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생 장례식 모습
1번을 붙이고 있는 이 보도자료의 첫 번째 문장은 ‘관련자 진술, 장준하 시체 사진, 당시 촉진(觸診)의사 소견 등을 근거로 장준하의 추락과정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재구성해본 결과 이제까지 알려진 시체발견 장소에서 추락 사망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고 적어놓았다. 장선생의 시신은 1975년 8월17일 경기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약사봉에 있는 한 절벽 밑에서 발견되었다. 지금도 이 절벽 밑에는 ‘오호! 장준하 선생’이라는 제목의 돌 비석에 ‘여기 이 말 없는 골짝은 빼앗긴 민주주의의 쟁취, 고루 잘 사는 사회, 민족의 자주 평화 통일 운동의 위대한 지도자 장준하 선생이 원통히 숨진 곳, 뜻을 같이 하는 젊은이들이 돌을 파 비를 세우니 비록 말 못하는 돌부리 풀 나무여! 먼 훗날 반드시 돌베개의 뜻을 옳게 증언하라’라는 글이 쓰여 있다.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선생의 시신이 있었던 약사봉 절벽. 이곳에는 장선생을 기리는 비석이 있다.
지난 3월 최교수는 홍익대 토목과의 오모 기사와 함께 이 절벽을 실측하고 실측 자료를 컴퓨터에 입력한 뒤 절벽 지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절벽 위에서 무게 70kg의 인체가 추락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조사했다. 절벽 위에는 바위로 형성된 협곡이 있어 장마철에는 제법 개울물이 쏟아지나 건기에는 가느다란 물줄기만 흐른다. 절벽 밑에는 폭 1.6m 정도의 평평한 공간이 있어, 절벽에서 떨어진 물은 이곳에 고였다가 다시 아래로 흘러간다. 1975년 장선생의 시신은 이 평평한 공간에서 누운 자세로 발견됐다. 따라서 최교수의 시뮬레이션은 높이 14m, 경사 65도 정도의 절벽에서 떨어진 인체가 과연 다른 곳으로 튕겨나가지 않고 폭 1.6m의 평평한 공간에 놓여 있을 수 있느냐를 밝히는 데 집중되었다. 최교수는 모두 12가지 자세로 인체를 추락시켜보았는데, 이중 아홉 번은 폭 1.6m 공간에 인체가 놓였고, 세 번은 그곳을 벗어나 더 아래로 튕겨나갔다. 최교수의 시뮬레이션은 9대 3의 비율로 추락한 인체가 평평한 곳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나온 것이다.
홍익대 최형연 교수
장선생 시신에는 골절상 찰과상 등 여러 가지 상처가 나 있었다. M조사관은 장선생이 절벽에서 추락했다면 이러한 상처가 생길 수 없다며 이러한 주장을 한 것이다.
의문사위 결정에 객관성•공정성 ‘의문’
절벽을 향해 바라본 경우
따라서 앞서의 9대 3 비율까지 고려한다면 8번이 가장 유력한 추락 자세로 선택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최교수는 “절벽에 추락할 경우 사람은 본능적으로 뭔가를 움켜잡거나 몸을 뒤틀 수 있는데 시뮬레이션에는 이러한 현상까지 입력할 수 없다. 따라서 완벽하게 추락을 재현할 수는 없지만 장선생은 대략 8번에 가까운 자세로 추락했을 것으로 본다. 내가 한 시뮬레이션이니 나는 내 판단에 대해 90점 정도를 줄 수 있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문사위는 최교수가 내세운 8번 자세를 선택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의문사위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최종 부합 점수표’는 아예 실려 있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대신 의문사위는 최교수가 ‘좌상 및 찰과상 결과’란 제목을 달아 정리한 표에서 ‘좌상 및 찰과상 결과’라는 제목을 삭제하고 대신 ‘결과해석’이라는 제목을 집어넣어 보도자료로 내놓았다. 최교수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임의로 개작해버린 것이다.
기자는 반론권을 주는 차원에서 의문사위의 K조사관과 M조사관에게 이러한 문제 등을 질의했다. 그러자 두 사람은 매우 당황해하며 “우리 말을 기사화할 것이냐. 당신은 취재를 목적으로 질문한다고 밝히지 않고 물었으니 우리 대답 역시 공식적인 것이 될 수가 없다”고 말하다가 “7월13일 대통령에게 보고할 최종보고서 초안이 작성되니 그날 물어달라”는 말만 반복했다(7월13일은 이 기사가 실린 ‘주간동아’가 발매되는 날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으나 이들은 같은 대답만 거듭했다). 6월28일 의문사위가 발표한 ‘결정’ 내용도 매우 흥미롭다.
이날 의문사위는 ‘시뮬레이션 실험 등을 통해 추락사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강조해놓고도 ‘장선생 사망 진상 규명은 불능’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의문사위의 이러한 결정은 과연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고 있는가. 의문사위의 조사와 결정에 객관성이 결여돼 있다면 ‘의문’은 의문사가 아닌 의문사위에 집중될 것이다. 추락사가 아니라고 해놓고도 왜 사망 원인을 밝히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의문사위의 관계자는 “시간이 부족해서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는 애매한 대답만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