응과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로마 그 이후’는 그 첫 편에 해당한다. 제작진은 중동의 이스라엘 시리아를 출발해 아프리카 대륙의 이집트를 거쳐 서유럽의 프랑스와 스페인을 돌며 수백 년간 중세유럽에서 기독교 문명과 ‘시소게임’을 벌였던 이슬람의 발자취를 추적한다.

    BBC가 던지는 첫 질문은, 기독교 문명권과 비교해 후발 문명권에 불과한 이슬람 세력이 어떻게 80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로마제국 영토의 절반 가까이를 지배할 수 있었느냐다.

    이 질문의 답을 찾아 BBC 제작진은 중동의 이슬람 유적뿐 아니라 한때 이슬람 세력이 지배하던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그리고 프랑스 남부 국경에서 불과 수백km 떨어진 서유럽의 ‘안방’에까지 카메라를 들이민다.

    그리고 현지 역사학자, 종교학자들의 입을 빌려 9·11테러 이후 극렬 테러세력에 의해 덧칠돼버린 이슬람 문화의 정수를 시청자들에게 보여준다. BBC 카메라는 서유럽 확장기에 이슬람 정치인들이 보여줬던 관대함을 높이 평가하는 이슬람 종교사학자의 증언도 가감 없이 전달한다. 그런가 하면 십자군전쟁에 맞서 예루살렘을 탈환한 이슬람 군사 지도자의 용맹과 우수성을 당시 기록에 의거해 담담하게 그려내기도 한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이 다큐멘터리를 집필하고 직접 취재한 보리스 존슨이 보수당 소속의 현직 런던시장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 다큐멘터리가 지난해 런던시장 선거가 있기 이전에 촬영됐다고는 하지만, 존슨 시장의 이력을 놓고 볼 때 흥미로운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수당은 이민정책에 보수적 태도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존슨 시장은 2008년 가을 이슬람 금식월인 라마단 종료를 기념하는 축제를 런던의 중심가 트라팔가르 광장에서 개최했다. 이 자리에 모인 수천명의 무슬림 앞에서 그는 100년 전 런던으로 이주해온 자신의 증조할아버지가 무슬림이었다는 사실을 당당히 밝히면서 통합과 화해의 이슬람 정신을 강조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새해 벽두 BBC4 채널에서 방송되기 시작한 ‘이슬람과 과학’ 시리즈 역시 그동안 잊혔던 이슬람의 인류문명사적 공헌을 재조명하고 있다. 진행자로 나선 영국 서리대학 짐 알 칼릴리 교수는 학계에서 촉망받는 이론물리학자다.

    영국인 어머니와 이라크인 아버지를 둔 그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태어나 교육받았다. 그러나 후세인 집권 이후 이라크를 떠나 영국에 정착한 뒤 뉴턴과 아인슈타인으로 대표되는 서구 현대과학의 영향 아래 물리학자로 성장했다.

    BBC는 이슬람 문화에 정통한 그를 앞세워 시리아 이집트 등 이슬람 국가들을 돌며 서유럽에서 현대수학, 의학, 물리학이 개가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해왔던 이슬람의 과학적 성취를 하나하나 재발견해 시청자들에게 선사했다.

    문명 공존과 연속성 강조

    사실 우리 주변에서 이슬람 과학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대수(代數)로 번역되는 현대수학의 한 갈래인 ‘알지브라(algebra)’는 물론, 화학물질을 분류하는 기본 단위인 ‘알칼리(alkali)’ 같은 용어는 모두 아랍어에서 기원했다. 컴퓨터 연산장치의 기본을 이루는 ‘알고리즘(algorism)’ 역시 마찬가지다. 알 칼릴리 교수는 묻는다. ‘알칼리’를 모르고도 현대화학이 탄생할 수 있었겠냐고. 또 ‘알지브라’가 빠진 현대수학이 과연 존재할 수 있었겠느냐고.

    BBC 제작진은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 있는 의학사 박물관을 찾아가 11세기 이슬람 문명권이 시도했던 백내장 수술 장면을 재현해 보인다. 바그다드에서는 이미 9세기부터 철학자, 신학자, 천문학자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살롱 문화’가 꽃피웠다는 사실도 전한다.

    테러전쟁에 가려져 있던 이슬람 문명을 복원하려는 시도가 곧 이슬람 문명의 우월적 지위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상호소통과 간섭 없이는 어떠한 문화와 문명도 태동할 수 없듯, 이슬람 문명 역시 서쪽으로는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 동쪽으로는 중국이나 인도 문명과 교류하면서 더욱 향기로운 꽃을 피웠다는 것이 BBC 다큐멘터리가 전하고자 하는 결론으로 보인다. 선진 서유럽과 전근대적 이슬람. 편리하지만 위험한 문화사적 이분법이 ‘문명 충돌’을 부추기는 일종의 동굴 우상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BBC의 ‘이슬람 시리즈’는 문명과 문화를 단절과 대결이 아닌, 공존과 연속성이란 프레임을 통해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읽힌다. BBC는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 간의 갈등과 경쟁은 일종의 ‘시소게임’이었다고 말한다. 시소게임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리려는 시도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다는 점 또한 BBC가 전하고자 하는 숨겨진 메시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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