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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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고 추악한 가부장 사회의 폭력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5-02-24 1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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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칠고 추악한 가부장 사회의 폭력
    최양일의 ‘피와 뼈’는 결코 발렌타인 데이 같은 날 연인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사람들은 2시간 넘게 가부장제도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폭력을 종류별로 목격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영화가 그런 행위에 대한 변명을 하거나 권선징악적인 결말을 맺어주는 것도 아니다.

    영화의 원작은 제11회 야마모토 주고로상을 수상했던 양석일의 동명 소설. 영화와 소설은 작가의 아버지를 모델로 했다는 주인공 김준평의 어두운 일대기를 다룬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일자리를 찾아 오사카로 건너온 김준평의 일생은 거칠고 야만적이며 추악하기까지 하다. 그는 수많은 여자들을 겁탈하고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아랫사람들을 착취한다. 김준평이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자기 길을 가는 동안 그를 증오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자살하거나 체념하거나,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그를 닮아간다.

    ‘피와 뼈’는 증오의 기록이 아니다. 양석일은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와 함께한 그 끔찍한 세월이 일으킨 모든 감정에 무덤덤해진 듯하다. 영화 전체를 흐르는 김준평의 아들 마사오의 내레이션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덤덤하고 조용하다. 영화나 내레이션은 김준평에 대한 어떤 분석도 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엔 공포에 질리고 혐오로 구역질을 하던 관객들도 영화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냥 무덤덤해진다. 김준평의 이야기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고통과 증오의 일대기가 아니라, 야만적이고 무도덕한 맹수와 먹이의 기록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동물의 왕국’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면 그건 오히려 당연하다.

    김준평의 이야기에서 어떤 보편성을 찾는 것이 가능할까? 아마 많은 관객들은 그의 이야기에서 20세기 초반의 한국인에게 가해진 사회적 폭력이 어떻게 김준평 같은 괴물을 만들었는지 유추하고 싶을지도 모른다(만약 영화가 감독이 원했던 대로 원작을 보다 충실하게 살린 7시간짜리 대작으로 만들어졌다면 그런 식의 접근법도 가능했을 것이다). 아니면 김준평이 오사카의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가부장 사회의 폭력이 얼마나 극단적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의 낯설고 추해 보이는 일대기가 어떻게 가부장 제도 아래의 평범한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알력의 보다 과장된 버전이 될 수 있는지 증명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들은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피와 뼈’의 가장 큰 예술적 장점은 그런 분석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거칠고 추악한 가부장 사회의 폭력
    의미 있는 분석을 바탕으로 깔았다면 비교적 평범하고 장황한 변명이 되었을 김준평의 일대기는, 모든 자질구레한 드라마의 의무사항들을 제거하자 지금까지 우리가 접해왔던 것과 전혀 다른 형태의 괴물의 모습으로 다가와 관객들을 덮친다. 그 경험은 김준평만큼 추하고 불쾌한 것이지만, 그냥 무시하고 잊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강렬하다.

    Tips

    최양일(1949년생). 일본에서 활동하는 재일교포 감독이자 배우로, 영화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1993)로 널리 알려졌다. 재일교포 택시운전사를 소재로 한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는 그해 일본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의 신작 ‘피와 뼈’에서 한국인으로 나온 일본 배우 기타노 다케시는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배우이자 감독이며 코미디언일 것이다. 그의 대표작 ‘하나비’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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