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을 복원하겠다는 서울시의 구상에 대해 흠잡을 이유는 없다. 황량한 도심에 맑은 물을 흐르게 하겠다는 발상대로만 된다면야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마련된다는 차원을 넘어 서울이라는 도시의 무미건조한 이미지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만하다.
서울은 1020만명이 사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대도시다. 인구로만 따지면 어느 나라를 가도 이만한 메트로폴리탄을 찾기 어렵다. 외국의 유수한 도시에 갈 때마다 놀라는 것 중의 하나도 바로 이 점이다. 가령 런던만 해도 인구가 700만명을 조금 넘을 뿐이고, 파리는 ‘겨우’ 210만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서울이 과연 그 덩치만큼의 뚜렷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서울을 무대로 한 영화를 볼 때 등장인물의 생김새와 한글간판을 제외하면 서울이라는 걸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많은 이들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갖고 있는 좋은 자산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한다. 그런 생각을 확인해주는 건 지은 지 100년이 넘은 기념비적 건물인 연세대 신학관 건물을 교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철거했다는 등의 뉴스를 들을 때다. 그건 백범 김구 선생이 해방 직후 귀국해 머물던 자택(경교장)을 사립병원 건물로 쓰고 있는 것과 같은 무신경의 재연처럼 비친다.
낡은 건물을 헐고 더 좋은 건물을 짓기는 쉽다. 그러나 벽돌과 시멘트 강철로 다시 살려낼 수 없는 것도 있다. 그건 그 건물 속에 깃든 ‘역사’와 ‘이야기’다. 바로 그 역사가 무생물인 건물에 온기와 생명을 불어넣는다. 도시의 인상이란 그런 살아 있는 건물의 이미지가 모이고 모여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도시의 개성을 갖추는 데 장구한 역사와 세월의 두께가 쌓인 골동품 같은 건물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의 빌바오라는 도시가 이를 잘 보여준다. 빌바오는 유럽의 손꼽히는 문화도시지만 원래 문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빌바오는 제철소와 철광석 광산과 조선소가 있던 우중충한 공업도시였다. 이 도시는 1980년대 들어 급격히 쇠퇴의 길을 걷는다.
1991년 바스크 정부는 시를 몰락의 늪에서 구해낼 수 있는 한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미술관 유치였다. 빌바오시는 1997년 1억5000만 달러를 들여 구겐하임 미술관을 완공했다. 뉴욕에 본관이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은 세계 사립미술관 중 최고봉.
구겐하임 미술관을 건립한 이후 빌바오는 기적을 연출하면서 대변신에 성공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을 보려고 이 작은 도시로 모여들었다. 빌바오는 건축학도들은 물론이고 문화 예술이나 관광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한테는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떠올랐다. 미술관 하나가 도시의 이미지를 확 바꿔놓은 것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소장품보다도 미술관 자체가 구경거리가 되고 있는 특이한 건물이다. 스페인까지 찾아가보지 않더라도 살짝 이 미술관을 엿볼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몇 년 전 개봉된 007 영화 ‘언리미티드’(사진) 도입부에 이 미술관이 잠깐 등장한다.
위기를 피한 주인공이 황급히 호텔을 나서는 장면 뒤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아름다운 윤곽이 잡힌다. 관객 중의 몇 명이나 그 미술관을 알아차렸는지는 모르지만 미술관은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 속 화면을 통해 훌륭히 선전한 셈이다. 홍보를 위해 빌바오시가 이 영화 제작진에게 낸 후원금은 전혀 없다. 영화 제작진 스스로 영화를 빛낼 배경화면으로 빌바오를 선택한 것이다.
이런 게 진짜 홍보일 것이다. 서울이 정말 ‘덩치값’을 하기 위해 한 수 배워봄 직한 도시가 인구 40만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 빌바오라는 생각이 든다. ‘개발시대’의 부작용에 대한 반성문을 쓰겠다면서, 또 영락없는 ‘70년대식 추진력’으로 밀어붙이는 식은 아무래도 곤란하다.
서울은 1020만명이 사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대도시다. 인구로만 따지면 어느 나라를 가도 이만한 메트로폴리탄을 찾기 어렵다. 외국의 유수한 도시에 갈 때마다 놀라는 것 중의 하나도 바로 이 점이다. 가령 런던만 해도 인구가 700만명을 조금 넘을 뿐이고, 파리는 ‘겨우’ 210만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서울이 과연 그 덩치만큼의 뚜렷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서울을 무대로 한 영화를 볼 때 등장인물의 생김새와 한글간판을 제외하면 서울이라는 걸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많은 이들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갖고 있는 좋은 자산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한다. 그런 생각을 확인해주는 건 지은 지 100년이 넘은 기념비적 건물인 연세대 신학관 건물을 교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철거했다는 등의 뉴스를 들을 때다. 그건 백범 김구 선생이 해방 직후 귀국해 머물던 자택(경교장)을 사립병원 건물로 쓰고 있는 것과 같은 무신경의 재연처럼 비친다.
낡은 건물을 헐고 더 좋은 건물을 짓기는 쉽다. 그러나 벽돌과 시멘트 강철로 다시 살려낼 수 없는 것도 있다. 그건 그 건물 속에 깃든 ‘역사’와 ‘이야기’다. 바로 그 역사가 무생물인 건물에 온기와 생명을 불어넣는다. 도시의 인상이란 그런 살아 있는 건물의 이미지가 모이고 모여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도시의 개성을 갖추는 데 장구한 역사와 세월의 두께가 쌓인 골동품 같은 건물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의 빌바오라는 도시가 이를 잘 보여준다. 빌바오는 유럽의 손꼽히는 문화도시지만 원래 문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빌바오는 제철소와 철광석 광산과 조선소가 있던 우중충한 공업도시였다. 이 도시는 1980년대 들어 급격히 쇠퇴의 길을 걷는다.
1991년 바스크 정부는 시를 몰락의 늪에서 구해낼 수 있는 한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미술관 유치였다. 빌바오시는 1997년 1억5000만 달러를 들여 구겐하임 미술관을 완공했다. 뉴욕에 본관이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은 세계 사립미술관 중 최고봉.
구겐하임 미술관을 건립한 이후 빌바오는 기적을 연출하면서 대변신에 성공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을 보려고 이 작은 도시로 모여들었다. 빌바오는 건축학도들은 물론이고 문화 예술이나 관광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한테는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떠올랐다. 미술관 하나가 도시의 이미지를 확 바꿔놓은 것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소장품보다도 미술관 자체가 구경거리가 되고 있는 특이한 건물이다. 스페인까지 찾아가보지 않더라도 살짝 이 미술관을 엿볼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몇 년 전 개봉된 007 영화 ‘언리미티드’(사진) 도입부에 이 미술관이 잠깐 등장한다.
위기를 피한 주인공이 황급히 호텔을 나서는 장면 뒤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아름다운 윤곽이 잡힌다. 관객 중의 몇 명이나 그 미술관을 알아차렸는지는 모르지만 미술관은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 속 화면을 통해 훌륭히 선전한 셈이다. 홍보를 위해 빌바오시가 이 영화 제작진에게 낸 후원금은 전혀 없다. 영화 제작진 스스로 영화를 빛낼 배경화면으로 빌바오를 선택한 것이다.
이런 게 진짜 홍보일 것이다. 서울이 정말 ‘덩치값’을 하기 위해 한 수 배워봄 직한 도시가 인구 40만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 빌바오라는 생각이 든다. ‘개발시대’의 부작용에 대한 반성문을 쓰겠다면서, 또 영락없는 ‘70년대식 추진력’으로 밀어붙이는 식은 아무래도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