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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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악몽 한기주 “혼을 던져요”

올림픽 최악 부진 마음고생 딛고 새 출발 … 마무리 역사 새로 작성 남다른 각오

  • 윤승옥 스포츠서울 야구부 기자 touch@sportsseoul.com

    입력2008-09-24 11: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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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 악몽 한기주 “혼을 던져요”

    8월17일 올림픽 야구 한국-대만전 7회말 2사 3루 상황. 투수 교체를 결정한 뒤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한기주(오른쪽)를 위로하는 김경문 감독.

    김경문 감독이 이끈 베이징올림픽 야구대표팀은 금메달 신화를 썼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선전(善戰)이었고, 그 감동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승엽(요미우리) 등 한국야구 100년사에 큰 획을 그은 태극전사들은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베이징 우커송 구장에서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그러나 24명의 선수 중 오직 한 명은 금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까지 침통해하며 동료들과 영광을 나누지 못했다. 대표팀 마무리 투수로 나섰던 KIA 소속 한기주(21)였다.

    한기주는 첫 경기인 미국전, 예선리그 승부처였던 일본전 그리고 예상외로 고전했던 대만전에서 내리 고개를 숙였다. 그의 기용을 두고 김 감독에게까지 팬들의 원성이 미쳤다.

    베이징 취재 현장에서 한기주를 지켜보는 것은 그야말로 고문이었다. 그는 전율 가득한 승리의 감격을 즐기지도 못하고, 늘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경기장을 떠나야 했다.

    금메달 영광보다 더 큰 상처

    귀국 후 그는 외부와 소통하지 않았다. 올림픽 직후 열린 프로리그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지만 모두 거부하고 은둔을 택했다. 한국야구 사상 첫 금메달,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 올림픽 금메달의 영광보다는 그 과정에서 얻은 상처가 더 컸던 것이다.



    2005년 말 광주 동성고 졸업 당시 KIA로부터 역대 최고액인 10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프로 무대에 출사표를 던진 패기 넘치던 유망주. 150km대 직구를 우습다는 듯이 던지며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현 삼성 감독)의 뒤를 잇는 차세대 최고 투수로 평가됐던 한기주는 가장 큰 축복이던 무대의 뒤안길에서 일생 최고의 절망을 곱씹었던 것이다.

    그리고 20여 일. 그가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9월14일 두산전에 앞서 만난 그는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지는 못했지만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애썼다. 바닥을 경험하고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에서 전과 다른 성숙함이 느껴졌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묻자 쓴웃음을 한 번 보였다. 예상은 했지만 마음의 상처는 예상보다 컸다.

    “무슨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빨리 털어버려야 했는데, 마음 속에서 감정이 떠나지 않아요. 귀국하고 나서 의도적으로 잊으려고 애썼고, 그래서 주위와 벽을 쌓았어요. 이젠 좋아졌고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늘 찬사만 받던 젊은 투수가 어쩌면 처음으로 절망을 경험했는데, 그게 너무 가혹해서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위로 섞인 말을 전했다. 그러자 마음에 담아뒀던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직 어리지만, 올해처럼 힘든 적은 없었어요. 그간의 국제대회에서 이렇게 못한 적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화려한 조명 뒤에 무서운 것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죠.”

    어린 나이에 감당해야 할 심적 고통은 너무나 컸다. 그렇지만 따뜻하게 감싸준 선배들이 있었기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다고.

    베이징 악몽 한기주 “혼을 던져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지만, 그만큼 값진 경험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번 아픔을 가슴속에 묻고 다시는 울지않기로 했습니다. 이젠 잊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극복하고 싶어요.”

    “24명 중 한 명이었고, 똑같이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지만 늘 미안한 마음이었어요. 이기는 경기 나가서 맞고, 점수 내주고…. 선배들이 다가와 ‘괜찮다’고, ‘빨리 잊고 다시 하라’고, ‘이겨내야 한다’고 격려해줬는데, 고마우면서도 미안했습니다.”

    김 감독은 대회 기간에 “어떻게든 한기주의 자신감을 찾아주겠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했다. 그러나 한기주는 스스로 아무런 화답을 하지 못할 정도로 침체돼 있었다고 한다. 금메달은 목에 걸었지만 한국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하지 못하고 돌아온 아쉬움은 남아 있었다.

    “마지막 등판으로 예상됐던 네덜란드전 마운드에 서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요. 어떻게든 한 번은 잘하고 귀국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요. 그런데 콜드게임 승으로 끝나가는 상황이어서 욕심을 낼 수 없었습니다.”

    그에겐 되돌리고 싶은 과거. 하지만 무척이나 궁금하다. 국내에서는 수준급 마무리 투수라던 그가 이번 올림픽에선 왜 그렇게 부진했을까. 한 번도, 두 번도 아닌 세 번씩이나. 그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대회 전부터 밸런스가 좋지 않았어요. 스피드가 떨어졌고, 제구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 와중에 첫 경기인 미국전에서 부진하면서 자신감이 없어지더라고요. 단기전인 국제대회에서는 프로 때와 달리 맞아가면서 감을 잡을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대표팀에서는 고통스럽더라도 결국 혼자서 모든 걸 이겨내야 한다는 게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잊지 않고 당당하게 극복해나갈 것”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던가. 올림픽 이후 한기주는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무조건 공을 던지는 게 아니라 한 구, 한 구에 혼을 담아 던져야 한다는 것을. 실투의 무서움을 비로소 알게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공을 던진다’는 것만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세상에 야구 잘하는 선수가 아주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제 힘만이 아닌 정교하면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국내로 돌아온 직후엔 절망만 가득했지만, 안정을 찾아가면서 한기주는 스스로 ‘다시’라는 단어를 연신 떠올린다고 한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지만, 그만큼 값진 경험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번 아픔을 가슴속에 묻고 다시는 울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젠 잊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극복하고 싶어요.”

    짧지만 강렬했던 2008년 8월 베이징의 악몽은 그에겐 작은 시련이었을 뿐이다. 정말 실패라고 단정짓기엔 다시 시작될 미래가 커 보인다. 그는 이제 스물한 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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