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One’(작은사진은 부분)
2개 층으로 나뉜 전시장에는 모두 6점의 작품이 나누어 설치돼 있다. 그 6점이 형식적으로 너무나 미니멀해서 공간은 썰렁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관람객들은 작품에 점점 다가가게 되고, 서서히 빨려 들어가, 마침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다. 그것은 시각적이며, 시간적인 경험이다.
그의 작품은 여러모로 영화 ‘매트릭스’를 연상시켰다. 아무래도 최근 불어닥친 ‘매트릭스’ 열풍 때문이겠지만, 뛰어난 예술가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본능적인 위기감과 혜안 같은 게 있는 모양이다. 즉 ‘나’는 내가 생각하는 어떤 존재가 아니며, 진실이 버티고 있는 세계란 허위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서도호의 작품 ‘Who Am We?’는 작은 점들이 인쇄된 벽지처럼 보이는데, 잘 들여다보면 그것이 각기 다른 인물의 얼굴 사진임을 알 수 있다. 관람객들의 감상 거리에 따라 그것은 개인이기도 하고, 벽면의 일부이기도 한 것이다. 속이 텅 빈 거대한 갑옷 ‘Some/One’은 군인들이 목에 걸고 다니는 인식표를 모아 붙인 것이다. 인식표 한 개는 영웅적으로 전투를 벌였던 젊은 청년의 인생 전체를 상징하기도 하고, 갑옷을 이룬 금속조각이기도 하다. 서도호를 세계적 스타 작가로 만든 그의 작품 ‘Floor’는 거대한 마루유리를 키가 5cm인 수많은 인간들이 떠받치고 있는 설치작품이다. 그들은 하늘을 받치고 있다고 믿으나 실상 그것은 마루다. 그들이 손바닥을 통해 느끼는 ‘진실’은 차갑고 단단한 어떤 것이지만, 그것은 바깥세계를 차단하는 유리판이다. 그들은 그것이 무너질까 두려워 영원히 팔을 내리지 못한다.
서도호의 작품은 이처럼 나와 집단, 정체성과 익명성, 장소의 전이 등 무겁고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들을 보는 것은 매우 즐겁다. 특히 이번 전시의 설득력은 상당부분 작품과 공간, 관람객의 관계를 섬세하게 배려한 설치와 조명 덕분이다.
단 서도호가 집단을 상징하기 위해 자주 등장시키는, 한국적 텍스트에서는 이미 과거 시제로 읽히는 군인이라는 코드가 그 점을 잊게 할 만큼 매끈하고 세련된 형태로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그의 작품 앞에서 관람객은 잠시 헷갈리게 된다.
그의 분명한 문제제기 앞에서 또 한 번 거대자본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매트릭스’를 떠올리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9월7일까지. 전시 문의 02-733-8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