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해 집회를 벌이는 대학생들. 이들에겐 거시적인 정치세계보다는 현실의 개선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투표 결과가 나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온라인상에서는 “20대 투표율 19%”라는 말이 돌았고, 한 일간지는 ‘20대 투표율 19%는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기까지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앙선관위)는 투표율 분석결과를 선거 후 3개월이 지나서야 발표한다. 결국 ‘20대 투표율 19%’ 괴담(?)은 전체 유권자 중 20대 유권자의 비율이 투표율로 잘못 알려져 벌어진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20대의 정치 무관심에 대한 비판은 계속됐다. 한 포털사이트의 게시판은 “투표 안 한 20대들은 88만원 세대라고 한탄할 자격이 없다”는 비난과 “왜 총선 이후 화풀이가 20대에게 몰리냐”는 반박으로 뜨거웠다.
낮은 투표율 20대 탓? 천만의 말씀
사실 20대의 정치 무관심은 한국의 일만은 아니다. 선거관련 국제기관인 International IDEA(Institute for Democracy and Electoral Assistance)의 자료에 따르면 2000년 대선에서 미국의 18~24세 유권자 투표율은 36%, 영국의 경우 2005년 총선에서 18~24세 투표율은 37%였다. 전체평균 투표율이 61.18%인 캐나다의 경우 18~24세 투표율은 25%로 현저히 낮았다(출처 mapleleafweb.com).
한국도 지난 10여 년 동안 20대 투표율이 연령별 투표율 중 최하위였으며 총선의 경우 15~20%포인트, 대선은 10~15%포인트 전체평균 투표율보다 낮았다. 결국 젊은 층의 정치적 관심도가 비교적 높다고 여겨졌던 1990년대나 지금이나 20대는 기성세대의 투표율에 못 미쳤던 셈이다.
서울대 박찬욱 교수(정치학)는 “사회와 이해관계가 적은 20대가 투표에 무관심한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세계적으로도 20대는 낮은 투표율을 보이는 편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투표율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대 투표율 하락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삼을 만하다. 또 80~90% 투표율에서 70%대로 떨어진 50대와 50~60% 투표율에서 30%대로 떨어진 20대의 그것은 문제의 심각성이 다르다.
중앙선관위가 2007년 대선 결과를 바탕으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연령대별 선거인수 비율은 20대가 19.3%로 30대(22.8%), 40대(22.5%)에 이어 세 번째지만 투표자수 비율은 14.2%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았다. 40대는 23.7%. 결국 선거 결과에 20대의 정치적 영향력이 가장 적게 미쳤던 셈이다. 게다가 지난 10년간의 투표율 자료를 보면 한 세대의 투표율은 나이가 들더라도 비슷하거나 줄어드는 양상을 띠고 있다. 예를 들면 1997년 대선에서 68.2%를 보인 20대 투표율은 2002년 대선에서 30대의 67.4%와 유사하고, 2007년 대선 역시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의 투표율은 50~60%로 비슷했다.
중앙선관위 측은 젊은 층의 투표 참여를 높이고자 그룹 원더걸스를 공명선거 홍보대사로 위촉하고, 투표확인증을 제시하면 국공립 시설을 최대 2000원까지 할인해주는 인센티브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주차장과 박물관 할인혜택은 20대의 구미를 그다지 당기지 못했을뿐더러 홍보도 부족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원더걸스 중 선거권이 있는 멤버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20대 유권자운동단체인 ‘20대 국회의원을 만드는 모임’의 국승민(25·서울대 정치학과 4년) 대표는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마냥 비판만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20대 초반의 투표율이 후반의 투표율보다 높은 것에 대해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가 희망을 주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 투표율이 더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한 그는 “20대 정치활동을 적극 열어주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그는 대학생들은 거주지와 등록된 주거지가 다른 경우가 많은 만큼 부재자 투표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중앙선관위는 2002년부터 2000명 이상이 신고할 경우 대학 내 부재자 투표소를 설치해주고 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12개 대학에 부재자 투표소가 설치됐지만, 18대 총선에서는 예외승인을 통해 통과된 3개 대학을 제외하고는 기준을 맞춘 곳이 한 곳도 없었다.
진보-보수 가르는 잣대 적용도 부적절
20대의 정치 무관심과 동반해 거론되는 이슈가 20대의 보수화다. 변화를 원하지 않기에(보수적이기에) 정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한편 18대 총선 투표일 전후 각 신문사와 방송사가 벌인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대 투표자의 51%가 보수당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보수 성향이 뚜렷한 50대와 비슷한 수치다.
중앙대 최영진 교수(정치학)는 “현재 20대의 경우 정치적 입장을 결정하는 데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진단했다. “민주화 이후 투표 성향을 비롯한 정치적 입장이 사적 이익관계에서 상당 부분 결정된다”고 설명한 그는 “민감한 청소년기에 외환위기를 경험하고 집단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지금의 20대는 부모의 계급적 성향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다.
하지만 20대의 정치 성향을 판단하는 데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존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많다. 보수정당을 지지한 20대 투표자 51%가 나머지 20대의 성향을 대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부재자 투표가 어려운 탓에 선거를 포기했다는 임신혁(23·상지대 한의학과 4년) 씨는 “진보신당이 현실적으로 와닿는 대안을 내놓는다면 20대를 기반으로 한 20% 지지율도 꿈은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의 정치가 “현실에 와닿지 않으니 무관심해진다”고 말한 그는 “투표하지 않는 행태를 비난하지만 투표보다 여자친구와 여행 가는 것에 의미를 두는 사람도 있다. 한 표가 결정하는 비현실적이고 거시적인 정치세계보다는 당장 내 주위를 둘러싼 현실 하나하나를 바꿔나가는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20대 중에는 진보 성향을 가진 기성세력에 대한 실망감도 포함돼 있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20대가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당의 표밭을 넓혀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 386 민주화세력으로 상징되는 또 다른 ‘주류’에 대한 반발심이 컸다고 생각한다.”(국승민 대표)
“참정을 강조하는 어른들은 대체 젊은이들의 참정의식을 북돋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특정 기업 밀어주기? 무작정 진보 편들기? 우파를 악으로, 좌파를 빨갱이로 포장하기?”(임신혁 씨)
20대의 정치 성향을 보수 대신 탈정치화로 규정한 숭실대 강원택 교수(정치학)는 “의사 표출을 인터넷 등 다양한 통로로 해온 20대에게 선거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방식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규제 중심의 엄격한 선거법 대신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게시물, 동영상 UCC, 서명 등을 통해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것이 독려돼야 하는데 되레 엄격히 규제되고 있다. 이처럼 규제가 심한 나라는 드물다. 의사표현만 막으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결국 이것이 20대의 정치 무관심을 부채질한다.”(강원택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