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격렬한 몸싸움을 뚫고 이병순 한국방송공사(KBS) 신임사장이 취임하던 8월27일, KBS 신관 출입구에는 세 종류의 유인물이 뿌려졌다. KBS 노동조합(이하 노조)이 발행한 노보,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이하 사원행동)의 특보, ‘KBS 정상화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의 특보 등 서로 다른 사내 조직들이 내놓은 것이다.
내용도 전혀 달랐다. KBS 이사회의 제청과 이명박 대통령의 임명을 받은 이 사장을 받아들이기로 한 노조의 노보 제목은 ‘이제 분열을 넘어 미래로 나아가자’였다. 내용의 골자는 공영방송의 정치독립 수호, 조합원의 고용안정, 조직 분열의 극복이었다.
반면 사원행동은 ‘방송 장악 청부사장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으로 KBS 이사회 해체와 이 사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사원행동은 이와 함께 “신임사장을 환영하는 듯한 성명서를 낸 노조의 모습에 우리는 분노하고 절망했다”면서 현 노조 집행부를 강력히 비난했다.
‘새 사장에 바란다’는 특보를 낸 비대위는 이 사장의 임명제청을 받아들인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대신 정연주 전 사장에 대한 성토를 쏟아냈다. “지금껏 정연주 한 사람에게 발목 잡혀 우리끼리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으로 서로의 가슴에 많은 상처를 남겼다”는 내용이 그 단적인 예다.
정 전 사장 버티기가 내부 갈등 표면화 기폭제로 작용
비대위는 동시에 투쟁 일변도인 사원행동의 태도에 대해 “방송의 독립과 공영성을 지켜내자는 미명 아래 자행돼온 사내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비대위의 특보 한쪽에는 ‘PD협회 정상화 추진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사원행동 양승동 공동대표(PD협회장)를 겨냥한 글도 실렸다. “지난 5년간 PD협회는 좌파적인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식으로 선후배 편 가르기를 통해 갈등을 조장했고, 사회단체 및 정치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정연주 사장 지키기’를 노골화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처럼 투쟁 수위를 둘러싼 노조의 내부 갈등은 물론 동종 직능 간, 이념 간 사분오열돼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게 KBS의 현주소다. 그 갈등의 한가운데에 정 전 사장이 있다.
정 전 사장은 노무현 정부 낙하산 인사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2003년 4월 취임 당시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인 그의 방송 경력은 전무했다. 그 직전 KBS 신임사장으로 임명된 서동구 씨가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노 대통령의 언론정책 고문이었고, 이사회 제청을 받는 과정에서 청와대 개입 사실이 드러나 자진사퇴함으로써 정 전 사장은 어부지리로 사장직에 올랐다. 그런 그가 2006년 연임됐을 때 KBS 내부의 반발은 물론,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의 비난도 거셀 수밖에 없었다.
KBS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 전 사장이 재임하던 지난 5년간 KBS 내부 갈등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고 한다. KBS 한 고위 간부의 이야기다.
“정 전 사장은 PD 우대정책을 폈다. 모든 프로그램이 PD 중심으로 짜여졌다. 정 전 사장의 더 큰 문제는 좋아하는 사람의 말만 듣고 추종세력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했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의 비판에는 귀를 막았다. 결국 그런 리더십이 내부 갈등을 잉태했다.”
차장, 부장, 국장제 대신 팀제를 도입함으로써 1000개 가까운 간부 자리를 없앤 것도 내부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KBS 내부에서도 정 전 사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직원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의 사퇴 압박에 대한 정 전 사장의 버티기는 내부 갈등을 표면화하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노조 내부의 의견도 권력에 대한 부당한 외압으로부터 정 전 사장을 보호해 잔여 임기를 마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과 외압은 부당하지만 전 정권의 낙하산인 정 전 사장을 지킬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입장으로 갈린 것. 대부분의 노조원들은 후자를 택했다.
KBS 노조가 정 전 사장을 지키려는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련)에서 탈퇴하기로 한 안건을 조합원 투표를 통해 가결시킨 것이 이 점을 방증한다. 이 투표에는 전체 조합원의 70%가 참여했고 그중 60~70%가 탈퇴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노조는 낙하산 인사로 규정된 김인규 전 KBS 이사와 이른바 호텔 밀실회동에 참석한 김은구 전 KBS 이사가 아닌, 이병순 사장이 임명제청된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이 같은 노조 집행부의 결정에 사원행동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원행동 측은 전국 4200여 명의 조합원 가운데 현재 7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사장은 물론 임명제청한 이사회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사회 절차 자체가 불법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것.
언론노련을 포함한 외부 단체들과도 연대투쟁을 벌이고 있는 사원행동은 당초 정 전 사장의 추종세력이 그 중심이었지만, 이사회의 청원경찰 동원과 호텔 밀실회동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에 반발한 일부 조합원이 가세한 상태다.
이 사장 강력한 개혁의지 … 내부 갈등 심화될 수도
이 때문에 정연주파로 알려진 사원행동 집행부 측도 정 전 사장에 대한 입장에 미묘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사원행동 양 대표의 설명이다.
“우리는 정 전 사장을 위해 모인 집단이 아니다. 정 전 사장에 대해 과보다 공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 전 사장을 반대하는 사람도 함께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정 전 사장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여기에는 과거 정권의 낙하산 인사인 정 전 사장을 비호할 경우 자기모순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원행동 측이 사태 해결을 위해 내놓은 전제조건에도 정 전 사장은 언급되지 않았다.
양 대표는 “청원경찰을 동원한 이 사장이 먼저 사과하고 사퇴한 뒤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투명하면서도 공정하게 사장을 선임해야 한다는 게 최대한 양보한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KBS 내에 정 전 사장의 복귀를 바라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는 셈이다.
8월27일 오전 10시, 청원경찰에 밀려 이 사장 취임식 참석 저지에 실패한 직후 사원행동은 KBS 본관 2층 로비에서 집회를 열었다. 향후 투쟁 방향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이 자리에 참석한 인원은 50명 남짓. 이 사장의 출근을 끝까지 저지하면서도 취임 자체를 무효화할 수 있을 정도의 동력은 미약한 듯했다.
오히려 이 사장이 취임사에서 정 전 사장이 자신의 공으로 내세운 팀제와 일부 방송프로그램 폐지를 언급함으로써 조직 내 또 다른 풍랑이 예고됐다. 이 사장은 여기에 “경영합리화를 통해 적자가 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거나 “뼈를 깎는 고통 분담도 마다하지 않겠다” 는 등 강력한 개혁추진 의지를 내비쳐 사내 권력을 둘러싼 내부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내용도 전혀 달랐다. KBS 이사회의 제청과 이명박 대통령의 임명을 받은 이 사장을 받아들이기로 한 노조의 노보 제목은 ‘이제 분열을 넘어 미래로 나아가자’였다. 내용의 골자는 공영방송의 정치독립 수호, 조합원의 고용안정, 조직 분열의 극복이었다.
반면 사원행동은 ‘방송 장악 청부사장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으로 KBS 이사회 해체와 이 사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사원행동은 이와 함께 “신임사장을 환영하는 듯한 성명서를 낸 노조의 모습에 우리는 분노하고 절망했다”면서 현 노조 집행부를 강력히 비난했다.
‘새 사장에 바란다’는 특보를 낸 비대위는 이 사장의 임명제청을 받아들인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대신 정연주 전 사장에 대한 성토를 쏟아냈다. “지금껏 정연주 한 사람에게 발목 잡혀 우리끼리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으로 서로의 가슴에 많은 상처를 남겼다”는 내용이 그 단적인 예다.
정 전 사장 버티기가 내부 갈등 표면화 기폭제로 작용
비대위는 동시에 투쟁 일변도인 사원행동의 태도에 대해 “방송의 독립과 공영성을 지켜내자는 미명 아래 자행돼온 사내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비대위의 특보 한쪽에는 ‘PD협회 정상화 추진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사원행동 양승동 공동대표(PD협회장)를 겨냥한 글도 실렸다. “지난 5년간 PD협회는 좌파적인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식으로 선후배 편 가르기를 통해 갈등을 조장했고, 사회단체 및 정치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정연주 사장 지키기’를 노골화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처럼 투쟁 수위를 둘러싼 노조의 내부 갈등은 물론 동종 직능 간, 이념 간 사분오열돼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게 KBS의 현주소다. 그 갈등의 한가운데에 정 전 사장이 있다.
정 전 사장은 노무현 정부 낙하산 인사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2003년 4월 취임 당시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인 그의 방송 경력은 전무했다. 그 직전 KBS 신임사장으로 임명된 서동구 씨가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노 대통령의 언론정책 고문이었고, 이사회 제청을 받는 과정에서 청와대 개입 사실이 드러나 자진사퇴함으로써 정 전 사장은 어부지리로 사장직에 올랐다. 그런 그가 2006년 연임됐을 때 KBS 내부의 반발은 물론,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의 비난도 거셀 수밖에 없었다.
KBS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 전 사장이 재임하던 지난 5년간 KBS 내부 갈등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고 한다. KBS 한 고위 간부의 이야기다.
“정 전 사장은 PD 우대정책을 폈다. 모든 프로그램이 PD 중심으로 짜여졌다. 정 전 사장의 더 큰 문제는 좋아하는 사람의 말만 듣고 추종세력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했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의 비판에는 귀를 막았다. 결국 그런 리더십이 내부 갈등을 잉태했다.”
차장, 부장, 국장제 대신 팀제를 도입함으로써 1000개 가까운 간부 자리를 없앤 것도 내부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KBS 내부에서도 정 전 사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직원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의 사퇴 압박에 대한 정 전 사장의 버티기는 내부 갈등을 표면화하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노조 내부의 의견도 권력에 대한 부당한 외압으로부터 정 전 사장을 보호해 잔여 임기를 마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과 외압은 부당하지만 전 정권의 낙하산인 정 전 사장을 지킬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입장으로 갈린 것. 대부분의 노조원들은 후자를 택했다.
KBS 노조가 정 전 사장을 지키려는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련)에서 탈퇴하기로 한 안건을 조합원 투표를 통해 가결시킨 것이 이 점을 방증한다. 이 투표에는 전체 조합원의 70%가 참여했고 그중 60~70%가 탈퇴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노조는 낙하산 인사로 규정된 김인규 전 KBS 이사와 이른바 호텔 밀실회동에 참석한 김은구 전 KBS 이사가 아닌, 이병순 사장이 임명제청된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이 같은 노조 집행부의 결정에 사원행동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원행동 측은 전국 4200여 명의 조합원 가운데 현재 7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사장은 물론 임명제청한 이사회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사회 절차 자체가 불법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것.
언론노련을 포함한 외부 단체들과도 연대투쟁을 벌이고 있는 사원행동은 당초 정 전 사장의 추종세력이 그 중심이었지만, 이사회의 청원경찰 동원과 호텔 밀실회동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에 반발한 일부 조합원이 가세한 상태다.
이 사장 강력한 개혁의지 … 내부 갈등 심화될 수도
이 때문에 정연주파로 알려진 사원행동 집행부 측도 정 전 사장에 대한 입장에 미묘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사원행동 양 대표의 설명이다.
“우리는 정 전 사장을 위해 모인 집단이 아니다. 정 전 사장에 대해 과보다 공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 전 사장을 반대하는 사람도 함께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정 전 사장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여기에는 과거 정권의 낙하산 인사인 정 전 사장을 비호할 경우 자기모순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원행동 측이 사태 해결을 위해 내놓은 전제조건에도 정 전 사장은 언급되지 않았다.
양 대표는 “청원경찰을 동원한 이 사장이 먼저 사과하고 사퇴한 뒤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투명하면서도 공정하게 사장을 선임해야 한다는 게 최대한 양보한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KBS 내에 정 전 사장의 복귀를 바라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는 셈이다.
8월27일 오전 10시, 청원경찰에 밀려 이 사장 취임식 참석 저지에 실패한 직후 사원행동은 KBS 본관 2층 로비에서 집회를 열었다. 향후 투쟁 방향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이 자리에 참석한 인원은 50명 남짓. 이 사장의 출근을 끝까지 저지하면서도 취임 자체를 무효화할 수 있을 정도의 동력은 미약한 듯했다.
오히려 이 사장이 취임사에서 정 전 사장이 자신의 공으로 내세운 팀제와 일부 방송프로그램 폐지를 언급함으로써 조직 내 또 다른 풍랑이 예고됐다. 이 사장은 여기에 “경영합리화를 통해 적자가 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거나 “뼈를 깎는 고통 분담도 마다하지 않겠다” 는 등 강력한 개혁추진 의지를 내비쳐 사내 권력을 둘러싼 내부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