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 수행자들이 행하는 ‘불의 의식’.
힌두교의 지존(至尊)은 시바신이다. 힌두 신화는 시바신의 거처를 메루산(수미산)으로 묘사한다. 그동안 인도인들은 히말라야의 카일라스산을 메루산으로 생각해왔는데, 리시케시는 히말라야에서 가까우면서도 겨울에 비교적 따뜻한 지역이다. 때문에 예부터 히말라야에서 수행하던 이들이 이곳에서 겨울을 났다고 한다.
요즘도 히말라야 산맥을 가려는 사람들은 네팔이 아닌 이곳에서 출발할 정도로 고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또 인도인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갠지스강이 도심을 관통하는데, 히말라야 산맥에서 내려온 물이 평야에 안착하는 첫 지점이 이 도시다. 갠지스강을 경계로 왼쪽은 시장과 버스정류장 등이 자리한 시가지, 오른쪽은 수행자 지역으로 나뉜다.
리시케시가 세계의 이목을 받게 된 데는 팝 그룹 비틀스의 영향이 컸다. 1968년 존 레논, 폴 매카트니 등 비틀스 멤버들이초월명상(TM)의 창시자인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를 따라 이 도시에서 명상과 요가를 배운 이후 현대 서구인들의 성지로 부각했다. 요즘에도 인도를 장기간 여행하는 이들은 마치 의무이기라도 한 듯 이 도시로 모여든다.
시내 중심인 찬드랍하는 강 남쪽 지역에 자리한다. 대부분의 버스가 우체국, 은행, 호텔이 모인 이곳에 정차한다. 수행자 구역은 시바난다 줄라(Shivananda Jhula)와 락시만 줄라(Lakshman Jhula)를 잇는 차도와 강가의 도보길 두 개로 나뉜다. 강가의 수행자들과 주변 경관, 강변 도보길 등은 첫눈에도 한가로움이 느껴진다.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주민들과의 불필요한 접촉 때문에 피곤해질 때가 많은데, 이곳은 정반대다. 시바난다 줄라에서 출발하는 강변 도보길을 걸으며 만나는 작은 집들과 시골학교, 마을 공원의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락시만 줄라 다리는 힌두교 라마신의 동생 락시만이 강을 건넌 지점에 놓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리 주변에 오래된 사원이 산재한다. 강 동쪽 해발 1600m 고지에 닐칸트 마하데브 사원이 있는데, 이곳에서 인도인들이 갠지스 강물을 담아 신전에 바치는 특이한 장면을 볼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시바신이 이곳에서 독약을 먹고 그 부작용 때문에 피부가 파란색으로 변했다고 한다.
사원엔 수행자·여행자들로 북적 … 해질 무렵 ‘불의 의식’ 장관
리시케시 시가지의 적잖은 사원들에서 해질 무렵 행해지는 ‘불의 의식(푸자·Pooja)’도 볼만하다. 수행자들과 여행자들이 강가에 촛불을 띄우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오후 6시30분쯤 니케탄 아시람 강가에서 진행되는 푸자 체험은 명상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체험해볼 만한 의식으로 유명하다.
델리에서 출발한 필자는 밤 10시가 넘어서야 리시케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침 주 경계가 폐쇄되는 때였기에 월경(越境)을 위해 차 안에서 3시간 이상 기다렸기 때문이다. 3월이지만 고도가 높은 산자락이라 밤에는 한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길거리에는 아직 히말라야 산맥으로 돌아가지 않은 수행자들이 적잖이 보였다.
해발 1600m 고지에 자리한 마하데브 사원(왼쪽). 히말라야를 출발한 물줄기는 명상의 도시 리시케시에서 비로소 평온하게 흐른다.
다리를 건너자 오른쪽으로 시장골목이 이어졌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왠지 섬뜩했다. 주변이 어두운 데다 땅바닥엔 소똥이 어지럽고, 길 옆에서 수행자들이 거적을 뒤집어쓴 채 여행객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왔다면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선뜻 들어설 수 없을 정도였다.
목적지인 니케탄 아시람은 그나마 조명이 밝아 안심이 된다. 아시람 안에 들어가자 중앙에 정원이 있어 산뜻한 느낌이 들었으나 그것도 잠시, 숙소로 이동하는 도중 그곳의 온갖 조각상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해졌다. 아마도 여러 힌두교 신들의 기운 때문인 듯싶었다. 이 기운에 눌리면 안 된다고 다짐하며 차디찬 리넨을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니 밤과는 달리 햇살이 가득 찬 정원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아시람 밖 시장 풍경은 마치 우리 시골장을 보는 듯해 정겨웠다. 길가의 개 한 마리까지 명상을 하고 있는 듯 범상치 않아 보인다. 낯선 여행자들이 다가가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락시만 줄라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 지프나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것이 더 좋다. 락시만 줄라는 계곡과 계곡 사이에 다리를 놓은 곳이라 사방이 절경이기 때문이다. 인근 카페에서 차 한잔 마시며 락시만 줄라를 바라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다. 혼자 온 사람이라면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과 꼭 다시 오리라’ 다짐하게 할 만큼 신비롭다. 마침 한 여행자가 해준 말이 생각났다. 이곳은 신의 기운이 강하기 때문에 늘 평정심을 지니라는 충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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