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절학’ 전파에 앞장서온 한국전례연구원이 설립 30주년을 맞았다. 3월1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 창립 30주년 기념식을 가진 한국전례연구원 김득중(76) 원장의 얼굴엔 감격의 기쁨이 감돌았다.
“‘예절공부는 시대착오’라는 핀잔을 들으며 30년 전 한국전례연구원을 외롭게 시작했어요. 하지만 30년이 흘러 800명이 넘는 인사가 찾아와 축하해주시니 흥분을 감출 수 없네요.”
김 원장이 1977년 한국전례연구원을 연 것은 사회가 급변하면서 한국의 고유 예절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했기 때문. 그는 사재를 털어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한 아파트에 사랑방을 열고 사람들에게 예절을 가르쳤다. 그가 배출한 예절학자만 1112명에 이른다.
“사람들은 ‘예절학이 유학을 근간으로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해입니다. 예절이란 수천년간 이어진 한국인의 생활 여건 속에 고유 문화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대 생활과 한국 고유의 예절을 접합하려는 노력이 예절학자가 할 일입니다.”
그는 1983년 서울 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예의 한국을 재건해 한국인의 긍지를 드높이자’는 ‘예의생활 실천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예절은 곧 ‘사람 노릇’을 의미한다”면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려면 말과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절공부는 시대착오’라는 핀잔을 들으며 30년 전 한국전례연구원을 외롭게 시작했어요. 하지만 30년이 흘러 800명이 넘는 인사가 찾아와 축하해주시니 흥분을 감출 수 없네요.”
김 원장이 1977년 한국전례연구원을 연 것은 사회가 급변하면서 한국의 고유 예절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했기 때문. 그는 사재를 털어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한 아파트에 사랑방을 열고 사람들에게 예절을 가르쳤다. 그가 배출한 예절학자만 1112명에 이른다.
“사람들은 ‘예절학이 유학을 근간으로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해입니다. 예절이란 수천년간 이어진 한국인의 생활 여건 속에 고유 문화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대 생활과 한국 고유의 예절을 접합하려는 노력이 예절학자가 할 일입니다.”
그는 1983년 서울 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예의 한국을 재건해 한국인의 긍지를 드높이자’는 ‘예의생활 실천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예절은 곧 ‘사람 노릇’을 의미한다”면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려면 말과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