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영화배우에 대해 ‘영화 인생’ 운운하는 것이 우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디카프리오는 12년간의 연기생활 동안 이미 천국과 지옥을 모두 경험했다. 디카프리오는 스크린 데뷔작인 ‘디스 보이스 라이프’(93)와 ‘길버트 그레이프’(93)에서 연기 신동으로 떠오른 후, ‘로미오와 줄리엣’(96)에서 세계적 청춘 스타로, 그리고 ‘타이타닉’(97)의 빅 히트로 1급의 흥행배우가 되었다.
그러나 빠른 성공처럼 실패도 단숨에 왔다. 후속작인 ‘철가면’(98)과 ‘비치’(2000)의 연이은 실패. 한번 등돌린 대중은 더없이 차가웠다. 당시 디카프리오를 커버로 내세운 미국 대중지 ‘롤링 스톤즈’는 잡지 창간 이래로 가장 저조한 판매율을 보였다. 디카프리오의 추락은 태양 가까이 다가간 이카로스에 비교될 정도였다. 디카프리오는 ‘타이타닉’처럼 이대로 침몰할 것인가? 그러나 그는 두 명의 거물급 감독과 함께 화려하게 할리우드로 돌아왔다.
천국과 지옥 경험한 12년 영화 인생
영화 ‘갱스 오브 뉴욕’(왼쪽)과 ‘캐치 미 이프 유 캔’에 출연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한 배우가 동시 개봉하는 두 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할리우드에서도 드문 일이다.
그러나 이처럼 상반된 역할인데도 불구하고 두 감독의 평가는 모두 호의적이다. “레오는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날것 그대로의 배우’다. 이것은 배우로서 최대의 장점이다.” 스필버그의 말이다. 스코시즈 감독은 차기작인 ‘비행사’에 다시 디카프리오를 출연시키기로 결정했다. 한편, ‘물랭루즈’의 바즈 루어만 감독도 2004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는 영화 ‘알렉산더 대왕’에 디카프리오를 캐스팅했다.
배우로 데뷔하기 전까지, 디카프리오는 앙상한 체격 때문에 또래의 아이들 사이에서 ‘왕따’ 당하던 소년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괴로웠던 기억은 야구를 못한다고 아이들에게 기절할 때까지 뭇매를 맞았던 일입니다.” 디카프리오는 ‘뉴욕타임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30명 정도의 아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공을 마구 던졌어요. 도망가려 했지만 아이들이 운동화 끈을 서로 묶어놓아 뛸 수가 없었죠.”
그러나 열한 살 때 이복 형을 따라 한 연예 매니지먼트사에 갔던 일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TV에서는 그다지 각광받지 못했지만 93년 ‘디스 보이스 라이프’에서 대배우 로버트 드 니로의 상대역으로 출연하며 할리우드의 ‘연기 신동’으로 떠올랐다. “그때 저는 드 니로가 어떤 배우인지 거의 몰랐어요. 그의 대표작인 ‘택시 드라이버’나 ‘성난 황소’도 보지 않았으니까요. 아마 드 니로가 얼마나 대단한 배우인지를 알았다면 오히려 주눅이 들어 연기하지 못했을 겁니다.” 드 니로는 ‘이 소년은 무언가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다’며 그를 극찬했다.
서른도 안 된 나이지만 디카프리오는 영화 속에서 참으로 다양한 인생을 살았다. ‘타이타닉’ ‘디스 보이스 라이프’ ‘길버트 그레이프’에 출연한 디카프리오(위부터)
그러나 세계인들에게 디카프리오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심은 영화는 역시 바즈 루어만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이 영화는 시쳇말로 디카프리오에 의해 ‘떴다’. ‘연기 기계’. 루어만 감독은 디카프리오를 이렇게 불렀다. “그는 각각의 장면이 요구하는 감정으로 단숨에 몰입하는 배우였어요. 열아홉 살이라는 나이를 생각해보면 정말 드문 배우죠.”
‘로미오와 줄리엣’의 전 세계적 흥행 성공에 이어, 메가톤급 폭탄인 ‘타이타닉’이 등장했다. 디카프리오는 비틀스나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되었다. 심지어 영화 상영이 일절 금지되었던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타이타닉’은 몰래 상영되었다.
‘비치’의 실패 이후, 디카프리오는 숨 가쁘게 달려왔던 페이스를 스스로 조절하기로 결심했다. 두 편의 영화가 연달아 실패했지만, 할리우드는 쉬지 않고 그에게 구애해왔다. 디카프리오는 많은 역들을 거절했다. 그가 거절한 역 중에는 ‘스타워즈’의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스파이더맨’의 타이틀 롤도 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스타덤
사실 지나치게 빠른 성공에 대한 부담감은 배우를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제임스 딘이나 리버 피닉스처럼 말이다. 그러나 디카프리오는 번개 같은 성공과 추락의 와중에서 자신을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LA 고속도로를 달리며 끊임없이 내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자, 생각해봐, 난 지금 뭘 하고 있지? 정말 하고 싶은 영화에 출연한 건가? 난 과거에 내 친구들이 알던 레오 그대로인가?’ 하고 말이죠.”
그의 긴 침묵을 깬 것은 스코시즈 감독이다. “레오와 일하면서 저절로 예전의 로버트 드 니로를 떠올렸습니다. 그에게는 70년대 배우들에게 넘쳤던 정열이 있어요.” 스코시즈 감독은 작품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도 흥행에서 쓴맛을 본 경험이 많다. 그는 디카프리오의 출연으로 ‘갱스…’가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둘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영화에 출연하면 사람들이 내게 몰려와 악수를 청한다. 그러나 영화에 나오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구경할 뿐이지 악수하려고 하지는 않는다”고 인기 배우와 한물 간 배우 사이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디카프리오. 그는 차 대신 전기로 충전하는 골프 카트를 타고 다닐 만큼 열렬한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한편 디카프리오의 또 다른 변신을 볼 수 있는 영화 ‘갱스…’와 ‘캐치 미…’는 각기 내년 2월14일과 1월23일 국내에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