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키’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아내 재클린(재키)의 가장 극적인 날들을 소환한다.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벌어진 대통령 암살 사건부터 25일 장례식까지 나흘간 이야기다. 케네디 암살 사건은 대중매체가 반복해 다루는 소재다. 영화 쪽 대표 작품으로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JFK’(1991)가 있다. ‘재키’의 남다른 점은 그 사건을 객관적 시선이 아니라 재클린의 시선에서 읽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재키’는 설정부터 ‘객관성’ 같은 데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거의 모든 시간을 재클린의 ‘주관적’ 기억에 따라 소환해낸다. 곧 ‘재키’는 팩트 확인을 중요시하는 정치영화라기보다 한 여성의 비극적 감정을 강조하는 멜로드라마에 가깝다.
재클린은 사건 일주일 뒤 ‘라이프’지와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술회한 적이 있다. 영화 ‘재키’는 그 기사를 토대로 나흘간의 시간을 재구성했다. 재클린에 따르면 사건은 부부의 인기가 최고로 좋을 때 벌어졌다. 재클린은 백악관에 들어간 뒤 실내 복원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를 TV로 공개했다. 거의 모든 미국인이 그때 처음 백악관 내부를 봤다. 특히 재클린이 링컨 전 대통령을 얼마나 흠모하는지 소상히 알게 됐다. 그럼으로써 백악관은 ‘국민의 집’이 됐고 재클린은 더욱 사랑받았다. 복원 작업을 직접 설명하는 재클린의 모습은 방송인 못지않게 자연스러웠다. 대통령뿐 아니라 그의 아내까지, 당시 대중적 영향력을 무섭게 확장하고 있던 TV의 속성을 잘 이용했다(재클린은 한때 언론인이었다).
대통령이 죽은 뒤에도 재클린은 마냥 슬픔에 빠져 있기보다 대중매체, 특히 TV가 그 사건을 어떻게 기억할지 신경 썼다. 재클린은 링컨의 장례식 내용을 보고받은 뒤, 남편의 장례식도 그렇게 진행되기를 바랐다. 알다시피 케네디의 장례식은 국가적인 스펙터클이 됐다. 그럼으로써 남편 케네디는 링컨과 비교됐다. 재클린은 더 나아가 케네디 시절 백악관을 영국 아서 왕 전설의 본산인 ‘카멜롯(Camelot)’과 비교했다. 카멜롯에 살던 전설 속 왕과 원탁의 기사들처럼, 케네디와 그의 사람들은 영원히 빛날 것이란 주장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모든 내용이 재클린의 시점에서 서술됐다는 점이다. 재클린은 그 짧은 장례 기간 남편을 ‘위대한’ 인물로 기억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 붓는다. 초반부 비극의 주인공에 대한 관객의 감정이입은 후반부에서 재클린과 동일시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곧 재클린의 기억이 거의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주관적 기억을 사실처럼 전달하려는, 그래서 신화를 만들려는 재클린의 태도를 숨기지 않는다. 재클린은 베테랑 기자의 취재수첩을 (사실상) 빼앗아 자신이 직접 내용을 고치기까지 한다. 만약 케네디의 위상이 과장됐다면 ‘신화 만들기’의 결과일 수 있는데, 영화 ‘재키’는 그 신화의 연출자로 재클린을 지목하고 있다. ‘재키’는 할리우드의 일반적인 전기영화가 아니다. 신화 창조의 속성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