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1일 미국 워싱턴에서 ‘성서 고고학 비평(BAR)’이 개최한 컨퍼런스에서 보고된 유골함 하나가 전 세계 신학계와 기독교계를 흥분시키고 있는 가운데, 이의 입수 과정 및 소유권을 둘러싼 뒷이야기가 무성하다. 문제의 유골함에는 아람어로 ‘야곱, 요셉의 아들, 예수의 형제’라는 문구가 2000년 전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또렷이 새겨져 있다. 이 유골함의 주인임을 알려주는 ‘야곱’은 한글판 성경에 ‘야고보(영어판 성경에는 제임스)’라고 나오는 예수의 동생 이름으로, 만일 이 유골함이 실제로 예수의 동생 야고보의 것으로 밝혀지면 예수라는 인물의 역사적 실존 여부를 입증할 귀중한 증거가 되는 셈이다. 신학계가 이 유골함을 지금까지 발견된 신약시대 유물 중 최고의 것으로 평가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동안 예수의 실존 여부에 관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가 신약성경 외에 예수의 실존 여부를 밝혀줄 역사적 증거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예수와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동시대의 상황을 입증하는 중요한 발견들은 있었다. 1990년 예루살렘에서 발견된 ‘가야바’의 묘와 68년 발견된 예수시대에 십자가 처형을 당했던 유대인들의 유적은, 신약성경에서 예수를 핍박했던 것으로 언급된 대제사장 가야바가 실존인물이었고 당시에 실제로 십자가 처형이 널리 행해졌음을 밝혀주었다.
소유주는 입수 과정에 대해 침묵
또한 이 발견으로 학계는 그때까지의 십자가 처형 방식 이론을 수정해야 했다. 즉 알려진 것처럼 예수는 손바닥에 못박힌 것이 아니라 손목에 못박혔으며, 십자가에는 손을 못박기 위한 가로대 외에 죄수의 둔부 부분에 고통을 가중시키기 위한 또 하나의 가로대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러한 발견들은 예수의 실존 여부를 직접 밝혀주지는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교회측이 주장하는 예수와 직접 관련된 증거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이탈리아 토리노(Turin) 대성당에 있는 성의(聖衣)다. 이는 예수의 시신을 감쌌던 수의로 전해진다. 사진 판독 결과 이 수의에는 손과 발에 상처 입은 사람의 형상이 찍혀 있고 혈흔과 땀이 분석되었다. 가톨릭에서는 이를 예수의 형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1988년 옥스퍼드 등 3개 연구소에서 행해진 탄소 방사성 동위원소 시험 결과 이 천의 연대는 1260년에서 1390년 사이의 것으로 밝혀졌다. 예수를 감쌌던 수의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학자들의 다양한 반론이 제기되어 이를 조사하기 위한 국제연구소까지 설립되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 밖에도 여러 교회가 예수가 못박혔던 십자가의 조각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들 또한 사실을 입증할 만한 구체적 증거를 내놓지는 못했었다.
예수와 동시대의 문헌에 예수란 이름이 등장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물론 요세프스(3~100)의 저작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그의 저작들은 신약성경 외에 동시대를 다룬 거의 유일한 역사서다. 그러나 그의 저술 ‘유대인의 고대유물(The Antiquities of the Jews)’에 예수가 등장하지만 이마저도 후대 기독교 필사자들에 의해 편집되었을 것으로 의심받는 실정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예수를 이단으로 규정하며 예수의 신성을 철저히 부정하는 유대교의 문헌에도 예수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구약성경과 함께 유대인의 삶을 규정하는 중요한 문헌인 탈무드에는 “예수는 유대교 랍비, ‘예호수아 밴 피르히야’의 제자였는데 불경스러운 발언으로 인해 문하에서 파문당했다. 그 후 예수가 그 발언을 취소하였음에도 랍비는 용서하지 않았고, 랍비가 그를 다시 받아들이려 했을 때 예수는 이미 우상숭배자가 되어 있었다”는 내용이 있다.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가 다르므로 역사적으로 이 사건이 실재했을 가능성은 없지만 이 기록의 중요성은 예수의 배교에 대해 유대교 스스로 유대교 랍비에게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는 점에 있다.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혐오감은 ‘예수’라는 이름 자체에도 잘 나타나 있다. 예수의 본래 히브리어 이름은 ‘그가 구원하실 것이다’라는 뜻을 가진 ‘예수아’였다. 그러나 탈무드를 비롯한 후대 유대교 문헌에서는 ‘예수아’를 히브리어로 ‘그의 이름과 그의 기억을 지워주소서’라는 문장의 첫 글자 조합으로 여겨지는 ‘예수’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 예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겠다는 그들의 의지인 것이다. 그나마 예수란 이름마저도 부르기를 거부하고 단지 ‘그 사람’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 같은 예수의 실존 여부를 둘러싼 논쟁에 실마리를 제공할 유골함은 현재 캐나다의 토론토에 위치한 온타리오 박물관(Royal Ontario Museum)에 전시되고 있다. 전시는 내년 2월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이 유골함의 소유주인 오데드 골란(51)은 엔지니어이면서 골동품 수집가로 알려져 있는데 자신이 공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으며 유골함의 입수 과정에 대해서도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이 유골함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 유골함 자체는 1세기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예수의 동생 야곱이 62년에 사망한 기록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그러나 유골함에 새겨진 문자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는 유골함의 출토 지점 등에 대한 조사가 보완돼야 하는데 오데드 골란은 예루살렘의 한 골동품상으로부터 이를 구입했다는 사실만을 밝힌 채 자세한 입수 과정 등을 밝히지 않고 있어서 이를 둘러싼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이스라엘 골동품 관리법에 따르면 이 법이 제정된 해인 1978년을 기준으로 그 전에 출토된 골동품에 대해서는 개인의 소유를 인정하지만 그 후의 출토품에 대해서는 모두 국가 소유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실정법에 어두운 ‘성서 고고학 비평’의 허셀 솅크스 편집장은 워싱턴의 컨퍼런스에서 “(유골함을) 텔아비브의 한 골동품 수집가가 15년 전에 200~700달러 정도를 주고 구입했다”고 밝히고 말았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유골함은 이스라엘 소유가 된다. 이스라엘 골동품 관리국(IAA)은 그의 발언에 주목하고 오데드 골란을 심문했으나 그는 이를 35년 전에 구입했고 다른 사실들은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35년 전이라면 그가 불과 열여섯 살 때라는 이야기가 된다.
IAA측은 “이스라엘 골동품의 90% 이상이 전국 3만개의 유적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이들 대부분은 보호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거의 매일 밤 이들 유적지는 도굴당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 유골함 역시 도굴된 것이 골동품상을 거쳐 현 소유주에게 들어갔을 것이 확실하다는 입장이다. 이 경우 국가가 유골함의 소유권을 선언하고 현 소유주는 이스라엘 국립박물관 등이 제시하는 가격에 소유권을 넘겨야 한다. 가격은 약 20만 달러가 될 전망. 물론 이 유골함의 실제 가치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이다. 그러나 정작 IAA측이 우려하는 것은 가격보다도 현재 소유주인 오데드 골란이 해외에서 물건을 매각해버릴 가능성이다. IAA 관계자는 “그를 법정에 세운다 해도 재판이 진행되는 데 4년이 걸린다. 결국 그는 약간의 벌금을 물고 유골함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골함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한 학계의 논쟁이 뜨거운 만큼 무대 뒤에서는 소유권을 둘러싼 신경전도 한창인 것이다. 그러나 결과가 어찌 되든 기독교 역사를 다시 쓸 수도 있는 중요한 발견이 해프닝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예수의 실존 여부에 관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가 신약성경 외에 예수의 실존 여부를 밝혀줄 역사적 증거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예수와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동시대의 상황을 입증하는 중요한 발견들은 있었다. 1990년 예루살렘에서 발견된 ‘가야바’의 묘와 68년 발견된 예수시대에 십자가 처형을 당했던 유대인들의 유적은, 신약성경에서 예수를 핍박했던 것으로 언급된 대제사장 가야바가 실존인물이었고 당시에 실제로 십자가 처형이 널리 행해졌음을 밝혀주었다.
소유주는 입수 과정에 대해 침묵
또한 이 발견으로 학계는 그때까지의 십자가 처형 방식 이론을 수정해야 했다. 즉 알려진 것처럼 예수는 손바닥에 못박힌 것이 아니라 손목에 못박혔으며, 십자가에는 손을 못박기 위한 가로대 외에 죄수의 둔부 부분에 고통을 가중시키기 위한 또 하나의 가로대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러한 발견들은 예수의 실존 여부를 직접 밝혀주지는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교회측이 주장하는 예수와 직접 관련된 증거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이탈리아 토리노(Turin) 대성당에 있는 성의(聖衣)다. 이는 예수의 시신을 감쌌던 수의로 전해진다. 사진 판독 결과 이 수의에는 손과 발에 상처 입은 사람의 형상이 찍혀 있고 혈흔과 땀이 분석되었다. 가톨릭에서는 이를 예수의 형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1988년 옥스퍼드 등 3개 연구소에서 행해진 탄소 방사성 동위원소 시험 결과 이 천의 연대는 1260년에서 1390년 사이의 것으로 밝혀졌다. 예수를 감쌌던 수의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학자들의 다양한 반론이 제기되어 이를 조사하기 위한 국제연구소까지 설립되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 밖에도 여러 교회가 예수가 못박혔던 십자가의 조각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들 또한 사실을 입증할 만한 구체적 증거를 내놓지는 못했었다.
예수와 동시대의 문헌에 예수란 이름이 등장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물론 요세프스(3~100)의 저작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그의 저작들은 신약성경 외에 동시대를 다룬 거의 유일한 역사서다. 그러나 그의 저술 ‘유대인의 고대유물(The Antiquities of the Jews)’에 예수가 등장하지만 이마저도 후대 기독교 필사자들에 의해 편집되었을 것으로 의심받는 실정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예수를 이단으로 규정하며 예수의 신성을 철저히 부정하는 유대교의 문헌에도 예수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구약성경과 함께 유대인의 삶을 규정하는 중요한 문헌인 탈무드에는 “예수는 유대교 랍비, ‘예호수아 밴 피르히야’의 제자였는데 불경스러운 발언으로 인해 문하에서 파문당했다. 그 후 예수가 그 발언을 취소하였음에도 랍비는 용서하지 않았고, 랍비가 그를 다시 받아들이려 했을 때 예수는 이미 우상숭배자가 되어 있었다”는 내용이 있다.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가 다르므로 역사적으로 이 사건이 실재했을 가능성은 없지만 이 기록의 중요성은 예수의 배교에 대해 유대교 스스로 유대교 랍비에게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는 점에 있다.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혐오감은 ‘예수’라는 이름 자체에도 잘 나타나 있다. 예수의 본래 히브리어 이름은 ‘그가 구원하실 것이다’라는 뜻을 가진 ‘예수아’였다. 그러나 탈무드를 비롯한 후대 유대교 문헌에서는 ‘예수아’를 히브리어로 ‘그의 이름과 그의 기억을 지워주소서’라는 문장의 첫 글자 조합으로 여겨지는 ‘예수’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 예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겠다는 그들의 의지인 것이다. 그나마 예수란 이름마저도 부르기를 거부하고 단지 ‘그 사람’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 같은 예수의 실존 여부를 둘러싼 논쟁에 실마리를 제공할 유골함은 현재 캐나다의 토론토에 위치한 온타리오 박물관(Royal Ontario Museum)에 전시되고 있다. 전시는 내년 2월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이 유골함의 소유주인 오데드 골란(51)은 엔지니어이면서 골동품 수집가로 알려져 있는데 자신이 공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으며 유골함의 입수 과정에 대해서도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이 유골함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 유골함 자체는 1세기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예수의 동생 야곱이 62년에 사망한 기록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그러나 유골함에 새겨진 문자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는 유골함의 출토 지점 등에 대한 조사가 보완돼야 하는데 오데드 골란은 예루살렘의 한 골동품상으로부터 이를 구입했다는 사실만을 밝힌 채 자세한 입수 과정 등을 밝히지 않고 있어서 이를 둘러싼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이스라엘 골동품 관리법에 따르면 이 법이 제정된 해인 1978년을 기준으로 그 전에 출토된 골동품에 대해서는 개인의 소유를 인정하지만 그 후의 출토품에 대해서는 모두 국가 소유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실정법에 어두운 ‘성서 고고학 비평’의 허셀 솅크스 편집장은 워싱턴의 컨퍼런스에서 “(유골함을) 텔아비브의 한 골동품 수집가가 15년 전에 200~700달러 정도를 주고 구입했다”고 밝히고 말았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유골함은 이스라엘 소유가 된다. 이스라엘 골동품 관리국(IAA)은 그의 발언에 주목하고 오데드 골란을 심문했으나 그는 이를 35년 전에 구입했고 다른 사실들은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35년 전이라면 그가 불과 열여섯 살 때라는 이야기가 된다.
IAA측은 “이스라엘 골동품의 90% 이상이 전국 3만개의 유적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이들 대부분은 보호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거의 매일 밤 이들 유적지는 도굴당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 유골함 역시 도굴된 것이 골동품상을 거쳐 현 소유주에게 들어갔을 것이 확실하다는 입장이다. 이 경우 국가가 유골함의 소유권을 선언하고 현 소유주는 이스라엘 국립박물관 등이 제시하는 가격에 소유권을 넘겨야 한다. 가격은 약 20만 달러가 될 전망. 물론 이 유골함의 실제 가치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이다. 그러나 정작 IAA측이 우려하는 것은 가격보다도 현재 소유주인 오데드 골란이 해외에서 물건을 매각해버릴 가능성이다. IAA 관계자는 “그를 법정에 세운다 해도 재판이 진행되는 데 4년이 걸린다. 결국 그는 약간의 벌금을 물고 유골함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골함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한 학계의 논쟁이 뜨거운 만큼 무대 뒤에서는 소유권을 둘러싼 신경전도 한창인 것이다. 그러나 결과가 어찌 되든 기독교 역사를 다시 쓸 수도 있는 중요한 발견이 해프닝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