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행정수도 건설과 관련한 노무현 대통령의 ‘밀어붙이기’가 자충수가 돼 거꾸로 스스로를 궁지에 몬 것이다. 열린우리당 한 의원은 “수도권에 대한 청사진을 세밀하게 준비한 뒤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노무현 대통령(가운데)이 1월29일 정부대전청사에서 열린 `지방화와 균형발전시대 개막식`에 참석해 개막 버튼을 누르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수도 이전 문제를 정치권의 논의와 국민적 합의를 통해 해결하지 못하고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결정까지 받게 했다면서 노무현 정부가 수도권 과밀인구 분산과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게 추진해온 수도 이전 사업을 전면 중단하기를 바란다고 꼬집었다. 정부 여당의 무능함이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행정수도 문제는 참여정부의 핵심과제로 정부의 진퇴를 걸고 반드시 성사시키겠다.”(2004년 6월15일)
노대통령의 발언에서 드러나듯 신행정수도 건설은 두말할 나위 없는 현 정부의 핵심 정책이다. 노대통령에게 신행정수도 건설은 지방분권을 실현하는 수단이자, 반드시 이뤄져야 할 ‘통치철학의 반영’이었으며, “행정수도 이전 반대를 불신임 운동으로 느낀다”고 했을 만큼 정권의 명운을 건 이슈였다. 대통령직인수위에 참여한 한 교수의 말이다.
“노대통령에게 신행정수도 건설은 과거사 진상 규명이나 국가보안법 폐지보다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노대통령이 대통령직 자체보다는 대통령직을 통해 한국 사회를 바꾸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신행정수도 건설에서 무력화된다면 대통령직에 앉아 있는 의미가 없어진다고 판단할 수 있다.”
민의 제대로 파악 못한 채 반대 세력 ‘반노’로 몰아
명운과 진퇴를 걸었던 만큼 노대통령은 권위와 위신에 큰 손상을 입었다. 2003년 10월13일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하면서 위기를 자초한 뒤 꼭 1년 만에 세 번째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두 번째 위기는 3월 국회의 탄핵 소추 의결). ‘특이한’ 논거를 내세운 헌재의 위헌 결정은 단순히 수도 이전이 무산됐다는 ‘정책의 실패’ 의미를 넘어 현 정부의 ‘앞날’과도 관련된 일대 사건이다.
노대통령은 ‘대선자금 수사’와 ‘헌정 사상 초유 탄핵’이라는 암초를 특유의 정면 돌파로 넘어선 바 있다. 그러나 여론의 흐름은 이전과 사뭇 다르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상대적 다수가 헌재 결정을 지지한다. 신행정수도 건설과 관련한 노대통령의 ‘밀어붙이기’가 자충수가 돼 거꾸로 스스로를 궁지에 몬 것이다. 열린우리당 한 의원은 “수도권에 대한 청사진을 세밀하게 준비한 뒤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특히 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주장을 사실상 ‘반노’로 지목해 신행정수도 건설을 ‘친노 대 반노’의 구도로 몰고 간 게 치명타가 됐다는 지적이 많다. 민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흑과 백의 양분법이 정국 주도권 상실로 이어지는 악수를 두게 했다는 말이다. 신행정수도 건설에 찬성하는 한나라당 한 의원은 “탄핵 전과 후의 노대통령은 크게 다르다. 과거와 달리 매우 오만해졌다. 수도 이전 정책만 해도 그렇다. 탄핵 이후 자신감이 넘쳐 뭔가 대단히 착각을 한 듯하다”고 꼬집었다.
“수도권 집중 억제와 낙후된 지역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해 청와대와 중앙정부부터 옮겨가겠다.”(2002년 9월30일)
10월20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수도 이전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은 대선 3개월여 전에 만들어졌다. 대선 승리를 위해 급조됐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급조된 정책은 숙성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충청표를 의식한 한나라당이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서 수도 이전이 급물살을 탔다.
“대선 공약이었고 대선에서 이겼으니 그대로 추진하면 된다”는 정치권의 일방통행에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상대적 다수의 국민 여론은 무시됐다.
“신행정수도 건설 정책은 국회에서 여야 4당의 합의로 통과된 만큼 이미 종결된 문제다.”(2004년 6월18일)
노대통령의 지방분권 정책은 상당한 공감대를 얻은 게 사실이다. 비용 대비 효과 등을 차치하면 수도 이전이 갖는 지방분권의 수단으로서의 가치는 매우 크다. 그럼에도 신행정수도 건설을 제대로 다듬지 않고 추진함으로써 소도 잃고 외양간도 잃는 우를 범했다는 지적이다. 노대통령은 대선 직전 국민투표를 거쳐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탄핵 복귀 이후엔 이미 종결된 사안이라고 말을 바꿨다. 게다가 신행정수도 건설이라는 ‘정책’에 대한 ‘건전한 비판’마저도 ‘정치 논리’로 응수했다.
“지금 신행정수도 이전 반대가 다시 제기되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나는 이것을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 운동, 퇴진운동으로 느끼고 있다.”(2004년 7월8일)
노대통령 잇단 강경 발언이 색깔론에 기름 부은 격
여론을 아랑곳하지 않고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운동, 퇴진운동”이라며 스스로 마침표를 찍고, 더 이상의 논쟁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모 아니면 도’ 식의 승부수 정치가 부메랑이 됐다는 비아냥거림은 그래서 나온다. 수도 이전 반대가 정권 퇴진운동이고 반대운동을 정권 퇴진운동이라고 규정한 것은 지지세력 결집엔 효과를 발휘했지만, 대국민 설득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구세력의 뿌리를 떠나서 새 세력이 국가를 지배하기 위한 터를 잡기 위해서는 천도가 필요하다.”(2004년 1월29일)
노대통령의 연이은 강경 발언은 오히려 구태의연한 ‘색깔론’에 기름을 붓는 꼴이 돼 지방분권과 수도권 집중 해소라는 수도 이전의 핵심 이슈를 가리게 했다. 수도 이전 반대 집회에선 “지배세력의 교체를 노린 것이다” “서울로 상징되는 기득권 세력을 해제하려는 것이다” “주류 교체를 통한 혁명을 꿈꾼다”는 등 ‘정책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노대통령에 대한 구태의연한 공격이 주로 제기됐다.
노대통령은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대화의 장을 만들기는커녕 수도 이전 반대세력에 반개혁세력이라는 옷을 입힘으로써 민심의 지지를 얻는 데도 실패했다. 수도 이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없애는 데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지방분권 정책수립에 관여한 한 교수는 “노대통령이 싫어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한 이데올로그들과 행정수도 이전 자체에 불안감을 느낀 국민들을 구별해서 접근하는 전략이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우리당 일각에서도 자성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국정 대폭 쇄신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는 것. 정장선 의원은 10월2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정부 여당이 이번 일을 계기로 국정운영 전반에 대해 반성하고 점검을 총체적으로 해야 한다. 혼란이 아닌 새로운 국민통합이 이뤄지는 계기가 되도록 국민에게 사과하고 후속조치에 전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내 진보파와 실용주의를 견지해온 중도 및 보수파의 갈등이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