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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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따로 발 따로’… ‘외교+통상’ 동거는 미친 짓?

‘국민 경제 효율보다 부처 이익 우선’ 태생적 한계… 권한 없고 책임도 안 지고 피해는 국민에게

  • < 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입력2004-10-11 1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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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따로 발 따로’… ‘외교+통상’ 동거는 미친 짓?
    외교통상부라는 새로운 조직이 출범하기 이전인 97년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미국은 국내법상 보복조치가 가능한 슈퍼 301조를 내세워 한국 자동차시장의 문을 열기 위해 집요한 공세를 퍼부었다. 그러나 무조건 자동차를 많이 사라는 요구가 아니었다.

    당시 미국은 관세를 낮춰줄 것을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배기량별로 적용하는 누진세제를 폐지할 것을 요구했고, 형식승인 제도 개선까지도 요구했다. 심지어 당시 일부 수입차 유리창에 유행하던 선팅 단속 철회를 요구하는가 하면, 소비절약운동까지도 ‘수입 차별적’ 조치로 몰아붙이면서 시정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자, 백화점식의 통상 압력이 이렇게 밀고 들어올 때는 정부에서 도대체 누가 협상대표로 나서 소방수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관세인하 문제는 재정경제원 소관이고 자동차세는 행정자치부 업무 영역이다. 또 형식승인 제도 개선은 건설교통부가 해야 할 일이고, 유리창 선팅 단속은 경찰의 몫, 그리고 소비절약 운동은 정부와는 무관한 소비자단체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렇다고 미국을 상대로 재경원, 건교부, 행자부, 시민단체까지 일렬종대로 모두 협상에 나설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지난 98년 김대중 정부 출범과 동시에 외무부에 통상업무의 권한을 주면서 외교통상부라는 조직이 탄생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당시 통상산업부를 중심으로 경제부처에 흩어져 있던 통상협상 권한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로 일원화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당시 통상산업부, 재경원, 농림부 등에서 46명이나 되는 경제 관료들이 친정을 떠나 외무부행을 택했다.

    그러나 이 실험은 이제 실패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며 막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김대중 정부 임기 말을 코앞에 두고 터진 한·중 마늘합의 파동이 결정타를 날린 셈이다. 통상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통상교섭 시스템 자체를 문제 삼는 목소리들이 줄을 잇고 있다. 국회에서는 외교통상부 체제를 출범시킨 민주당 의원들조차 통상대표부 설치(박상천 의원)나 협상권의 주무부처 이관(유재건 의원)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외교통상부로서도 정권 말기에 대형 악재가 터진 데 대해 당혹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다.



    ‘손 따로 발 따로’… ‘외교+통상’ 동거는 미친 짓?
    그동안 반도체 D램이나 철강에 대한 반덤핑 판정 등과 관련한 WTO 분쟁에서 잇따라 승소하는 등 개가를 올리던 외교통상부가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내몰렸을까. 산업연구원(KIET) 심영섭 박사는 “국가 전체의 경제외교에 따른 효율보다는 외무부의 이익과 입지를 더 많이 생각한 사람들 때문에 통상교섭본부라는 조직이 탄생했고, 이 결과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지난 98년 초 당시 통상산업부와 외무부 사이에서는 통상협상 권한 이관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란이 벌어졌었다. 이 당시 검토됐던 대안은 대략 세 가지. 재경원에서는 별도의 대외경제부를 신설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외무부에서는 정무기능과 통상기능을 합친 외교통상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러나 경제부처나 통상 전문가들은 대부분 대통령 직속의 통상대표부 방식을 선호했다.

    통상대표부는 미 무역대표부(USTR)를 본뜬, 말하자면 한국무역대표부(KTR)를 만드는 아이디어였던 셈이다. 초반까지만 해도 대외경제부나 KTR 신설 방안이 많은 관심을 끌었다. 게다가 외무부 내부에서조차 외교통상부 신설 구상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터져 나와 ‘친정’을 곤경에 몰아넣기도 했다. 당시 일본에서 연수중이었던 이장춘 전 필리핀 대사가 신문기고를 통해 “집시와 같은 직업 외교관만으로 구성되는 외무부가 산업정책에 대한 이해를 갖고 통상교섭을 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던 것. 이 대사는 외교통상부를 나온 뒤 현재 한나라당 총재 특보를 맡고 있다.

    당시 각 부처는 각자 전문가들을 동원해 신문기고전(戰)을 벌이는 등 총력전을 펼쳤으나 결과는 외무부의 승리로 끝났다. 외교통상부 박석범 통상정보지원팀장은 “전통산업 위주의 통상 이슈가 서비스, 통신 등으로 다원화되고, 현안 자체도 관세 인하 등 국경간 조치에서 국내 제도 개선 등으로 옮겨가고 있는 상황에서 업체의 근시안적 이익을 지켜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외무부 논리가 먹혀들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문제는 새로운 시스템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부처간 갈등이 지속되면서도 이를 조정할 만한 확고한 리더십이 형성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조직은 가져왔지만 권한은 없고, 설령 권한을 행사했다 해도 책임은 지지 않는 기형적 구조가 내내 계속되어 온 것이다. 한·중 마늘협상의 경우 협상 대표의 대사 발령으로 불과 15일 사이를 두고 벌어진 가합의와 본합의에 서명 당사자가 달라지기도 했다. 또 5명에 불과한 대표단 내에서조차 ‘세이프가드 연장 불가에 대해 합의했다’는 입장과 ‘나는 몰랐다’는 입장으로 갈려 서로 딴소리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손 따로 발 따로’… ‘외교+통상’ 동거는 미친 짓?
    물론 그동안 통상협상 과정에서 부처간 이견이 조정되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해 8월부터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대외경제장관회의가 신설되었다. 통상교섭본부장이 의장이 되는 실무조정회의도 두었다. 그러나 대외경제장관회의는 통상 현안 조정에 관한 한 실질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무조정회의 역시 지난해 9월 이후 네 차례밖에 열리지 않았다. 마늘 문제만 해도 농협의 산업피해 조사 신청을 계기로 정부 내에 이 폭발성 현안이 알려진 것이 6월28일이었지만 보름 뒤 열린 실무조정회의나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마늘 문제는 안건으로조차 오르지 않았다. 통상협상에서 조정권한을 발휘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공염불에 그치고 만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외교통상부가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린 데는 외통부 자체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더 많다. 장관도 차관도 아닌 어정쩡한 통상교섭본부장의 위상, 관련 부처의 비협조, 민간 전문가를 활용하지 못하는 공무원 사회의 폐쇄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통상교섭본부의 한 관계자는 “출범할 때는 그럴듯했지만 4년이 지난 뒤 남은 것은 경제부처에서 넘어온 관료들이 외교관으로 변신했다는 것밖에는 없다”고 실토했다.

    외교통상부 신설 당시 모델로 삼았었던 캐나다, 호주 등은 외무부 안에 정무담당, 통상담당 등으로 나뉘어 여러 명의 장관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한 부처에 두 명의 장관이 있을 수 없다’는 조직 논리에 가로막혀 통상교섭본부장은 대외적으로만 장관이었을 뿐 국무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했었다. 그나마 황두연 본부장 취임 이후 국무회의에는 참석하고 있지만 의결권한이 없는 ‘배석자’에 불과한 형편. 이 때문에 외통부 내에서는 “보고 체계를 문제 삼기 전에 보고할 기회라도 줬느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외교통상부 통상법률지원팀장을 지낸 경희대 성극제 교수는 이에 대해 “문제는 경제부처 관료들이 외통부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부처들이 과거 경제기획원이나 재정경제원이 예산권까지 가진 상태에서 통상 협상을 주도할 때도 일사불란한 대처가 힘들었는데 외통부가 경제부처들에 대해 강력한 리더십을 갖는 것은 당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성교수는 “지금처럼 경제부총리도 통상 현안에 대해 조정권한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대통령 직속으로 한국무역대표부(KTR)를 만들어서 강력한 조정 권한을 주는 방안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역위원회 위원인 서울대 박태호 교수도 “외교업무의 기본적 기능이 갈등 문제의 해결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통상 협상은 외교의 본질과는 맞지 않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아직 시기상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KTR와 같은 독립부서의 신설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KTR과 같은 새로운 조직 신설에 따른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 직속의 무역대표부 시스템은 미국과 같은 ‘공격형’ 통상 전략을 펴는 나라에는 적합하지만 우리처럼 아직도 국내 시장 개방이 화두가 되어 있는 국가에는 적절치 않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외교통상부의 시각도 비슷하다. 외통부 최종현 통상정책기획과장은 “미국을 제외하면 무역대표부 같은 독립통상형 모델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나 베트남 등 몇몇 사회주의 국가밖에 없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시장 개방 협상이 잘못될 경우 책임론을 둘러싸고 대통령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이태복 전 복지부장관을 로비의 표적으로 삼았던 것처럼 대통령 또한 외국으로부터 통상 압력의 전면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서강대 안세영 교수는 “대통령이 한·중·일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이야기하는 마당에 대통령이 책임을 지지 않고 통상 현안을 풀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대통령직을 걸고 쌀 개방을 막겠다’는 ‘무모한’ 공약을 지키지 못하자 본인은 대국민 사과로 끝내고 당시 황인성 내각만을 문책 퇴진시킨 바 있다.

    한편 대통령 직속의 대표부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각 부처에 통상 전문인력이 보강되지 않는 한, 우리의 통상 교섭력은 제고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고려대 박노형 교수는 “마늘 사건의 경우 농림부나 산자부가 충분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예방할 수도 있었던 일”이라고 지적하고 “관련 부처에 통상 전문가들을 보강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결국 조정과 교섭 권한은 소규모 인원으로 구성되는 대표부에 주고 각 부처는 전문가들을 보강해 협상의 실리를 챙길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직까지 통상교섭 조직 개편을 둘러싼 논의에는 각 부처 모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외교통상부는 마늘분쟁이 악재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논란이 빨리 가라앉기만을 기다리는 눈치다. 최성홍 외교통상부 장관도 국회 답변에서 교섭본부 해체와 대표부 설치 문제가 제기되자 “무역대표부 설치는 총체적 국익을 반영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재경부나 산자부 등 다른 경제부처들도 ‘시기가 좋지 않다’는 분위기다. 산업자원부 김종갑 산업정책국장은 “지금처럼 교섭은 외통부가 하고, 조정은 재경부가 하는 시스템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면서도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다”라고 입을 닫았다.

    그러나 올해 국정감사와 내년 초로 예상되는 정부조직 개편작업을 둘러싸고 벌써부터 외교통상부가 1순위로 수술대에 오르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마늘협상 과정에서 보여진 통상교섭 시스템의 동맥경화현상이 그 시기를 앞당길 것 또한 자명한 사실이다. 부처간의 영역 싸움보다 ‘국익 우선’의 논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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