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집은 대부분 초판 2000부 고지를 넘지 못한다. 가끔 작가들 중에 책이 잘 안 팔리면 광고를 하지 않는 출판사 탓을 하는 이도 있지만, 평론가들은 책을 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고마워하는 분위기다. 그나마 돈 안 되는 평론집을 꾸준히 펴내고 있는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창작과비평, 민음사, 소명 같은 출판사들도 일종의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문학평론집이 안 팔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일단 너무 어렵다. 논문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저자 스스로 일반 독자들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현학적인 용어와 화려한 수사를 동원했지만 결국 그저 그런 찬사이거나 그저 그런 무딘 비판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셋째로 평론가의 무성의가 문제다. 여기저기 문학지에 실었던 글들을 뚜렷한 주제의식 없이 몇 년치를 엮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세상은 벌써 저만치 내달리고 있는데, 평론은 2~3년 전 상황을 이야기하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평론가들 탓만 하기에는 미안한 구석도 있다. 요즘 ‘북섹션’이라 해서 신문마다 책을 위한 지면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문학’을 위한 자리는 초라하다. 신작이 나올 때 작가 인터뷰만 해줘도 감지덕지다. 그나마 중견과 원로들에게 할애하고 나면 젊은 작가들은 이름 석 자 내밀 자리도 없다. 이럴 때 눈 밝은 평론가들이 ‘주목할 만한 신인’을 콕 찍어주면 좋으련만 요즘 신문에서 본격 문학평론을 보기가 쉽지 않다. ‘월평’ 형식으로 평론가가 여러 작품들을 읽고서 평가하던 작은 지면조차 사라져버렸다.
한 문학전문 출판사 편집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더 이상 문학이 화젯거리가 되지 못하는 시대”라고. 밥상머리와 지하철의 화제는 온통 TV와 영화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드라마와 영화에 대한 리뷰 작업은 활발해서 신작이 나올 때마다 짤막한 예고편 소개에 이어 기자의 프리뷰, 평론가의 본격 리뷰, 인터넷을 통한 아마추어들의 리뷰가 쏟아져 나온다(방송 드라마도 이런 순으로 뜨고 진다).
여기 두 권의 문학평론집이 있다. 김동식의 첫 비평집 ‘냉소와 매혹’(문학과지성사), 김미현의 ‘여성문학을 넘어서’(민음사). 두 책을 통해 평론가와 함께 책을 읽어나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평론가의 ‘감식안’에 의지해 신경숙, 윤대녕, 김영하, 은희경, 함정임, 이영유, 김영현, 이인화, 배수아, 백민석 등을 훑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읽지 않은 작품이 나오면 읽어봐야 할 이유를 얻는다. 김동식씨는 작품을 읽고 비평을 쓰는 과정에서 “입으로는 문학 나부랭이를 되뇌며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과는 달리 나의 몸은 문학에 점점 더 밀착해가고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그것은 일반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미현씨는 20세기 여성문학의 상승과 하강, 발전과 퇴보의 역사를 정리했다. 1930년대 박화성에서 시작 강신재, 박완서, 오정희, 이경자, 양귀자, 김향숙, 김채원, 김형경, 공지영, 신경숙, 이혜경, 김인숙, 최윤, 공선옥, 차현숙, 은희경, 전경린 등으로 이어지는 여성작가의 계보를 밝히고 있다. 지금 전경린의 최근작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을 읽고 있거나 공선옥의 ‘멋진 한세상’을 쥐고 있는 독자라면 그들이 여성문학의 어디쯤 자리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까.
문학평론집이 안 팔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일단 너무 어렵다. 논문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저자 스스로 일반 독자들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현학적인 용어와 화려한 수사를 동원했지만 결국 그저 그런 찬사이거나 그저 그런 무딘 비판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셋째로 평론가의 무성의가 문제다. 여기저기 문학지에 실었던 글들을 뚜렷한 주제의식 없이 몇 년치를 엮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세상은 벌써 저만치 내달리고 있는데, 평론은 2~3년 전 상황을 이야기하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평론가들 탓만 하기에는 미안한 구석도 있다. 요즘 ‘북섹션’이라 해서 신문마다 책을 위한 지면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문학’을 위한 자리는 초라하다. 신작이 나올 때 작가 인터뷰만 해줘도 감지덕지다. 그나마 중견과 원로들에게 할애하고 나면 젊은 작가들은 이름 석 자 내밀 자리도 없다. 이럴 때 눈 밝은 평론가들이 ‘주목할 만한 신인’을 콕 찍어주면 좋으련만 요즘 신문에서 본격 문학평론을 보기가 쉽지 않다. ‘월평’ 형식으로 평론가가 여러 작품들을 읽고서 평가하던 작은 지면조차 사라져버렸다.
한 문학전문 출판사 편집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더 이상 문학이 화젯거리가 되지 못하는 시대”라고. 밥상머리와 지하철의 화제는 온통 TV와 영화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드라마와 영화에 대한 리뷰 작업은 활발해서 신작이 나올 때마다 짤막한 예고편 소개에 이어 기자의 프리뷰, 평론가의 본격 리뷰, 인터넷을 통한 아마추어들의 리뷰가 쏟아져 나온다(방송 드라마도 이런 순으로 뜨고 진다).
여기 두 권의 문학평론집이 있다. 김동식의 첫 비평집 ‘냉소와 매혹’(문학과지성사), 김미현의 ‘여성문학을 넘어서’(민음사). 두 책을 통해 평론가와 함께 책을 읽어나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평론가의 ‘감식안’에 의지해 신경숙, 윤대녕, 김영하, 은희경, 함정임, 이영유, 김영현, 이인화, 배수아, 백민석 등을 훑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읽지 않은 작품이 나오면 읽어봐야 할 이유를 얻는다. 김동식씨는 작품을 읽고 비평을 쓰는 과정에서 “입으로는 문학 나부랭이를 되뇌며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과는 달리 나의 몸은 문학에 점점 더 밀착해가고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그것은 일반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미현씨는 20세기 여성문학의 상승과 하강, 발전과 퇴보의 역사를 정리했다. 1930년대 박화성에서 시작 강신재, 박완서, 오정희, 이경자, 양귀자, 김향숙, 김채원, 김형경, 공지영, 신경숙, 이혜경, 김인숙, 최윤, 공선옥, 차현숙, 은희경, 전경린 등으로 이어지는 여성작가의 계보를 밝히고 있다. 지금 전경린의 최근작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을 읽고 있거나 공선옥의 ‘멋진 한세상’을 쥐고 있는 독자라면 그들이 여성문학의 어디쯤 자리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