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가 2003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인 의상. 가장 인기 높은 짝퉁 중 하나인 프라다 가방(작은 사진).
지하철과 버스에서도 사치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여성들을 쉽게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제값 주고 정품을 산 소비자들도 적지 않지만 워낙 ‘짝퉁’이 범람하다 보니 어떤 게 ‘진퉁’(정품을 가리키는 짝퉁업계의 속어)이고 어떤 게 짝퉁인지 구별하기도 쉽지 않다. 브로셔만 갖다 주면 24시간 안에 똑같이 만들어준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한국 짝퉁 제조업자들의 모조품 제조 실력은 악명이 높다.
그런데 당국의 단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조품 제조기술 하나로 돈을 쓸어 담아온 짝퉁 제조업자들이 하나둘씩 도산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중국산 짝퉁이 물밀듯이 한국으로 밀려들어 왔기 때문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유통되는 짝퉁 제품의 70% 이상이 중국산이라고 한다. 짝퉁 제조업자들은 하나같이 “상상할 수도 없이 싼값의 물건을 만들어내는 ‘중국놈들’ 때문에 이대로라면 1~2년도 못 버틸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러 상인들도 짝퉁 찾아 이젠 중국으로
한국 짝퉁의 메카는 널리 알려진 대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시장이다. 지금도 이태원시장 대부분의 가게에선 수입 사치품의 짝퉁이 판매되고 있지만 과거의 명성은 빛 바랜 지 오래다. 이태원시장에 짝퉁을 납품하는 짝퉁 제조업자 김모씨(40)는 “서울지검 수원지검을 비롯해 멀리 청주지검에서까지 한 건 올리려고 심심하면 단속을 나오는 데다 동대문 남대문에서 유통되는 중국제품들 때문에 짝퉁 제조공장들이 모두 폐업 일보 직전”이라고 전했다.
경기 동두천시 의정부시 등 서울 인근 경기도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짝퉁 제조공장의 절반 정도가 이미 도산한 상태다. 개중엔 중국에서 짝퉁을 수입해 정밀하게 재가공해 ‘고급 짝퉁’을 만드는 것으로 업종을 전환한 업자들도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모조품을 ‘찍어 오는’(밀수하는) 일을 하고 있는 조모씨(29)는 “중국 짝퉁의 수준이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높아졌다”면서 “한국에서 특A급(외관상으로 진품과 구별할 수 없는 모조품)으로 통하는 제품보다 모조기술이 더 뛰어나다”고 귀띔했다.
중국산 가짜 사치품이 범람하는 것은 그만큼 마진이 크기 때문. 중국산 짝퉁 밀수업자들은 ‘밀수원가’가 10달러(약 1만2000원) 선인 가짜 명품시계를 국내에 들여와 수십만원에 판매한다. 동대문시장의 한 상인은 “루이비통 핸드백의 경우 한국 짝퉁보다 중국 짝퉁의 판매이익이 2~3배 이상 많다”고 말했다.
동대문 모조품 시장을 중국산이 장악하기 시작한 것은 동대문시장이 몰락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동대문시장은 얼마 전까지 러시아 상인들의 천국이었다. 싼값에 질 좋은 제품을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 짝퉁은 덤이었다. 굳이 진짜라고 속여서 판매하지 않아도 러시아에서 10배 이상의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아이템이었던 것. 러시아 상인들은 이제 중국으로 간다.
한때 러시아 상인들을 대상으로 하루 수천만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는 동대문시장 상인 배연자씨(50)는 “한국에서 명품이 태어나지 못한 것은 짝퉁을 만들거나 해외 브랜드의 디자인을 베껴 쉽게 돈을 벌려는 풍조가 만연했기 때문”이라며 “명품 브랜드 하나 만들어내지 못하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짝퉁과 베끼기 의류산업만 고집해서는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하니 동대문시장을 비롯한 의류산업 전체가 흔들리는 것”이라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