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를 판화로 대량 제작해 적잖이 재미를 본 젊은 문화사업가가 있었다. 그때가 90년대였다. 문화상품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던 때다. 전통 민화를 아이디어 상품으로 개발해내자 언론의 관심도 높았다. 그 덕분에 박물관이나 아트숍 등에서 주문이 쇄도했다. 상당한 판매량을 기록한 그 문화사업가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 민화를 해외 시장에 내보내기로 작정했다.
그는 먼저 프랑크푸르트 북 페어에 출품했다. 민화가 한국의 대표적인 미술품인 만큼 주변의 기대도 컸다. 외국인들도 ‘신기하다’ ‘독특하다’는 말들을 했다. 보고 나서 한국의 전통미술에 대해 이것저것 캐묻는 열성파도 있었다. 본 사람은 다들 좋다고 했다. 그런데, 출품한 지 며칠이 지나도록 막상 팔려나가는 양은 얼마 되지 않았다. 가격도 비싸지 않고, 품질도 만족스러웠는데 말이다.
사랑 못 받는 ‘민화’… 우리 먼저 애용할 때 ‘세계화’
그는 의아했다. 일본의 전통 목판화인 우키요에(浮世繪)는 외국인에게 불티나게 팔리는데, 왜 우리 것인 민화는 파리만 날려야 하는가. 우키요에에 비해 민화가 덜 알려져서 그런가. 그는 홍보 부족 탓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침 한국의 문화를 알고 싶다는 독일인이 민화 한 점을 사면서 그에게 물었다. “한국인은 이런 민화를 평소 어디다 걸어놓고 있지요?”
그 말에 그는 비로소 무릎을 쳤다. 궁금증이 한꺼번에 풀리는 듯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반짝 팔려나간 상품 민화로는 턱도 없다. 평소 민화를 집에 걸어놓고 있는 한국인이 몇이나 되겠는가. 일본에는 우키요에가 걸린 가정집이 즐비하다. 아무리 우리 것이 좋다, 우리의 대표적인 미술품이다, 입으로 떠들어 봤자 말짱 헛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아직도 실생활에서 애용하느냐 하는 데 있다. 민화가 아니라, 그 어떤 아름다운 전통문화도 우리가 지금, 실제로, 사용하고 소비하지 않으면서 외국인에게 사달라고 하는 것은 참말이지 염치없는 짓이다.”
삼불(三佛) 김원용(金元龍) 선생은 1993년 타계한 고고미술사학자다. 그 분이 생전에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다. 60년대 어떤 외국 여자 한 명이 선생을 찾아와 사진 수십장을 내놓았다. 그것은 깨진 조선시대 기왓장을 찍은 사진이었다. 들여다보니 기와에 새겨진 문양들이 기막히게 아름다웠다. 어디서 구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 여자는 궁전 주변에 있는 쓰레기 더미에서 주웠다며 오히려 뜨악한 표정으로 선생을 쳐다보더라는 것이다. 전통미술을 전공한 학자가 그것도 모르느냐는 투여서 선생은 부끄럽기가 한량없었다고 했다.
선생은 “서울 시내에 흔해 빠진 그 기왓장 파편들을 보면서 내가 간과한 한국의 아름다움이 그렇게도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 일 이후로 선생은 매일같이 근정전을 돌아다녔다. 당시 중앙박물관에 재직했던 선생은 박물관이 있는 경복궁에 살다시피 하면서도 정작 근정전 돌난간에 있는 12지석(支石)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몰랐다는 것이다. 외국인이 상찬해 마지않는 우리 것의 아름다움도 내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그 가치를 뼈저리게 절감할 수 없는 법이다. 선생은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일상화하고, 그것을 온전히 내 것의 아름다움으로 체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 것의 아름다움은 ‘맘보 바지 입은 아프리카인의 트위스트 춤처럼 허무한 것’이라고 선생은 표현했다.
젊은 문화사업가의 말이나 김원용 선생의 말은 백번 옳다. 주변을 한번 살펴보자.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걸어놓은 집은 많아도 ‘까치호랑이’를 걸어놓은 집은 드물다. 그 멋들어진 칠첩 반상기는 이제 정통 한식당에나 가야 맞닥뜨린다. 내가 쓰지 않는 우리 것을 남이 무슨 오지랖으로 찾아 쓰겠는가. 하물며 외국인의 눈으로 보자면 두말할 것도 없다.
세계화된 우리의 문화상품을 떠올려 보라. 하나같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것들만 세계화됐다. 김치가 그렇고, 불고기가 그렇고, 비빔밥이 그렇다. 고려청자와 봉산탈춤과 한복이 김치만큼 세계화됐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한국의 문화적 상징물로 홍보해 봤댔자 한국인의 일상생활에서 소비되지 않는 한 그것은 외국인에게 구호로 들릴 따름이다.
우리 것의 아름다움이 어둠 속에 묻힌 세월이 있었다. 이제 그 아름다움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지나친 자화자찬이 거슬릴 정도가 됐다. 남은 일은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내 것의 아름다움으로 만드는 것이다. 히딩크는 참으로 난사람이다. 한국의 축구가 세계 수준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기자가 물었다. 그때 돌아온 대답을 기억한다. “K리그부터 살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