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P씨(34ㆍ서울 행당동)는 지난 8월19일 서울 천호대교 남단 한강 둔치에 가족나들이를 나갔다 큰아들(3)이 승합차에 오른쪽다리를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놀란 P씨는 가까운 H대학병원을 비롯, 대학병원 3곳을 전전했지만 모두 ‘문전박대’를 당했다. 전화로 문의한 S대학병원측은 “소아정형외과 담당의가 휴가중이다”며 찾아와도 진료를 못 받는다고 아예 으름장을 놓았다.
사고발생 6시간 만에 겨우 아들을 입원시킨 또 다른 H대학병원은 4번째 병원. 1차 진단결과는 전치 8주였다.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쉰 P씨는 한 달 뒤 진료비 중간정산을 하다 다시 한번 놀랐다. “특진료는 환자 본인 부담”이란 병원측의 갑작스런 통고 때문. 입원 당시 특진인 줄 까맣게 모르고 병원측이 소개하는 의사에게 그냥 치료를 맡긴 P씨는 가해자측 손보사인 S화재에 특진료까지 보험처리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보험사는 이를 거부했다.
“아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도 억울한데 신체의 원상회복을 바라는 교통사고 피해자에게 신청도 하지 않은 특진료까지 부담하란 게 말이 되는가.” 격분한 P씨는 결국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민원까지 제기한 뒤에야 특진료 보험처리를 받을 수 있었다.
P씨의 아들과 같은 병실에 입원한 D군(6ㆍ서울 신당동)도 지난 9월9일 집 앞 이면도로에서 놀다 승용차에 치여 왼쪽 다리뼈 2개가 부러졌다. 7주 진단이 나왔지만, 가해자측 손보사인 D화재는 특진료를 보험처리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병원측이 D군 가족에게 “특진료는 보험처리가 안 된다”고 입원 전 미리 알렸다는 게 그 이유.
“당초 1차 진료기관인 동네의원에 갔었다. 하지만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해 다시 찾은 대학병원에서 ‘입원을 하려면 무조건 특진을 신청해야 한다’는데 그게 싫다고 일요일에 아픈 애를 이끌고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할 부모가 어디에 있는가.” D군 어머니(27)는 “환자 건강을 담보로 ‘입원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라’식의 ‘배짱 장사’를 일삼는 병원측에 혐오감마저 든다”고 했다. D군은 지난 9월29일 퇴원해 현재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입원 당시의 특진료는 고스란히 D군 가족이 부담했다.
비슷한 유형의 두 사례에서 나타난 이런 극명한 대비를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문제는 ‘자동차보험(책임보험) 진료수가에 관한 고시’에 기인한다. 특진료는 환자 본인 부담이 원칙. 그러나 건설교통부가 의료계 및 보험업계와의 협의, 자동차보험진료수가분쟁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지난 99년 9월7일 확정해 같은 해 10월8일부터 시행중인 이 고시는 종래 보험사가 지급을 거절한 전례가 많았던 교통사고 환자의 △치료중 생긴 합병증 진료비 △환자가 본래 가진 지병이 악화된 경우의 진료비 △특진이 불가피한 경우의 특진료 등을 보험사가 부담토록 했다. 이는 교통사고환자를 배려한 조치.
건교부는 이 고시의 시행으로 교통사고 환자가 진료비를 부당하게 부담하는 문제점과 함께 의료기관의 과잉진료, 보험사의 진료비 삭감 등과 관련한 분쟁이 수그러들 것으로 내다봤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분쟁을 부추기는 1차적 원인은 대다수 대학병원이 입원을 요하는 교통사고 환자에게 ‘입원=특진’이란 불법 관행의 ‘그물’을 촘촘히 쳐놓은 데 있다. 건교부 고시대로 하면 교통사고 환자가 이른바 ‘불가피한 특진’을 받는 경우 환자는 병원에 특진료를 낼 필요없이 주치의가 특진소견서를 발행해 보험사에 청구하면 보험사는 이를 토대로 병원에 해당 환자의 특진료를 일반 진료수가와 함께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대학병원들은 교통사고 입원환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특진료를 낼 수밖에 없도록 유도한다. 특진이 가능한 자격을 갖춘 전문의가 아니면 적정한 진료가 곤란한 경우나 해당 진료분야의 담당의가 1명뿐인 경우엔 특진이 불가피하겠지만, 실제론 “특진을 받아야 위험부담이 없다” “이왕이면 명성있는 의사에게 진료받는 게 좋지 않느냐”는 등 권고를 빙자해 특진을 종용하거나 P씨 사례에서 보듯 담당의가 없다는 식으로 ‘연막’을 쳐 아예 교통사고 환자를 기피하는 일마저 잦다.
이는 특진 여부의 결정이 주치의 재량에 맡겨져 있음을 악용, 대학병원측이 특진료 수입을 증대하려는 때문.
“국립인 서울대병원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립대학병원은 교통사고 환자는 물론 내·외과를 막론하고 모든 입원환자를 특진환자로 채운다. 특진의사가 낸 ‘수술장’이 아니면 병원에선 받아주지도 않는다. 병실은 평소에도 미어터지는데, 뭣 하러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는 교통사고 환자를 받으려 하겠는가.” 대학병원 전문의 출신의 한 개원의사는 “대학병원 진료수입의 20% 가량은 특진료가 차지한다. 특진(선택진료)제도를 없애면 문닫을 형편인 대학병원도 꽤 있다”고 털어놓는다.
사정이 이러니 특진료 부담을 둘러싸고 교통사고 환자와 병원, 보험사간 분쟁이 그치지 않는다. 특히 보험사들은 특진 남발 때문에 병원측의 특진 소견을 불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해당사자간 이견이 계속되면 자동차보험진료수가분쟁심의회의 조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D화재 관계자는 “심의회의 조정결과가 나오기까진 보통 두 달 정도 걸린다”고 답한다. 이는 분쟁조정에 들어가면 병원측이 보험사에 청구한 특진비를 빨리 받아낼 수 없거나 조정결과에 따라선 마찰을 감수하고 환자에게서 받아내야 함을 의미한다. 대학병원들이 교통사고환자의 입원을 유독 꺼리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병원과 보험사 사이에 낀 교통사고 피해자들 역시 ‘방황’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민원 역시 끊이지 않는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지난해부터 올 10월 말까지 접수한 ‘불가피한 특진’ 관련 민원은 모두 61건. 소비자보호원 법무보험팀 조재빈 대리는 “접수 민원에 대해선 보호원 자체 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결과에 따라 보험사에 특진료 지급을 권고하지만, 실제 소비자 피해구제 사례는 많지 않다”고 밝혔다.
이는 이윤을 좇는 보험사의 속성상 각 사(社)마다 특진료 부담과 관련한 ‘정책’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S화재 관계자는 “애매모호한 건교부 고시에 따른 논란으로 보험영업 실무자들도 골치를 앓는다. 건교부도 이를 인식하고 고시 개정을 검토중인 것으로 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건교부의 답변은 소극적이다. 건교부 교통안전과 관계자는 “문제의 소지는 있다고 판단되나 구체적으로 검토하진 않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특진제도를 부령(部令)에 규정하고 있는 보건복지부는 “건교부 태도에 달렸다”며 공을 넘긴다. 복지부 의료정책과 관계자는 “건교부 고시를 복지부가 바꿀 순 없지 않은가. 건교부와 문제를 정식으로 논의한 적은 없지만 복지부 차원에선 언제든지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는 “교통사고환자들이 무조건 3차 진료기관인 대학병원을 찾아 의료전달 체계를 왜곡하는 것도 문제 아니냐”고 반문했다.
교통사고 환자들이 대학병원으로 줄달음치는 ‘결과론’만 놓고 보면 복지부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전문 의료지식이 전혀 없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응급환자는 대학병원 응급실행’이란 ‘상식의 틀’을 스스로 깰 수 있을까. 섣불리 ‘틀’을 깼다 적정진료를 제때 받지 못해 파생할 수 있는 환자 건강의 악화는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인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지만, 누구도 원하지 않는 사고로 인해 병원에 차이고 보험사에 구박받는 교통사고 피해 환자들의 삼중고. 건교부 고시를 손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사고발생 6시간 만에 겨우 아들을 입원시킨 또 다른 H대학병원은 4번째 병원. 1차 진단결과는 전치 8주였다.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쉰 P씨는 한 달 뒤 진료비 중간정산을 하다 다시 한번 놀랐다. “특진료는 환자 본인 부담”이란 병원측의 갑작스런 통고 때문. 입원 당시 특진인 줄 까맣게 모르고 병원측이 소개하는 의사에게 그냥 치료를 맡긴 P씨는 가해자측 손보사인 S화재에 특진료까지 보험처리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보험사는 이를 거부했다.
“아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도 억울한데 신체의 원상회복을 바라는 교통사고 피해자에게 신청도 하지 않은 특진료까지 부담하란 게 말이 되는가.” 격분한 P씨는 결국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민원까지 제기한 뒤에야 특진료 보험처리를 받을 수 있었다.
P씨의 아들과 같은 병실에 입원한 D군(6ㆍ서울 신당동)도 지난 9월9일 집 앞 이면도로에서 놀다 승용차에 치여 왼쪽 다리뼈 2개가 부러졌다. 7주 진단이 나왔지만, 가해자측 손보사인 D화재는 특진료를 보험처리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병원측이 D군 가족에게 “특진료는 보험처리가 안 된다”고 입원 전 미리 알렸다는 게 그 이유.
“당초 1차 진료기관인 동네의원에 갔었다. 하지만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해 다시 찾은 대학병원에서 ‘입원을 하려면 무조건 특진을 신청해야 한다’는데 그게 싫다고 일요일에 아픈 애를 이끌고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할 부모가 어디에 있는가.” D군 어머니(27)는 “환자 건강을 담보로 ‘입원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라’식의 ‘배짱 장사’를 일삼는 병원측에 혐오감마저 든다”고 했다. D군은 지난 9월29일 퇴원해 현재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입원 당시의 특진료는 고스란히 D군 가족이 부담했다.
비슷한 유형의 두 사례에서 나타난 이런 극명한 대비를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문제는 ‘자동차보험(책임보험) 진료수가에 관한 고시’에 기인한다. 특진료는 환자 본인 부담이 원칙. 그러나 건설교통부가 의료계 및 보험업계와의 협의, 자동차보험진료수가분쟁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지난 99년 9월7일 확정해 같은 해 10월8일부터 시행중인 이 고시는 종래 보험사가 지급을 거절한 전례가 많았던 교통사고 환자의 △치료중 생긴 합병증 진료비 △환자가 본래 가진 지병이 악화된 경우의 진료비 △특진이 불가피한 경우의 특진료 등을 보험사가 부담토록 했다. 이는 교통사고환자를 배려한 조치.
건교부는 이 고시의 시행으로 교통사고 환자가 진료비를 부당하게 부담하는 문제점과 함께 의료기관의 과잉진료, 보험사의 진료비 삭감 등과 관련한 분쟁이 수그러들 것으로 내다봤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분쟁을 부추기는 1차적 원인은 대다수 대학병원이 입원을 요하는 교통사고 환자에게 ‘입원=특진’이란 불법 관행의 ‘그물’을 촘촘히 쳐놓은 데 있다. 건교부 고시대로 하면 교통사고 환자가 이른바 ‘불가피한 특진’을 받는 경우 환자는 병원에 특진료를 낼 필요없이 주치의가 특진소견서를 발행해 보험사에 청구하면 보험사는 이를 토대로 병원에 해당 환자의 특진료를 일반 진료수가와 함께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대학병원들은 교통사고 입원환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특진료를 낼 수밖에 없도록 유도한다. 특진이 가능한 자격을 갖춘 전문의가 아니면 적정한 진료가 곤란한 경우나 해당 진료분야의 담당의가 1명뿐인 경우엔 특진이 불가피하겠지만, 실제론 “특진을 받아야 위험부담이 없다” “이왕이면 명성있는 의사에게 진료받는 게 좋지 않느냐”는 등 권고를 빙자해 특진을 종용하거나 P씨 사례에서 보듯 담당의가 없다는 식으로 ‘연막’을 쳐 아예 교통사고 환자를 기피하는 일마저 잦다.
이는 특진 여부의 결정이 주치의 재량에 맡겨져 있음을 악용, 대학병원측이 특진료 수입을 증대하려는 때문.
“국립인 서울대병원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립대학병원은 교통사고 환자는 물론 내·외과를 막론하고 모든 입원환자를 특진환자로 채운다. 특진의사가 낸 ‘수술장’이 아니면 병원에선 받아주지도 않는다. 병실은 평소에도 미어터지는데, 뭣 하러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는 교통사고 환자를 받으려 하겠는가.” 대학병원 전문의 출신의 한 개원의사는 “대학병원 진료수입의 20% 가량은 특진료가 차지한다. 특진(선택진료)제도를 없애면 문닫을 형편인 대학병원도 꽤 있다”고 털어놓는다.
사정이 이러니 특진료 부담을 둘러싸고 교통사고 환자와 병원, 보험사간 분쟁이 그치지 않는다. 특히 보험사들은 특진 남발 때문에 병원측의 특진 소견을 불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해당사자간 이견이 계속되면 자동차보험진료수가분쟁심의회의 조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D화재 관계자는 “심의회의 조정결과가 나오기까진 보통 두 달 정도 걸린다”고 답한다. 이는 분쟁조정에 들어가면 병원측이 보험사에 청구한 특진비를 빨리 받아낼 수 없거나 조정결과에 따라선 마찰을 감수하고 환자에게서 받아내야 함을 의미한다. 대학병원들이 교통사고환자의 입원을 유독 꺼리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병원과 보험사 사이에 낀 교통사고 피해자들 역시 ‘방황’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민원 역시 끊이지 않는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지난해부터 올 10월 말까지 접수한 ‘불가피한 특진’ 관련 민원은 모두 61건. 소비자보호원 법무보험팀 조재빈 대리는 “접수 민원에 대해선 보호원 자체 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결과에 따라 보험사에 특진료 지급을 권고하지만, 실제 소비자 피해구제 사례는 많지 않다”고 밝혔다.
이는 이윤을 좇는 보험사의 속성상 각 사(社)마다 특진료 부담과 관련한 ‘정책’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S화재 관계자는 “애매모호한 건교부 고시에 따른 논란으로 보험영업 실무자들도 골치를 앓는다. 건교부도 이를 인식하고 고시 개정을 검토중인 것으로 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건교부의 답변은 소극적이다. 건교부 교통안전과 관계자는 “문제의 소지는 있다고 판단되나 구체적으로 검토하진 않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특진제도를 부령(部令)에 규정하고 있는 보건복지부는 “건교부 태도에 달렸다”며 공을 넘긴다. 복지부 의료정책과 관계자는 “건교부 고시를 복지부가 바꿀 순 없지 않은가. 건교부와 문제를 정식으로 논의한 적은 없지만 복지부 차원에선 언제든지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는 “교통사고환자들이 무조건 3차 진료기관인 대학병원을 찾아 의료전달 체계를 왜곡하는 것도 문제 아니냐”고 반문했다.
교통사고 환자들이 대학병원으로 줄달음치는 ‘결과론’만 놓고 보면 복지부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전문 의료지식이 전혀 없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응급환자는 대학병원 응급실행’이란 ‘상식의 틀’을 스스로 깰 수 있을까. 섣불리 ‘틀’을 깼다 적정진료를 제때 받지 못해 파생할 수 있는 환자 건강의 악화는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인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지만, 누구도 원하지 않는 사고로 인해 병원에 차이고 보험사에 구박받는 교통사고 피해 환자들의 삼중고. 건교부 고시를 손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