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일어난 집단 탈주 사건을 계기로 불법체류 외국인 관리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9월28일 일산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결의대회’에 참석해 단속 추방 반대 등을 외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왼쪽). 불법체류 노동자들은 한국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구로구 조선족 교회에서 상담을 하고 있는 불법체류자들.
찬드라센은 결국 탈주 11시간 만인 이날 오후 8시, 경기 광주시 초월면의 한 공장 기숙사에서 붙잡혀 화성보호소에 재수용됐다. 그와 함께 탈주했던 10명 가운데 중국인 진씨(36) 등 6명도 체포되었다. 체포된 이들은 경찰이 행방을 쫓고 있는 4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본국 송환을 앞두고 있는 상태다.
이로써 화성보호소의 외국인 노동자 탈주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불법체류 외국인 관리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미 30만명을 넘어선 외국인 불법체류자 문제를 방치할 경우 이 같은 사건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에 따른 것. 따라서 먼저 이 사건의 발생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30만명 넘은 외국인 불법체류자들
문제는 이들이 집단 탈주한 원인에 대해서는 법무부와 인권단체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는 점이다. 평등노조 이주지부 등 불법체류 외국인 보호단체들은 화성보호소의 반인권적 시스템이 이들의 집단 탈주를 부른 주범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평등노조 이주지부 서선영씨는 “화성보호소는 이름만 ‘보호소’일 뿐 사실상의 ‘감옥’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라며 “불법체류 노동자들을 범죄자처럼 다루고 폭행, 폭언을 일삼으며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지 않은 것이 이번 사건을 부른 주범”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1일부터 11월21일까지 화성보호소에 수용돼 있었던 방글라데시인 노동자 비두씨(30)도 “외부인과 면회를 할 때면 면회실에 들어갈 때, 나올 때 두 번씩 몸수색을 당해야 했다”며 “투명유리로 막혀 있는 면회실에서 뭘 주고받을 수 있다고 또 검색을 하느냐며 항의하다 욕설을 듣는 등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 모멸감을 느낀 적이 많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뜨거운 물이 일주일에 두 번씩, 한 번에 30분 정도밖에 안 나오고 음식에도 건더기가 거의 없는 등 생활하면서 불편한 점이 적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강력히 반박하고 있다. 법무부 출입국관리국 원종택 사무관은 “우리나라의 외국인 보호시설은 외국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며 “종교에 따라 음식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고, 다양한 언어로 씌어진 책도 비치했다. 이것이 부족하다면 불법체류자들을 호텔에 보호하라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법무부가 파악하고 있는 이들의 탈주 원인은 강제 추방을 피하기 위한 것. 원사무관은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은 대부분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수천만원의 빚을 졌는데 그 돈을 다 갚지 못한 채 강제 추방당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겉으로는 처우 문제를 지적하는 듯하지만 사실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탈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사무관은 또 “올 초 한 외국인 수용자가 화성보호소에서 전기충격봉으로 맞는 등 인권을 침해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지만 그의 주장 중 상당부분이 ‘사실무근’으로 판명났다”며 “이들이 사실이 아닌 내용을 주장하며 보호시설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느냐”라고 반박했다.
항공권을 취소하기 위해 여행사 앞에 늘어서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이들은 지난해 법무부가 불법체류 외국인 자진신고를 받을 때 출국 증거용으로 제시하기 위해 항공권을 구입했으나 새 정부가 들어서자 외국인 노동자 정책 변화를 기대해 항공권을 취소한 채 한국에서 불법체류하고 있다.
부천 외국인노동자의 집 이란주 정책국장도 “지방 출입국관리소에 있는 보호실 중에는 외국인들이 창살 안에 갇혀 있어 자유롭게 물을 먹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열악한 곳도 있다”며 “지난해 7월에는 한 외국인이 목이 마르니 물 좀 달라고 했다가 밤새 욕설과 폭언을 들었다며 시민단체에 신고해 해당 직원에게 사과를 받도록 해준 일도 있다”고 밝혔다.
불법체류 사실이 적발돼 화성보호소에 수용돼 있다가 9월26일 본국인 방글라데시로 추방된 사합우딘씨의 딸 사필양(11)은 서툰 한국말로 “아빠가 이가 많이 아팠는데 경찰에 잡혀간 뒤로 약을 못 먹어서 매일 피가 났어요. 거기 사람들이 약 안 줬어요. 나쁜 아저씨가 있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은 외국인 보호시설의 열악한 처우와 추방을 피하려는 외국인들의 의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사건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안산의 한 가구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한 방글라데시인 불법체류자도 “내가 한국에서 받는 월급이 120만원 정도 되는데 만약 방글라데시에서 이 정도 일을 한다면 7만원밖에 못 받는다”라며 “한국인에 비하면 적은 월급이고, 사장이 때때로 욕을 하거나 폭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버티는 것은 이 돈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고백해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그가 한국에 오기 위해 브로커에게 준 돈은 1300만원. 이대로 본국으로 돌아간다면 평생 일해도 다 못 갚을 만큼 큰돈이다.
현재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 외국인 산업연수협력단에 의해 허가된 송출기관에서 산업연수생 입국과 관련해 받을 수 있는 수수료는 340달러부터 1300달러까지지만, 지난해 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들이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지불한 비용은 평균 3800달러에 이른다.
이와 관련, 부천 외국인노동자의 집 이란주 정책국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보호소를 탈출하고 산업연수생 자격을 포기하고 작업장을 이탈하는 것은 이 빚을 고스란히 안고 고국에 돌아갈 경우 살아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며 “법무부는 11월15일부터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강력 단속, 추방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는데 불합리한 송출비용 문제 등을 개선하지 못하면 논란과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국인노동자인권모임 석원정 소장도 “과거 우리 국민들이 일본에서 불법체류 노동자로 일하던 시절 소문으로 들려오는 일본의 외국인 보호시설 ‘오무라 수용소’ 이야기에 반일감정을 느꼈던 경우가 많지 않느냐”며 “수용소 운영체계를 인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꾸고,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는 불법체류자의 강제 추방을 자제하는 등 정책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