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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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무슨 곡일까?” 흥미진진 ‘즉흥 음악’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3-08-13 1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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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엔 무슨 곡일까?”  흥미진진  ‘즉흥 음악’
    8월8일 오후 8시, 300석 규모의 작은 금호아트홀 객석에는 낯선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것은 단순히 연주회 직전에 느껴지는 의례적인 긴장이 아니었다. 관객들의 손에 들린 연주회 프로그램에는 달랑 연주자 이름만 씌어 있을 뿐, 연주곡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다.

    이날 연주회의 주인공 박창수씨(사진)는 프리 뮤직과 뮤직 퍼포먼스 분야에서 독창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독특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다. 그는 이날의 연주도 전부 ‘프리 뮤직’, 말 그대로 ‘자유로운 즉흥음악’으로 채웠다. 공연 전 만난 박씨는 “내 자신도 조금 후에 어떤 음악을 연주하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프리 뮤직은 오로지 무대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그때 관객의 반응에 교감하며 음악을 만들어나가죠. 관객과 나누는 일종의 대화인 셈입니다. 제가 무대에서 관객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면, 그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분명 있습니다. 그 반응에 감응해서 다시 대화를 이어나가는 거죠.” 박씨는 차분하게 ‘프리 뮤직’의 원리를 설명하며 ‘약간 허무맹랑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이다’라고 덧붙였다.

    기자가 자신의 설명을 영 못 알아듣는다고 판단한 듯 그는 불쑥 “어차피 리허설 중이니 나와 함께 연주해보자”며 기자를 무대 위로 이끌었다. 기자가 초보적인 수준으로 피아노 건반을 동동거리자 그는 거기에 맞춰 즉흥연주를 했다. 말보다도 이 한 번의 경험이 프리 뮤직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감각적으로 알려주었다. 그것은 음악의 지평을 넓혀보려는, 자유롭고도 과감한 시도였다.

    다시 연주회 직전, 관객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 속에서 박씨가 무대 위로 걸어나왔다. 그는 연주 전에 “요즘 우울한 편이다. 음악도 조금은 우울한 분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무대에 올라온 그는 한참이나 피아노를 붙들고 서 있었다. 의자에 앉고서도 또 한참이나 골똘한 모습으로 피아노를 응시한다. 그러더니 그의 말처럼 느리고 우울한 음악을 천천히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내 음악은 빠르고 격렬한, 폭풍우 같은 곡으로 바뀌었다.



    마치 무당이 굿을 하듯 그의 손가락이 건반 위를 종횡무진 질주했다. 폭발적으로 건반을 때리기도 하고, 건반을 연주하며 피아노 현을 뜯어 이색적인 울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음악은 시종 어둡고 날카로웠으며 팽팽했다. 이날 밤 그의 신경이 그처럼 날이 서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관객의 반응이 그랬던 것일까. 모든 것이 기묘했으나 연주자에게도 관객에게도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하는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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