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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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때문에’ SBS PD들 경찰 출두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3-10-15 13: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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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 때문에’ SBS PD들 경찰 출두
    지난 7월18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두툼한 고소장이 접수됐다. 고소인은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이하 문예협), 피고소인은 서울방송(SBS)이었다. 이로 인해 10명의 SBS 라디오 PD들이 줄줄이 영등포경찰서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문예협 소속 회원의 시, 수필, 소설 등 저작물 72편을 방송에서 ‘무단 낭송’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고소 후 3개월이 지난 지금, 조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SBS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시·수필·소설을 인용하는 일이 완전히 사라졌다. 심지어 독서 프로그램 ‘책하고 놀자’는 분쟁의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주 6회 방송이 1회로 줄어버렸다. 작가들에게, 또 방송사와 청취자들에게 이번 사태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1984년 5월 출범한 문예협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 저작권신탁관리업을 하는 사단법인으로 시인, 소설가, 교수 등 1500여명의 회원이 제작한 각종 저작물에 대한 집중 관리를 표방한다. 이번 고소 건은 그중 문예저작물의 ‘방송 무단 사용’에 대한 법적 대응이라는 것이 문예협의 설명이다. 그러나 SBS측은 “저작권료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인 때에, 또 다른 방송사는 놔두고 SBS만 ‘찍어’ 민사도 아닌 형사 고소를 한 것은 과한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문예물 저작권료를 둘러싼 문예협과 방송사 간의 갈등은 1993년부터 시작됐다. 1996년에 1차, 1999년에 2차 합의서를 교환했으나 모호한 문구 등으로 인해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문예물에 대한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양측간 이견이 없다. 문제는 액수와 범위. 문예협은 “첫째, 시 전편 혹은 이에 상응하는 분량의 수필, 소설을 낭독할 경우 5만원을 지불하라. 둘째, 작품 인용 여부를 확인하는 데 드는 연간 모니터링 비용 1억원을 방송 3사가 공동 부담하라. 셋째, 소설을 드라마화할 경우 재방송, 비디오테이프 판매 등에 해당하는 저작권료를 문예협을 통해 작가에게 지불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방송사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 작가들에게 사실상 재방송 등에 대한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예협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방송사측은 “시 전편을 기준으로 해 1999년 합의한 금액이 1만5000원이었다. 5만원은 너무 비싸다. 둘째, 모니터링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대신 방송사가 직접 문예물 방송 횟수를 체크하겠다. 셋째, 재방송 등에 대한 원작사용료는 문예협을 통해서가 아니라 당사자 간 계약에 따라 작가에게 직접 지불하는 것이 옳다. 무엇보다 방송사는 현재도 작가에게 재방송에 해당하는 저작권료 등을 일괄 계산해 지불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세 안건 중 양측이 의견 접근을 보이고 있는 것은 모니터링 비용 정도.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여전히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문예협은 “세 안건이 일괄적으로 타결되기 전에는 고소를 취하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SBS 또한 “시 낭송 안 한다고 방송 못하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문예물 인용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소송 자체에도 문제가 많다. 방송에서 시를 소개한 것을 ‘타인의 저작물을 몰래 사용해 경제적 이득을 취한 행위’라고만 볼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정작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청취자들이다. 작가들 역시 작품을 선뵐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잃고 있다. 문예협 회원인 한 중견 시인은 “문예 저작권에 대한 방송사의 전향적 자세가 절실하다”면서도 “문예협 또한 설문조사를 통해 회원들의 정확한 의사를 파악하는 등 보다 적극적이고 조직적인 활동을 펴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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