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중인 주인공 콘스탄틴 역의 김태우(맨 오른쪽)와 배우들.
“새로운 형식이 필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없는 게 나아요.” 이 말이 바로 연극 연출자 유리 부투소프가 이번 공연에서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배우, 작가, 소설가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예술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며 신구(新舊) 갈등을 드러낸다. 남자 주인공 콘스탄틴(김태우 분)이 추구하는 새로운 연극형식은 유일하게 그를 인정하는 의사 도른(남명렬 분) 이외의 인물들에게는 호응을 얻지 못한다. 그의 연극은 대배우인 어머니(정재은 분)의 비웃음을 받고,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니나(정수영 분)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가 정식으로 등단해 발표한 작품들도 많은 사람들에게 혹평을 받는다. 작품은 콘스탄틴의 자살로 끝을 맺는다. 니나를 향한 사랑이 거듭 좌절되기 때문이다.
니나로 말할 것 같으면 콘스탄틴의 어머니 아르카지나의 애인이며 유명한 소설가인 트리고린(최창우 분)에게 현혹돼 모스크바로 갔다가, 그에게 버림받고 삼류 여배우로 전전하는 비련의 여주인공이다. 남녀 주인공인 콘스탄틴과 니나는 ‘갈매기’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이 작품에서 새로운 재능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경직된 사람들과 한 순진한 여인을 유혹하고 버리는 남자는 호숫가를 자유롭게 나는 갈매기처럼 순수한 영혼들을 절망으로 이끄는 원인이다.
원작자 체호프는 ‘갈매기’를 ‘4막 희극’이라 규정했다. 여기서 ‘희극’이란 비극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태도와 연관된 말이다. 체호프의 새로운 극작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사실주의 비극의 전통을 깨는 모험이었지만, 동시대인들에게서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 ‘갈매기’에서는 박진감 있게 전개되는 사건들과 새로운 세계를 불러오는 영웅의 최후를 찾아볼 수는 없다. 큰 사건들은 대부분 무대에서 묘사되지 않고 대사를 통해 전달된다. 인물들은 카드놀이를 하고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과장되지 않은 일상을 보여준다. 심지어 콘스탄틴의 자살 소식도 이러한 일상에 조용히 묻혀버린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극의 말미를 장식하는 콘스탄틴의 자살 부분이 연출자에 의해 크게 각색됐다. 원작과 달리 무대에서 자살 장면이 펼쳐지고 그의 어머니 아르카지나가 절규하는 모습까지 묘사된다. 콘스탄틴의 자살 직전, 그가 전전긍긍하는 모습 뒤로 무대전환수들이 공연이 끝난 듯 모든 대도구를 철거함으로써 희극성을 채색한다. 조용하게 절망감을 전달하는 극의 결말을 시끌벅적하게 변화시키고, 대사의 일부를 시각적인 이미지로 대신하는 점 등 새로운 연출 시도는 극중 콘스탄틴의 작업이 그랬듯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예술의전당 개관 20주년 기념작인 이 연극은 11월23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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