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장작을 땐 차방(茶室)에서 메주를 꺼내 처소인 이불재 처마 밑에 달았다. 이곳은 북향이어서 메주는 오후 내내 햇볕이 잘 드는 서쪽 벽에 매달았다. 이제 내년에 먹을 된장국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우리가 먹는 국 중에서 최고는 아마도 된장국이 아닐까. 최고가 되려면 빼어난 맛이나 희귀한 맛만 가지고는 안 된다. 날마다 먹어도 물리지 않고 처음 맛보는 맛인 듯 한결같아야 한다. 사람도 그러하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거나 달변인 사람보다는 무던하거나 말수가 적은 사람이 더 편하고 진실한 경우가 많다.
기름진 국이 허한 속을 달래줄 수도 있겠지만 날마다 세 끼씩 고깃국을 먹는다고 가정해보라. 누구라도 나중에는 밥상이 싫어질 터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서울 출생인 아내가 잘 끓이는 국은 쇠고기를 우린 국물에 잘게 썬 무를 넣은 쇠고기 뭇국이다. 뜨거울수록 더 시원한 맛이 나는 서울 경기 지방의 전통 뭇국인데, 신혼 때는 누구나 아내의 요리솜씨를 약간 과장하여 칭찬하게 마련이다. 그랬더니 아내는 한 보름 정도 쇠고기 뭇국만 밥상에 올렸다. 지금도 나는 쇠고기 뭇국만 나오면 느끼하고 노린내가 날 것 같아 가능하면 숟가락질을 삼간다.
땀 흘려 거둔 농산물 가득한 창고 미소가 저절로
감자나 무를 넣은 된장국은 아무리 먹어도 물리는 법이 없다. 삼삼한 국물에 고춧가루를 넣으면 매콤해져서 입 안에 침이 돌고 비었던 속은 개운해진다. 철을 가리지 않고 아무 때나 들이켜도 질리지 않는다. 된장국과 가장 궁합이 맞는 재료는 햇감자일 것이다. 된장국 속에서 익힌 햇감자는 맨 처음 건져 먹는 것이 더 고소한 맛이 난다.
이 산중에서 먹는 된장국이 더 맛있게 여겨지는 것은 작년에 수확한 콩으로 쑨 메주로 담근 된장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어디서 생산하든 다 같은 콩이겠지만 처음부터 메주가 되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 맛이 더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음식이란 혀만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충만하게 해주기도 한다. 정력에 좋다면 지렁이까지 먹는 사람들에게는 공허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분명 그렇다. 콩 한 알에 스민 햇볕과 비바람과 나의 수고가 새삼 느껴지는 것이다.
참고로 콩은 다른 농산물과 달리 중국산과 국산을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농협에서는 콩을 취급하지 않는다. 많은 중국산 농산물들이 토종으로 바뀌어 팔리고 있으니 콩만큼은 더욱 가려 먹어야 할 것 같다.
메주를 띄우면서 한 가지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 메주를 띄우려면 반드시 짚을 사용해야 한다. 비닐 끈으로 묶은 메주는 뜨지 않고 썩어버린다. 메주를 달아맬 때도 짚으로 꼰 새끼를 써야 한다. 내 처소 위 농막에 사는 서씨는 자꾸 벌어지는 메주의 모양을 바로잡기 위해 비닐테이프를 사용했는데 그 부분만 썩어버렸다고 투덜댔다.
집에는 아직도 털지 않은 콩 줄기가 너댓 단이나 있다. 늦게 심은 콩이어서 그만큼 수확이 늦어 메주를 쑤는 데 보태지는 못했지만 새들의 먹이로 놓아둔 것이다. 오솔길 입구에 있는 논에서 나온 콩도 세 되나 된다. 구씨에게 논을 빌려주었더니 올해 콩을 심어 수확해서는 답례로 가져온 콩이다.
지난해 눈이 많이 내리면 새들이 집 부근까지 다가와 먹이를 구하려고 소리치곤 했다. 그래서 물까치나 어치들에게 먹이려고 저잣거리로 나가 콩을 사왔었는데, 올해는 콩이 많아졌으니 그럴 일이 없어졌다. 작은 새들이 먹는 들깨 씨도 충분하다.
한겨울이 되면 멧돼지에게 고구마를 줄 계획이다. 올해 고구마를 두 가마니나 캤다. 우리 집을 지키는 강아지 보현이와 문수가 먹을 사료도 두 포대나 사 창고에 넣어두었다. 요즘 보현이는 코가 축축하고 흰털에 윤기가 흐른다. 입맛이 떨어진 것 같아 호박과 고구마를 썰어 죽을 쑤어 주었더니 식욕을 회복한 것이다.
겨울의 창고는 봄의 빈 창고와 다르다. 창고에는 고구마와 땅콩, 콩, 호박 등 먹을 것이 가득하다. 나와 보현이는 물론 산중 처소를 찾는 산새들까지 겨우내 먹을 양식이다. 창고 문을 열어볼 때마다 미소가 절로 나온다. 벽에 걸린 낫과 삽과 괭이들을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내 마음처럼 농기구들도 봄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우리가 먹는 국 중에서 최고는 아마도 된장국이 아닐까. 최고가 되려면 빼어난 맛이나 희귀한 맛만 가지고는 안 된다. 날마다 먹어도 물리지 않고 처음 맛보는 맛인 듯 한결같아야 한다. 사람도 그러하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거나 달변인 사람보다는 무던하거나 말수가 적은 사람이 더 편하고 진실한 경우가 많다.
기름진 국이 허한 속을 달래줄 수도 있겠지만 날마다 세 끼씩 고깃국을 먹는다고 가정해보라. 누구라도 나중에는 밥상이 싫어질 터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서울 출생인 아내가 잘 끓이는 국은 쇠고기를 우린 국물에 잘게 썬 무를 넣은 쇠고기 뭇국이다. 뜨거울수록 더 시원한 맛이 나는 서울 경기 지방의 전통 뭇국인데, 신혼 때는 누구나 아내의 요리솜씨를 약간 과장하여 칭찬하게 마련이다. 그랬더니 아내는 한 보름 정도 쇠고기 뭇국만 밥상에 올렸다. 지금도 나는 쇠고기 뭇국만 나오면 느끼하고 노린내가 날 것 같아 가능하면 숟가락질을 삼간다.
땀 흘려 거둔 농산물 가득한 창고 미소가 저절로
감자나 무를 넣은 된장국은 아무리 먹어도 물리는 법이 없다. 삼삼한 국물에 고춧가루를 넣으면 매콤해져서 입 안에 침이 돌고 비었던 속은 개운해진다. 철을 가리지 않고 아무 때나 들이켜도 질리지 않는다. 된장국과 가장 궁합이 맞는 재료는 햇감자일 것이다. 된장국 속에서 익힌 햇감자는 맨 처음 건져 먹는 것이 더 고소한 맛이 난다.
이 산중에서 먹는 된장국이 더 맛있게 여겨지는 것은 작년에 수확한 콩으로 쑨 메주로 담근 된장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어디서 생산하든 다 같은 콩이겠지만 처음부터 메주가 되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 맛이 더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음식이란 혀만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충만하게 해주기도 한다. 정력에 좋다면 지렁이까지 먹는 사람들에게는 공허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분명 그렇다. 콩 한 알에 스민 햇볕과 비바람과 나의 수고가 새삼 느껴지는 것이다.
참고로 콩은 다른 농산물과 달리 중국산과 국산을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농협에서는 콩을 취급하지 않는다. 많은 중국산 농산물들이 토종으로 바뀌어 팔리고 있으니 콩만큼은 더욱 가려 먹어야 할 것 같다.
메주를 띄우면서 한 가지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 메주를 띄우려면 반드시 짚을 사용해야 한다. 비닐 끈으로 묶은 메주는 뜨지 않고 썩어버린다. 메주를 달아맬 때도 짚으로 꼰 새끼를 써야 한다. 내 처소 위 농막에 사는 서씨는 자꾸 벌어지는 메주의 모양을 바로잡기 위해 비닐테이프를 사용했는데 그 부분만 썩어버렸다고 투덜댔다.
집에는 아직도 털지 않은 콩 줄기가 너댓 단이나 있다. 늦게 심은 콩이어서 그만큼 수확이 늦어 메주를 쑤는 데 보태지는 못했지만 새들의 먹이로 놓아둔 것이다. 오솔길 입구에 있는 논에서 나온 콩도 세 되나 된다. 구씨에게 논을 빌려주었더니 올해 콩을 심어 수확해서는 답례로 가져온 콩이다.
지난해 눈이 많이 내리면 새들이 집 부근까지 다가와 먹이를 구하려고 소리치곤 했다. 그래서 물까치나 어치들에게 먹이려고 저잣거리로 나가 콩을 사왔었는데, 올해는 콩이 많아졌으니 그럴 일이 없어졌다. 작은 새들이 먹는 들깨 씨도 충분하다.
한겨울이 되면 멧돼지에게 고구마를 줄 계획이다. 올해 고구마를 두 가마니나 캤다. 우리 집을 지키는 강아지 보현이와 문수가 먹을 사료도 두 포대나 사 창고에 넣어두었다. 요즘 보현이는 코가 축축하고 흰털에 윤기가 흐른다. 입맛이 떨어진 것 같아 호박과 고구마를 썰어 죽을 쑤어 주었더니 식욕을 회복한 것이다.
겨울의 창고는 봄의 빈 창고와 다르다. 창고에는 고구마와 땅콩, 콩, 호박 등 먹을 것이 가득하다. 나와 보현이는 물론 산중 처소를 찾는 산새들까지 겨우내 먹을 양식이다. 창고 문을 열어볼 때마다 미소가 절로 나온다. 벽에 걸린 낫과 삽과 괭이들을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내 마음처럼 농기구들도 봄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