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추위를 잊은 오뚝이 학교의 수업시간. 과학교사 최상희씨가 ‘대기와 물의 순환’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 마포구 염리동 가파른 언덕 위에 자리잡은 ‘오뚝이 일요학교’는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허술한 창 틈으로 겨울 바람이 비집고 들어왔지만, 석유 난로 두 대를 피워놓은 작은 교실 안에서 학생들은 추위를 잊은 듯했다.
하루 쉬는 날 꼬박 바쳐 공부
오뚝이 일요학교는 일요일에만 열리는 야학. 갖가지 사연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이들이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을 꼬박 바쳐 공부하는 곳이다. 이 날도 중년 주부부터 20대 청년까지 ‘공부가 하고 싶은’ 이들이 모여 수업을 듣고 있었다. 이들이 배우는 과목은 국어, 영어, 수학 같은 검정고시 과목과 철학, 노래, 한문 등의 교양 수업.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10교시 수업이 쉴 틈 없이 이어지지만 누구도 불만이 없다. 열심히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소중한 휴일을 포기한 이들의 유일한 바람이기 때문이다.
오뚝이 학교 교사 경력 5년의 최상희씨(35·학원강사)가 ‘대기와 물의 순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자 학생들은 저마다 고개를 숙이고 필기에 여념이 없다. 지표면에서 증발한 물이 얼음, 물, 수증기로 모습을 바꿔가며 순환하는 과정이 공책 한가득 그려진다. 40대 아저씨도, 머리가 희끗해지기 시작하는 주부도 이 시간에는 모두 똑같은 학생일 뿐이다.
봉제공장에 다니는 허광수씨(32)는 이 학교를 통해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한 두 동생의 뒤를 이어 오뚝이 학교에 입학한 학생. 평소 오전 2시에 일어나 신문을 배달하고, 아침에는 공장에 출근하는 그에게 일요일은 ‘하루 종일 자는 날’이었다. 하지만 오뚝이 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허씨는 매주 수업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 주에는 가방을 열어볼 틈조차 없어서 숙제를 못해왔다”며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할 정도로 열심이다. 공부가 재미있고, 학교가 좋기 때문이다. 이제 열심히 공부해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오뚝이 학교에서 교사로 자원봉사하는 것이 허씨의 꿈이 됐다.
대학 진학을 앞둔 아들에게 아버지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오뚝이 학교에 들어온 김봉규 할아버지(62)는 이곳에서 초·중·고교 과정을 모두 마치고 방송통신대에 합격하기도 했다. 김 할아버지는 지금도 오뚝이 학교의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해 교사와 학생들을 격려하며 이 학교의 ‘아버지’ 역할을 한다.
이 같은 학생들의 열의에 교사들도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다. 보수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매달 회비를 내가며 강단에 서지만 오뚝이 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을 만나는 일요일이 기다려진다고 말한다.
대학생이나 직장인인 이들이 매주 일요일을 투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학습자료를 만들다 보면 수업 준비에 꼬박 일주일이 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 일을 하는 건 언제나 들인 노력보다 더 많은 보답을 주는 오뚝이 학교의 학생들 때문이다.
영어교사 강성민씨(36·학원강사)는 “매주 일요일을 희생하는 일이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곳에서 정말 소중한 것을 배워 가는 건 학생이 아니라 바로 우리 교사들”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고.
실제로 강씨는, 매일 야근을 해야 하는 공장에 다니면서도 언제나 수업 시작 30분 전에 학교에 나와 예습을 하곤 하던 허영숙씨 등 많은 졸업생들을 잊지 못한다.
쉬는 시간에는 교사와 학생이 함께 모여 레크리에이션을 즐긴다.오뚝이 학교 학생들은 일요일을 꼬박 바쳐 공부한다. 점심시간에 벌어진 라면파티. (위 부터)
오뚝이 일요학교가 처음 문을 연 건 1980년. 당시 고등학교 교사였던 고순계씨가 서울역과 종로 주변의 신문팔이, 구두닦이 소년들을 모아놓고 공부를 가르친 게 시작이었다. 인근 외국어학원의 빈 강의실을 전전하며 수업을 계속하던 오뚝이 일요학교는 80년대 야학이 번성하면서 학생 수 수백명, 교사는 30여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가 변하면서 오뚝이 학교도 부침을 겪었다. 현재 오뚝이 학교의 식구는 디딤반, 도약반 합쳐서 8명의 학생과 7명의 교사가 전부. 과거와 비교하면 ‘초미니 학교’가 된 셈이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세상을 보는 눈을 배워나가는 오뚝이 학교의 기본 정신은 여전히 그대로다. 오히려 교사와 학생이 더 많은 부분을 나누며 야학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나가고 있다. 이 학교 최상희 교장은 “학교 규모가 클 때는 교사가 담당하는 학생 수가 너무 많아 서로 벽이 생기고 학생들이 학교에 정을 붙이지 못해 떠나는 경우도 많았다”며 “요새는 교사와 학생 사이를 넘어서는 진정한 ‘생활공동체’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학을 가르치는 안영덕씨(30·회사원)도 지금의 오뚝이 학교가 야학의 본래 취지에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야학에 나오는 건 검정고시에 합격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학교다움’을 느끼고 싶어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외된 이들에게 소중한 학창시절의 추억을 만들어주는 것이 야학의 중요한 존재 이유”라는 게 안씨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오뚝이 학교는 매주 한 번씩 학생회의를 통해 학생들이 학교 운영을 결정하도록 하고, 수업 후에는 자주 뒤풀이를 하기도 하며, 생일잔치 등 다양한 행사를 열기도 한다. 대통령 선거나 촛불 시위 같은 사회 현안에 대해서는 교사, 학생이 함께 모여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오뚝이 학교 생활을 통해 세상을 바로 보는 힘을 배웠다는 정해강씨(24·대학생)는 “검정고시를 공부하는 학원은 많지만 교사와 학생이 삶을 나누고 함께 발전해나갈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다”며 “이것이 바로 야학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 불사조 정신으로 뭉친 우리들/ 가난과 역경 속에 인생을 배운다/ 오늘도 오뚝오뚝 내일은 우리의 것/ 뛰면 된다 만사는 맘먹기 달린 것 」
오뚝이 학교 개교 당시 고순계씨가 작곡한 교가는 아직도 오뚝이 식구들을 가장 잘 대변해준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의 근성으로 오뚝이 일요학교는 계속될 것이다. 소외된 이들을 위한 삶과 교육의 공동체로 자리매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