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62) 대통령의 외교안보정책은 콘돌리자 라이스(54) 국무부 장관으로 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이스 장관은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2001년부터 첫 4년간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이후 4년간은 국무장관으로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고 있다.
특히 2004년 11월 부시 대통령이 라이스 장관을 국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그의 오른쪽 볼에 입을 맞추는 사진이 공개된 뒤, 미국에서는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장관의 관계를 공인 ‘퍼스트 오피스 커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라이스 장관의 애칭인 ‘콘디’라고 부르며 “세계를 대하는 미국의 얼굴”이라고 소개한 뒤 “라이스 박사를 통해 세계는 미국의 힘(strength)과 우아함(grace)그리고 고상함(decency)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속어 사용하며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
‘워싱턴포스트’는 백악관 핵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부시 대통령은 국무부 장관직을 놓고 라이스 장관과 수개월간 논의했으며 다른 사람은 후보로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보도해 라이스 장관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무한신뢰를 시사했다. 이 핵심 관계자는 또한 “말에 앞서 ‘보디랭귀지’를 보고 서로의 뜻을 짐작하기도 하고 때로는 욕에 가까운 속어를 사용하면서 대화를 나눌 만큼 허물없는 사이”라고 덧붙였다.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장관의 관계는 8년간의 공식적인 상하관계보다 좀더 거슬러 올라간다. 라이스 장관을 부시 대통령에게 소개한 사람은 아버지 부시(84) 전 대통령. 부시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시절 국가안보보좌관실에서 옛 소련과 동유럽 담당 특보로 일하던 라이스 장관을 눈여겨본 뒤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던 아들에게 그를 소개했다. 1999년 당시 텍사스 주지사였던 부시 대통령은 외교안보 문제에 관한 한 문외한이었고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국제문제에 대한 안목을 배우라”고 당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대통령의 외교안보 가정교사가 된 라이스 장관은 어머니인 바버라 부시 여사는 물론, 부인인 로라 부시 여사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텍사스 주 오스틴에 있는 주지사 사저에서 빈번히 숙식하는 손님 가운데 한 명이 됐다.
지난 4월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한미 정상회담을 가진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 역시 라이스 장관이 주말마다 부시 대통령 가족과 머무는 장소다. 텍사스의 크로포드 목장도 라이스 장관에게는 낯설지 않은 곳이다.
그렇다면 왜 부시 대통령은 라이스 장관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게 됐을까. 부시 대통령의 측근들은 “복잡한 것을 따지기보다 뜻이 통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믿고 의지하는 부시 대통령의 성격이 두 사람을 가깝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세상사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고 선악의 이분법적 구도로 판단하는 점도 두 사람이 서로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이유다. 게다가 라이스 장관은 미국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주를 지낸 부시 대통령 못지않은 스포츠팬이기도 하다. 라이스 장관은 사석에서 “사실 내 꿈은 미식프로축구(NFL) 커미셔너가 되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은 ‘오피스 와이프’에 해당하는 라이스 장관과 자신의 재임기간 중 가장 중요한 ‘레거시(legacy)’로 남을 두 차례의 전쟁(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치렀다. 그는 여전히 ‘테러와의 전쟁’을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여기며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 9·11테러의 주역인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해 법의 심판대에 올리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라이스 장관 역시 두 전쟁의 정당성을 역설하면서 “다시 7년 전의 상황이 닥친다 해도 주저 없이 미국의 국익을 위해 전쟁에 나서겠다”고 말한다. 특히 재선에 성공한 뒤부터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뜻을 가장 충실히 이행하는 라이스 장관에게 중동문제, 북핵문제, 이란 핵문제 등 굵직굵직한 외교안보 현안을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은 딕 체니 부통령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고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부 장관, 존 볼튼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 같은 네오콘들이 퇴장한 것도 라이스 장관의 영향력이 극대화된 계기가 됐다.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라이스 장관이 국가안보보좌관 재직 시 부보좌관을 지낸 ‘라이스 사람’이다.
미국 사회 ‘오피스 밖’ 관계 의심 안 해
부시 대통령은 최근 독도지명 변경 및 독도영유권 표기에 대해 ‘주권미지정(Undesignated Sovereignty)’ 지역분류 파문을 원상 복귀한 것과 관련해서도 이명박 대통령에게 “내가 별로 한 일은 없고 사실 콘디가 다 한 것”이라며 라이스 장관에게 공(功)을 돌렸다.
이런 긴밀한 업무상 관계 때문일까. 현직 미국 대통령과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독신여성 가운데 한 명인 라이스 장관의 특별한 ‘사적’ 관계는 미국 언론을 장식하는 단골 메뉴다.
2004년 4월 ‘뉴욕타임스’ 워싱턴지국장인 필립 터브먼의 집에서 열린 비공식 모임에서 라이스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이 자신의 백악관 생활을 설명하던 도중 “내가 남…과 이야기할 때(As I was telling my husb…)”라고 말했다가 급히 “내가 부시 대통령과 이야기할 때”라고 정정했다는 소문은 여전히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일부 타블로이드판 신문들은 최근 “2년 전 부시 대통령이 심리치료사에게 자신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으며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라이스 장관이라고 고백했다”고 전했다. 신문들은 이어 “이 소식을 들은 로라 부시 여사가 격노한 나머지 워싱턴 시내 메이플라워 호텔에서 외박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유튜브나 블로그에는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장관 사이를 의심하는 기사나 풍자 동영상 등이 나돌고 있다.
그럼에도 전체 미국 사회가 둘 사이의 ‘오피스 밖’ 관계를 의심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더불어 당장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장관이 오피스 커플을 넘어선 관계로 발전할 것 같지도 않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2004년 11월 부시 대통령이 라이스 장관을 국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그의 오른쪽 볼에 입을 맞추는 사진이 공개된 뒤, 미국에서는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장관의 관계를 공인 ‘퍼스트 오피스 커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라이스 장관의 애칭인 ‘콘디’라고 부르며 “세계를 대하는 미국의 얼굴”이라고 소개한 뒤 “라이스 박사를 통해 세계는 미국의 힘(strength)과 우아함(grace)그리고 고상함(decency)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속어 사용하며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
‘워싱턴포스트’는 백악관 핵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부시 대통령은 국무부 장관직을 놓고 라이스 장관과 수개월간 논의했으며 다른 사람은 후보로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보도해 라이스 장관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무한신뢰를 시사했다. 이 핵심 관계자는 또한 “말에 앞서 ‘보디랭귀지’를 보고 서로의 뜻을 짐작하기도 하고 때로는 욕에 가까운 속어를 사용하면서 대화를 나눌 만큼 허물없는 사이”라고 덧붙였다.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장관의 관계는 8년간의 공식적인 상하관계보다 좀더 거슬러 올라간다. 라이스 장관을 부시 대통령에게 소개한 사람은 아버지 부시(84) 전 대통령. 부시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시절 국가안보보좌관실에서 옛 소련과 동유럽 담당 특보로 일하던 라이스 장관을 눈여겨본 뒤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던 아들에게 그를 소개했다. 1999년 당시 텍사스 주지사였던 부시 대통령은 외교안보 문제에 관한 한 문외한이었고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국제문제에 대한 안목을 배우라”고 당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대통령의 외교안보 가정교사가 된 라이스 장관은 어머니인 바버라 부시 여사는 물론, 부인인 로라 부시 여사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텍사스 주 오스틴에 있는 주지사 사저에서 빈번히 숙식하는 손님 가운데 한 명이 됐다.
지난 4월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한미 정상회담을 가진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 역시 라이스 장관이 주말마다 부시 대통령 가족과 머무는 장소다. 텍사스의 크로포드 목장도 라이스 장관에게는 낯설지 않은 곳이다.
그렇다면 왜 부시 대통령은 라이스 장관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게 됐을까. 부시 대통령의 측근들은 “복잡한 것을 따지기보다 뜻이 통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믿고 의지하는 부시 대통령의 성격이 두 사람을 가깝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세상사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고 선악의 이분법적 구도로 판단하는 점도 두 사람이 서로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이유다. 게다가 라이스 장관은 미국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주를 지낸 부시 대통령 못지않은 스포츠팬이기도 하다. 라이스 장관은 사석에서 “사실 내 꿈은 미식프로축구(NFL) 커미셔너가 되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은 ‘오피스 와이프’에 해당하는 라이스 장관과 자신의 재임기간 중 가장 중요한 ‘레거시(legacy)’로 남을 두 차례의 전쟁(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치렀다. 그는 여전히 ‘테러와의 전쟁’을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여기며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 9·11테러의 주역인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해 법의 심판대에 올리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라이스 장관 역시 두 전쟁의 정당성을 역설하면서 “다시 7년 전의 상황이 닥친다 해도 주저 없이 미국의 국익을 위해 전쟁에 나서겠다”고 말한다. 특히 재선에 성공한 뒤부터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뜻을 가장 충실히 이행하는 라이스 장관에게 중동문제, 북핵문제, 이란 핵문제 등 굵직굵직한 외교안보 현안을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은 딕 체니 부통령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고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부 장관, 존 볼튼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 같은 네오콘들이 퇴장한 것도 라이스 장관의 영향력이 극대화된 계기가 됐다.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라이스 장관이 국가안보보좌관 재직 시 부보좌관을 지낸 ‘라이스 사람’이다.
미국 사회 ‘오피스 밖’ 관계 의심 안 해
부시 대통령은 최근 독도지명 변경 및 독도영유권 표기에 대해 ‘주권미지정(Undesignated Sovereignty)’ 지역분류 파문을 원상 복귀한 것과 관련해서도 이명박 대통령에게 “내가 별로 한 일은 없고 사실 콘디가 다 한 것”이라며 라이스 장관에게 공(功)을 돌렸다.
이런 긴밀한 업무상 관계 때문일까. 현직 미국 대통령과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독신여성 가운데 한 명인 라이스 장관의 특별한 ‘사적’ 관계는 미국 언론을 장식하는 단골 메뉴다.
2004년 4월 ‘뉴욕타임스’ 워싱턴지국장인 필립 터브먼의 집에서 열린 비공식 모임에서 라이스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이 자신의 백악관 생활을 설명하던 도중 “내가 남…과 이야기할 때(As I was telling my husb…)”라고 말했다가 급히 “내가 부시 대통령과 이야기할 때”라고 정정했다는 소문은 여전히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일부 타블로이드판 신문들은 최근 “2년 전 부시 대통령이 심리치료사에게 자신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으며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라이스 장관이라고 고백했다”고 전했다. 신문들은 이어 “이 소식을 들은 로라 부시 여사가 격노한 나머지 워싱턴 시내 메이플라워 호텔에서 외박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유튜브나 블로그에는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장관 사이를 의심하는 기사나 풍자 동영상 등이 나돌고 있다.
그럼에도 전체 미국 사회가 둘 사이의 ‘오피스 밖’ 관계를 의심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더불어 당장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장관이 오피스 커플을 넘어선 관계로 발전할 것 같지도 않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