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 명품관 격인 서울 소공동 에비뉴엘의 샤넬 부티크(왼쪽)와 에비뉴엘 전경.
갈등은 샤넬이 롯데백화점 부산 센텀시티점에 패션 부티크를 입점하기로 한 당초 약속을 깨고, 2009년 3월 오픈 예정인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 입점을 전제로 이미 여러 요구조건을 들어줬는데도 ‘배신’당한 것에 대해 충격을 받은 것”이라며 “더 이상 자존심을 다칠 수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 ‘전면전’에 나서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샤넬 입점 약속 깨자 전면전 터져
일반 브랜드에 대해서는 대부분 ‘절대 갑’으로 통하는 대형 백화점들이 유독 해외 명품 브랜드들에 대해서는 확실한 ‘을’을 자처해왔다. 명품관 신설 등 ‘프리미엄 마케팅’에 초점을 둔 비즈니스 전략에 따라 해외 명품 브랜드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매장 공사비의 상당액을 백화점 측이 부담한다든지, 유통업체가 챙기는 마진이 명품 브랜드의 경우 일반 브랜드로부터 받는 마진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샤넬코리아 인터넷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전국의 롯데백화점에 입점된 샤넬 패션 부티크는 3개 점, 화장품 매장은 23개 점이다. 면세점 등을 제외한 전국의 총 샤넬 매장 수는 패션 부티크가 7개, 화장품이 54개다. 업계에 따르면 샤넬은 국내 화장품 매출의 절반가량을 롯데백화점 유통망을 통해 거둬들이고 있다.
부티크 입점 공방을 둘러싼 갈등의 불똥은 먼저 화장품 부문으로 튀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근 샤넬 화장품 매장에 인테리어 ‘레이아웃 조정’과 관련된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대체로 백화점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해온 샤넬 화장품 매장의 인테리어를 일부 ‘조정’하겠다는 뜻이다. 샤넬은 명품 이미지를 관리하는 ‘골든 룰’의 하나로 어느 백화점에서든 항상 가장 눈에 띄는 자리를 차지한다. 따라서 사실상 매장 축소 또는 이동을 의미하는 ‘레이아웃 조정’이 이뤄지면 샤넬의 이런 전략에 상처를 입는 것으로 화장품 업계는 진단하고 있다.
업계가 이번 조치를 센텀시티 파문에 따른 ‘보복조치’로 보는 것에 대해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매출 하락 등 엄정한 평가 기준에 맞추고 로컬 브랜드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내린 결정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늘 최고 대우를 바라는 샤넬에 계속 끌려다닐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판단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샤넬이 롯데 측이 제시한 ‘레이아웃 조정’ 의견에 합의하지 않게 되면 최악의 경우 올 연말까지 롯데에 입점한 샤넬 화장품 매장 상당수가 철수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한 명품 화장품 브랜드 영업담당 임원은 “이미 업계에서는 샤넬 매장이 철수될 경우를 전제로 한 액션 플랜을 논의하고 있으나, 샤넬이나 롯데가 최악의 결과를 내는 결정을 내릴 것인지에 대해선 의심스러워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편 샤넬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의 조처를 묻는 질문에 내부적인 입장 정리 시간을 거친 뒤, “브랜드 방침상 비즈니스와 관련된 이야기는 공개하지 않으며 아직 결론 나지 않은 일에 대해 코멘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샤넬과 롯데의 대결이 매장 철수로까지 이어지면 양측 모두에 해를 끼치는 ‘루즈-루즈(lose-lose)’ 게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롯데 처지에선 최고급 브랜드 중 하나를 잃어 고급 백화점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샤넬은 백화점에 의존하는 판로 특성상 매출에 직격탄을 맞게 된다. 판매 인원 감축으로 이어질 경우 민주노총 산하 서비스연맹에 가입된 판매사원 노조의 압력을 받을 수도 있다.
‘대표 명품 브랜드’와 국내 유통 최강자 간의 자존심 대결은 극적 화해를 맞게 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전쟁’으로 확대될 것인가. 대결의 확실한 결과가 수일 내 가시화될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