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붕(牛棚). 중국 문화대혁명 때 지식인들을 임시로 수용했던 외양간을 말한다. 공식적으로는 노동개조원, 뒷날엔 흑방원(黑幇院)으로 불렸다. 홍위병들이 마오쩌둥(毛澤東)의 프롤레타리아 사령부인 혁명사령부의 반대편 ‘어둠 속에서 못된 짓만 일삼았던 사람들’을 가둬두고자 했던 공간이다. 수용된 이들에게 그곳은 너무나 가혹한 지옥이었다.
지금은 중국인들조차 우붕의 존재 를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다고 한다. 벌써 30년 넘게 지난 옛일이다.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은 계급사적 관점에서 중국의 역사를 다시 고쳐 쓰려고 했던 사건이었다. 그래서 혁명을 일으킨 이들은 정부관료와 특권층의 권력남용을 비판하고, 옛 질서나 전통을 뒤집으려 했으며, 소련식 사회주의나 자본주의의 길을 가려던 이들을 비판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은 실제로 극좌적 오류를 낳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혁명’과 ‘반역’의 대상이 됐고 ‘자본주의파’와 ‘반당반사회주의자’로 성토당했다. 1966년 5월부터 시작된 이 대혁명은 마오쩌둥이 죽고 혁명 4인방이 몰락하면서 10년 만에 막을 내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미혼탕(迷魂湯)을 마신 비인(非人)들이 날뛰던 그때’ 일은 어쨌든 중국 역사의 한 부분이 되었고, 그 상처가 아문 곳에서 중국의 역사는 지금 다시 쓰여지고 있다.
중국인들도 끄집어내기 싫어하는 어둠 속의 일을 굳이 다시 들춰낼 필요가 있을까. 그 자신이 우붕에 갇혀 참혹한 생활을 경험해야 했던 ‘중국의 석학’ 지센린(季羨林)은 “아니오”라고 고개를 젓는다.
“전에 없던 재앙을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는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당연히 받아야 할 교훈을 얻지 못할 것이며, 훗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또다시 미쳐서 그 잔혹한 바보짓을 되풀이할지도 모른다. 아,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더욱이 지센린은 오늘날 중국의 사회적 도덕 수준에 문제가 있고, 부정부패한 지방정부가 수두룩하며, 자질이 부족한 이들이 관료가 돼 있는 경우도 많은데 그 이유가 바로 문화대혁명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문화대혁명은 공식적으로 끝났지만 사실상 지금도 상처는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한때 상흔문학(傷痕文學)도 생겨났지만 지센린이 보기에 “문학에서 말한 상처는 머큐로크롬만 바르면 금세 나을 수 있는 찰과상일 뿐이었고, 진정한 상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꼭꼭 숨겨져 있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나섰다. 1992년 원고를 완성했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1998년에야 책이 출간됐다.
“이 책은 피로 바꾸고, 눈물로 쓴 책이다. 내가 살아남아 이 책을 쓴 것이야말로 내 평생 최대의 행복이요, 후세에 남겨줄 나의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다.”
지센린이 고난을 겪게 된 이유는문화대혁명의 발단이 됐던 야오원위안(姚文元)의 글 ‘해서파관을 비평함’에 대해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는 ‘감히’ 문화대혁명 4인방 중 한 사람이던 야오원위안을 비난했고 그로 인해 아끼는 제자에게서 반혁명주의 분자로 몰렸다. 제자들이 가해오는 고문과 신문으로 그는 깊이 절망했다. 어느 날은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려는 찰나에 다시 비판투쟁의 무대에 끌려나가기도 했다.
우붕에 갇혀서는 옥수수빵만 먹고 소나 말처럼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으며, 밤엔 전갈 등 온갖 벌레들이 득실대는 곳에서 몸을 긁으며 자야 했다. 길에서 끌려다니며 사람들이 던진 돌에 맞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됐고, 고무타이어로 감은 자전거 체인에 머리를 쉴 새 없이 맞아 피를 흘리기도 했다.
뭇 발길질에 고통받는 등 짐승만도 못한 생활을 묘사하면서도 그의 문체는 결코 분노로 가득하지 않다. 그것을 절제하려는 이성과 분노 사이에 형성된 팽팽한 긴장감이 이 책의 장점이다. 그는 책을 서술하며 ‘남을 욕하거나 감정적 서술을 하지 말 것. 화합을 위한 목적에 맞게 이름을 노출하지 않을 것’이라는 원칙을 거의 지켰다. 이른바 객관적인 역사 서술을 의미하는 춘추필법의 정신을 지킨 것이다. 단, 몸과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을 장난감 다루듯 했던 자에 대해서만큼은 분노를 억누르지 않았다.
문화대혁명을 다룬 책은 그동안 국내에서도 적잖이 출간됐다. 홍위병 시절을 회고한 진가개의 ‘어느 영화감독의 청춘’(푸른산 펴냄), 팔로군이던 혁명 간부의 아픔을 술회한 김학철의 ‘최후의 분대장’(문학과지성사), 지식인의 시대적 고통을 토로한 곽양옥의 ‘고깔모자를 쓴 지식인’(청화학술원) 등이 대표적인 책들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우리 역시 중국의 문화대혁명 못지않은 역사의 아픔을 많이 많은 지니고 있지만 과거 역사를 기록하는 데 인색했던 게 사실이다. 아픈 과거를 소중히 보듬어 안으려는 지식인의 책무를 느끼게 한다.
지센린 지음/ 이정선·김승룡 옮김/ 미다스북스 펴냄/ 392쪽/ 1만2000원
Tips | 상흔문학
1976년 이후 문화대혁명으로 인한 정치적 박해, 고통, 비극을 묘사한 문학을 일컫는다. 고발의식과 비극적인 색채가 특징이다. 대표작으로 ‘상흔’ ‘담임선생’ 등이 있다.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나 영화 ‘부용진’ ‘패왕별희’ 등에서도 이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중국인들조차 우붕의 존재 를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다고 한다. 벌써 30년 넘게 지난 옛일이다.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은 계급사적 관점에서 중국의 역사를 다시 고쳐 쓰려고 했던 사건이었다. 그래서 혁명을 일으킨 이들은 정부관료와 특권층의 권력남용을 비판하고, 옛 질서나 전통을 뒤집으려 했으며, 소련식 사회주의나 자본주의의 길을 가려던 이들을 비판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은 실제로 극좌적 오류를 낳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혁명’과 ‘반역’의 대상이 됐고 ‘자본주의파’와 ‘반당반사회주의자’로 성토당했다. 1966년 5월부터 시작된 이 대혁명은 마오쩌둥이 죽고 혁명 4인방이 몰락하면서 10년 만에 막을 내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미혼탕(迷魂湯)을 마신 비인(非人)들이 날뛰던 그때’ 일은 어쨌든 중국 역사의 한 부분이 되었고, 그 상처가 아문 곳에서 중국의 역사는 지금 다시 쓰여지고 있다.
중국인들도 끄집어내기 싫어하는 어둠 속의 일을 굳이 다시 들춰낼 필요가 있을까. 그 자신이 우붕에 갇혀 참혹한 생활을 경험해야 했던 ‘중국의 석학’ 지센린(季羨林)은 “아니오”라고 고개를 젓는다.
“전에 없던 재앙을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는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당연히 받아야 할 교훈을 얻지 못할 것이며, 훗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또다시 미쳐서 그 잔혹한 바보짓을 되풀이할지도 모른다. 아,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더욱이 지센린은 오늘날 중국의 사회적 도덕 수준에 문제가 있고, 부정부패한 지방정부가 수두룩하며, 자질이 부족한 이들이 관료가 돼 있는 경우도 많은데 그 이유가 바로 문화대혁명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문화대혁명은 공식적으로 끝났지만 사실상 지금도 상처는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한때 상흔문학(傷痕文學)도 생겨났지만 지센린이 보기에 “문학에서 말한 상처는 머큐로크롬만 바르면 금세 나을 수 있는 찰과상일 뿐이었고, 진정한 상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꼭꼭 숨겨져 있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나섰다. 1992년 원고를 완성했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1998년에야 책이 출간됐다.
“이 책은 피로 바꾸고, 눈물로 쓴 책이다. 내가 살아남아 이 책을 쓴 것이야말로 내 평생 최대의 행복이요, 후세에 남겨줄 나의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다.”
지센린이 고난을 겪게 된 이유는문화대혁명의 발단이 됐던 야오원위안(姚文元)의 글 ‘해서파관을 비평함’에 대해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는 ‘감히’ 문화대혁명 4인방 중 한 사람이던 야오원위안을 비난했고 그로 인해 아끼는 제자에게서 반혁명주의 분자로 몰렸다. 제자들이 가해오는 고문과 신문으로 그는 깊이 절망했다. 어느 날은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려는 찰나에 다시 비판투쟁의 무대에 끌려나가기도 했다.
우붕에 갇혀서는 옥수수빵만 먹고 소나 말처럼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으며, 밤엔 전갈 등 온갖 벌레들이 득실대는 곳에서 몸을 긁으며 자야 했다. 길에서 끌려다니며 사람들이 던진 돌에 맞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됐고, 고무타이어로 감은 자전거 체인에 머리를 쉴 새 없이 맞아 피를 흘리기도 했다.
뭇 발길질에 고통받는 등 짐승만도 못한 생활을 묘사하면서도 그의 문체는 결코 분노로 가득하지 않다. 그것을 절제하려는 이성과 분노 사이에 형성된 팽팽한 긴장감이 이 책의 장점이다. 그는 책을 서술하며 ‘남을 욕하거나 감정적 서술을 하지 말 것. 화합을 위한 목적에 맞게 이름을 노출하지 않을 것’이라는 원칙을 거의 지켰다. 이른바 객관적인 역사 서술을 의미하는 춘추필법의 정신을 지킨 것이다. 단, 몸과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을 장난감 다루듯 했던 자에 대해서만큼은 분노를 억누르지 않았다.
문화대혁명을 다룬 책은 그동안 국내에서도 적잖이 출간됐다. 홍위병 시절을 회고한 진가개의 ‘어느 영화감독의 청춘’(푸른산 펴냄), 팔로군이던 혁명 간부의 아픔을 술회한 김학철의 ‘최후의 분대장’(문학과지성사), 지식인의 시대적 고통을 토로한 곽양옥의 ‘고깔모자를 쓴 지식인’(청화학술원) 등이 대표적인 책들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우리 역시 중국의 문화대혁명 못지않은 역사의 아픔을 많이 많은 지니고 있지만 과거 역사를 기록하는 데 인색했던 게 사실이다. 아픈 과거를 소중히 보듬어 안으려는 지식인의 책무를 느끼게 한다.
지센린 지음/ 이정선·김승룡 옮김/ 미다스북스 펴냄/ 392쪽/ 1만2000원
Tips | 상흔문학
1976년 이후 문화대혁명으로 인한 정치적 박해, 고통, 비극을 묘사한 문학을 일컫는다. 고발의식과 비극적인 색채가 특징이다. 대표작으로 ‘상흔’ ‘담임선생’ 등이 있다.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나 영화 ‘부용진’ ‘패왕별희’ 등에서도 이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