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의 첫 단속 대상자는 50대 공무원. 하차한 그와 대화를 나눴다.
“얼마나 드셨어요?”
“소주 3~4잔이요. 죄송합니다.”
“무슨 일 하세요?”
“공무원, 쭛쭛부에 근무하는 쭛쭛쭛입니다. 한 번만 봐주면 안 되나요?”
측정 결과 그의 혈중 알코올농도는 0.114%. 면허취소다. 단속 경찰은 “노래방에 계셔야 할 분이 운전대를 잡았네”라며 ‘썩소(썩은 미소)’를 날린다.
공무원이 음주운전에 적발돼 면허정지 이상의 처분을 받으면 해당 기관에 즉시 통보된다. 직급이 높을수록 이 ‘통보’가 갖는 의미와 파워는 커진다. 순순히 차에 오른 이 공무원에게 오늘의 사건은 어쩌면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될 수도 있다.
3~4명씩 한꺼번에 단속돼 줄을 서는 진풍경도 펼쳐진다. 불과 20여 분 전에 취재진을 향해 “별로 없어요. 하루에 3~4명. 국민 의식이 많이 성숙해졌죠”라고 말했던 한 경찰이 취재진을 보며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음주 단속에 쓸 음주측정기를 챙기는 단속 경찰(왼쪽). 음주 측정을 하고 있는 한 40대 음주운전자.
단속 경찰들을 괴롭히는 ‘진상’도 한두 명이 아니다. 계속 어딘가로 전화하며 시간을 끄는 휴대전화족, 물을 요구하며 시간을 끄는 붕어족, 끊임없이 사정을 설명하며 동정심에 기대는 통사정족까지. 대부분 ‘첫 경험’인 사람들은 ‘버티면 빠져나간다’는 일반 상식에 충실하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차이가 있는 법. 15년간 음주운전 단속을 해온 강남경찰서 최준관 교통반장은 음주운전자들이 꼭 알아야 할 수칙 몇 가지를 말해줬다.
1. 시간을 끌지 말라. 대부분 시간이 갈수록 알코올지수가 높아진다.
2. 함부로 채혈하지 말라. 음주 측정 때보다 높은 수치가 나온다.
3. 경찰과 시비 붙지 말라. 공무집행방해죄가 추가될 수 있다.
3시간여 동안 단속된 사람은 모두 16명. 훈방(0.049% 이하)된 사람은 2명에 불과했다. 혈중 알코올농도 0.062%로 100일 면허정지가 확정된 한 남성은 정신을 차린 듯 질문을 쏟아낸다. “면허정지를 받지 않는 방법은 없나요?” “구제 프로그램은 없나요?” “반성문을 쓰면 정상참작이 되나요?” 단속 경찰의 대답은 짧다.
“4시간 현장체험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참여하시면 50일을 삭감해줍니다.”
이런 ‘꼴불견’도 빼놓을 수 없다. ‘빽’을 동원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직접 겪어보니 이런 가관이 없다. 통화 내용을 슬쩍 들어봤다.
“집 근처에서 재수 없이 걸렸어.”
“야, 나 지금 쭛쭛쭛에 있는데, 너 혹시 쭛쭛쭛경찰서에 아는 사람 있어?”
“아니 뭐 빼달라는 게 아니고…. 면허취소는 좀 그렇잖아.”
혈중 알코올농도 0.117%. 면허취소가 결정된 한 음주운전자가 괴로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음주운전자가 강남경찰서 교통과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채혈하고 있는 음주운전자 (왼쪽부터).
경찰 조사는 한 시간 이상 이어졌다. 누구와 먹었는지, 무엇을 얼마나 먹었는지, 어디에서부터 운전을 했는지가 모조리 포함된다. ‘범법자’의 술자리 사생활은 보장받지 못한다.
적발되면 면허정지나 취소처분 외에도 벌금을 낸다. 통상적으로 혈중 알코올농도에 10을 곱한 금액이 벌금으로 나온다. 혈중 알코올농도가 0.060% 나온 면허정지 처분이면 벌금은 약 60만원.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0.100%가 넘어가면 벌금은 20%가량 가중된다.
강남경찰서 교통과에 있는 한 관계자의 말이다.
“오늘 보세요. 16명 중 9명이 외제차 운전자예요. 부유층 사람들이 1만~2만원 대리운전비를 아끼려고 음주운전을 하거든요. 한 잔이라도 술을 마신 날은 절대로 운전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