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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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스러운’ 미국과 ‘순진한’ 노무현

  • 조용준 기자

    입력2004-09-21 14: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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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노스러운’ 미국과 ‘순진한’ 노무현
    ‘오노스러운 미국’이 또다시 비판대에 올랐다. 이번은 베네수엘라가 무대다. ‘뉴욕타임스’ ‘뉴스위크’ 등 미국 언론들은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 기도에 미국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연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이 실각하고 극적으로 다시 권좌에 복귀한 ‘2일 쿠데타’에 ‘워싱턴의 음모’가 얼마나 반영된 것인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분명한 점은 차베스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한 기도가 있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쿠데타를 저지한 것은 민중의 힘이었다. 차베스 대통령은 전형적인 ‘페론식 포퓰리스트(populist)’다. 베네수엘라에도 한나라당 김만제씨 같은 이가 있었다면 “대중 인기에 영합해 퍼주기만 하는 반시장적 조치를 취한다”고 꽤나 욕을 해댔을 것이지만, 바로 그 대중적 인기가 ‘눈엣가시’인 그를 미국이 몰아내지 못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미국 알아야 미국과 맞선다 … 극단적 이분법 삼가야

    최근 워싱턴에서 민주당 노무현씨를 보는 시각은 과연 어떨까.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으로 난데없이 툭 튀어 나온 노무현씨에 대해 그들은 궁금증 이상의 당혹감을 갖고 있을 듯하다. 아마 서울에서 활동하는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은 소위 ‘노풍’(盧風)의 발생 이유가 무엇인지, 앞으로 그 항로와 강도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전망하는 보고서를 써 올리느라 진땀깨나 흘릴 것이다.



    한나라당 이회창씨가 지난 1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가 만났던 미국의 리더들은 참으로 빛났다. 딕 체니 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미 대통령 안보담당 보좌관,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등 당대 실세들에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전직 스타들까지 그의 방미 일정에 무게를 얹어주었다. 유력한 대통령후보가 선거를 앞두고 미국을 방문해 ‘사진을 찍는 것’은 관례처럼 굳어진 선거전략이지만, 이씨의 그것은 역대 어느 누구보다 화려한 행차였다.

    이회창씨에 대한 워싱턴의 영접은, 당시만 해도 그가 차기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했고, 정치 지형의 변화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의 역동성’은 미국의 정통한 관측마저 뛰어넘는 것이었다. ‘노무현 현상’에 당황하는 워싱턴의 모습은 그들의 발언에서도 역력히 드러난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예측할 수 없다. 미국은 한국의 차세대 지도자가 한국에서의 미국의 전통적인 역할에 도전하는 방향으로 한·미 관계의 성격을 다시 규정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4월4일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워싱턴 ‘아시아소사이어티’ 연설)

    제임스 켈리의 말이 너무 앞질러 나갔다고 생각했을까. 이로부터 보름 정도가 지난 4월18일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는 “현재 한국의 모든 대선 주자들이 한·미 관계의 필요성과 동맹에 대해 지지한다고 생각한다”며 “노무현 후보를 불안한 인물이라고 볼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정작 실망스러운 것은 이 같은 보도에 대한 노무현씨의 대응 방식이다. 그는 15일 “요즘 미국이 (나의 부상에 대해) 궁금해하고 불안해한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면서 “그것은 불안을 조성하지 못해 안달하는 한국 사람들의 문제이며, 앞으로 그런 기사를 쓰는 사람은 그렇게 불안해하는 사람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이 발언에서 느끼는 것은 ‘쭛쭛하는 사람은 쭛쭛다’식의, 과거 냉전 시대의 극단적인 이분법 혹은 흑백논리가 21세기 다원주의 시대를 지향하는 노무현씨에게도 은연중 작용하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다. 또한 그의 말처럼 국제 감각이나 외교 역량이 외국의 저명한 지도자들이나 만나고, 이를 잘 홍보하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적어도 ‘외교적 수사’만큼은 충실해야 하지 않나 하는 걱정도 있다.

    역설적이지만 노무현씨는 ‘오노스러움’을 배워야 한다. ‘오노스러운 미국’ 역시 공부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할리우드식 액션’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통상협상이든 정상회담이든 패를 미리 다 드러낸 순진함과 단순함으로는 ‘오노스러움’을 당해낼 수가 없다. ‘솔트레이크에서의 김동성’은 한 번으로 족하다. 이제부터는 개인적인 호불호(好不好)보다 국익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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