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
“하루는 부시가 우리가 쉬는 농장에 와서 (방 안에 놓여 있는) 바바라의 책상에 발을 턱 걸쳐놓더라. 그랬더니 나도 무서워하는 바바라가,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 일어서더니 ‘발을 내려놓으라’고 훈계했다. 내가 ‘당신이 혼내는 그 사람은 이 나라 대통령’이라고 말해줬다. 그러자 바바라가 ‘노’라면서 ‘그는 대통령이기 전에 나의 아들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그랬더니 부시가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잡더라.”
아버지 부시는 이 얘기를 하면서 “자기 아들을 만나 ‘이렇게’ 하면 통할 것”이라고 세세한 방법을 노대통령에게 전수했다는 게 문실장의 설명이다. 노대통령도 “부시를 만나면 꼭 그렇게 하겠다”며 미국으로 떠났다는 것.
그렇지만 문실장은 부시의 이 훈수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결과가 잘 나오면 몰라도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했다’고 소개하는 것은 모양새가 좀 그렇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버지 부시는 이번 한미 정상을 연결하는 매우 유용한 ‘메신저’였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정상회담 첫 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귀한 손님이 올 때 선발대를 보내는데 이번에 한국에도 보냈다. 선발대 단장이 누구인지 아느냐. 바로 우리 아버지다.”
노대통령도 부시의 말을 받아 아버지 부시와의 대화내용을 설명하며 분위기를 풀었다고 한다. 정상회담 직후 노대통령은 수행단에게 “아버지 부시에게 전화를 걸어 서울에서 한 말이 맞았다고 얘기해야겠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반미(反美)에서 찬미(讚美)로 변신한 노무현 대미 코드를 읽을 수 있는 단초가 부시의 조언 속에 숨어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부시의 훈수는 무엇이었을까. 문실장은 조만간 구체적 내용을 공개키로 취재진들과 약속했다. 문실장은 북한과 관련해서도 미묘한 발언을 했다.
“지금 북한은 새로운 정부를 실험하고 있다. 북한이 여러 채널을 통해 ‘노통’과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제안’을 해오고 있는데 노대통령이 ‘치워라, 안 한다’고 버티고 있다. 노대통령은 북한의 수를 훤히 내다보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통상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나서는 것이 지금까지 통치권자가 걷는 일반적인 수순이다. 북한도 이런 남한의 허점을 파고들며 실리를 챙겼다. 외형상 햇볕정책을 계승한 참여정부의 대북정책도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노대통령은 북한측의 어마어마한 제의를 거절하고 있다. 과연 북한의 제의는 무엇이고 노대통령은 왜 이를 거절했을까. 문실장은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지난 4월 중순 “철저한 현실주의자인 노대통령은 지금 북한과 정상회담을 해봐야 아무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