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가정에 설치된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 수신기(왼쪽)와 한국케이블TV협회 대회의실에 설치된 케이블TV 모니터 화면.
당연히 스카이라이프는 케이블 업체의 불공정 행위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CJ미디어는 “계약기간이 만료됐는데 무슨 문제냐”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방송위원회가 조정에 나서 tvN의 위성 송출이 중단되는 사태는 지연시켜왔으나 4월의 마지막 날을 고비로 결국 tvN은 위성에서 볼 수 없게 됐다.
채널 하나를 놓고 왜 이렇게 싸우는 걸까. 이번 분쟁은 현재 한국 유료방송 시장의 문제점이 집약된 것일 뿐 아니라 케이블·위성은 물론 인터넷(IP)TV·모바일TV 등 다양한 방송 플랫폼이 콘텐츠 확보를 놓고 경쟁하게 될 뉴미디어 시대의 모습을 앞서 보여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CJ미디어, tvN 위성 송출 중단 파문
CJ미디어는 지난해 10월 개국한 tvN을 케이블에서만 볼 수 있는 ‘케이블 온리(Cable Only)’ 채널로 키우겠다는 방침을 유지해왔다. 광고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 위성방송을 포기하고 케이블에 주력, 광고 매출을 확대한다는 전략인 셈이다. CJ미디어는 지난해 말부터 스카이라이프에 tvN의 위성 송출 중단 의사를 밝혔고 스카이라이프는 이에 반발, 올 1월 방송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선발 사업자인 케이블 방송사들이 위성방송을 고사시키기 위해 불공정 행위를 한다는 것이 스카이라이프의 주장이다.
방송위원회의 거듭되는 조정에도 양측의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당초 4월 초를 기해 송출 중단을 불사하겠다던 CJ미디어는 “조정기간 중에는 송출을 계속해달라”는 방송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송출을 계속했으나 4월23일 최종 조정위원회를 마친 직후 방송위 전체회의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송출 중단을 선언했다. 스카이라이프는 공정거래위원회 제소도 검토 중이다.
케이블 사업자는 콘텐츠 수급을 통해 시청자들이 보는 채널을 운영하는 채널사용사업자(PP)와 각 지역에 케이블망을 깔고 이를 운영하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로 나뉜다. 온미디어나 CJ미디어 같은 회사는 여러 채널을 거느린 복수채널사용사업자(MPP)다. 각 지역 SO들은 인수·합병을 거쳐 현재는 3∼4개의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로 재편됐다.
스카이라이프는 케이블 방송 쪽의 대형 사업자들이 케이블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위성방송에 대한 콘텐츠 공급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의심하고 있다. 특히 MSO들이 케이블 시장을 확대하고 경쟁 매체를 견제하기 위해 PP들에게 압력을 넣는다는 의혹을 갖고 있다. SO들이 채널을 ‘꽂아줘야’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PP들로서는 SO의 영향력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미 2003년 애니메이션 채널 ‘투니버스’ 등 국내 1위 MPP 온미디어 계열의 인기 채널이 위성방송에서 빠져나가는 경험을 한 스카이라이프로서는 CJ미디어의 이탈이 편치 않다. 스카이라이프 관계자는 “시청가구 수나 콘텐츠 파워가 부족한 후발주자는 영원히 불공정 경쟁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CJ미디어의 설명은 다르다. tvN 송출 중단은 1400만 시청가구를 확보한 케이블 방송에서 확실히 자리를 굳혀 광고 매출을 증대하는 사업 전략을 선택한 데 따른 자연스러운 결정이라는 것이다. PP들의 광고 수익은 케이블과 위성을 합한 수신료 수익의 4∼5배에 이른다. 또 2006년 케이블 광고 시장은 전년 대비 30% 성장한 6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되며 케이블 채널의 광고 단가도 올라가는 등 최근 케이블 광고 시장은 확대일로에 있다.
결국 유료방송 시장의 믿을 만한 수익모델은 수신료가 아니라 광고라는 것이 CJ미디어의 주장이다. CJ미디어의 논리대로라면 한 달에 단돈 6000원으로 케이블TV를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유료방송 시장의 구조가 200만 위성방송 시청자의 시청권 침해로 이어진 셈이다.
광고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시청가구 수를 늘려야 하고, 그러려면 가격대가 가장 낮은 이른바 ‘보급형 상품’에 들어가야 한다. 또 되도록 지상파 번호대와 가까운 낮은 숫자의 채널을 배정받아야 시청자들의 눈길이 한 번이라도 더 가게 된다. 지상파와 홈쇼핑, 공공채널 등의 의무송신 채널을 제외하고 나면 보급형 상품에 들어갈 수 있는 채널은 극히 제한적이다. 이 자리에 들어갈 채널을 결정하는 것은 SO, 채널 번호를 결정하는 것도 SO다. 결국 PP가 광고 수익을 높이려면 SO와 최대한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케이블 채널에 주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SO들은 케이블 방송이 없으면 존립 근거가 없지만 PP들은 플랫폼에 상관없이 케이블이든 위성이든 자신의 콘텐츠를 팔 수 있기 때문이다. tvN의 위성 송출 중단 방침을 둘러싼 갈등 이면에는 이런 역학이 숨어 있다.
힘센 유선사업자, 더 힘센 킬러 콘텐츠
많은 국내 PP들은 “저희 채널을 틀어만 주세요” 하며 SO들의 ‘을’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보고 싶어하는 ‘킬러 콘텐츠’를 가진 PP가 있다면 SO들에게 오히려 큰소리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른 SO나 다른 플랫폼에 우선 공급하겠다며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플랫폼은 늘고 콘텐츠는 부족한 상황이 되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런 상황은 이미 임박했다. 위성이나 DMB, 인터넷 방송도 있지만 무엇보다 조만간 등장할 IPTV가 SO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DMB나 인터넷은 작은 화면, 낮은 화질 등의 문제로 케이블 방송과는 다른 시장을 형성했으나 IPTV는 케이블과 많은 부분 겹친다. 승부는 결국 누가 어떤 콘텐츠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다. 더구나 IPTV 사업의 주체는 거대 통신사업자들이다. 막강한 자본력으로 영화·드라마·스포츠 등 핵심 콘텐츠들을 쓸어갈 만한 힘이 있다.
최근 KT와 온미디어가 전방위적인 콘텐츠 협력을 위한 합작사를 설립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양사는 즉각 부인했지만 그런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했다. 케이블 1위 MPP인 온미디어는 케이블을 지켜야 할지, IPTV라는 새 시장을 개척해야 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현재로선 케이블을 더 우선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SO들로선 KT의 ‘힘’을 충분히 느꼈을 것이다.
한편 스카이라이프는 해외 콘텐츠 업체들과 협력, 콘텐츠 수급을 전문으로 하는 CSC라는 업체를 설립한다. 모기업인 KT와 콘텐츠 제작·유통 업체 등과 함께 위성방송 및 IPTV에 특화된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SK텔레콤이 인수한 음반사와 케이블 방송사의 콘텐츠는 모바일TV에 공급될 예정이다. 뉴미디어 시대를 눈앞에 두고 콘텐츠 싸움은 이미 불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