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너무 길다고요? 그럼 한번 더 보세요. 처음 볼 때 안 보이던 부분도 보이고, 영화가 무슨 얘길 하는지 이해가 잘 되실 거예요.”
주진모(28)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영화에 대한 소감부터 물었다. 까만 얼굴과 팔, 듬성듬성 자란 수염 때문에 까칠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아직도 중국 대륙의 모래바람 냄새가 나는 것 같다.
9월7일 개봉하는 영화 ‘무사’는 올 하반기 최고의 화제작으로 진작부터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사람들은 70억 원이나 들었다는 이 거대한 무협액션물이 어떤 영화인지 궁금해서, 또는 김성수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에, 주연을 맡은 안성기나 정우성을 보기 위해 영화를 보러 갈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무리를 이끄는 ‘최정’이라는 장군이 의외로 큰 배역임을 알게 되고, 이 역을 맡은 주진모가 안성기 정우성에 버금가는, 어떤 장면에서는 오히려 이들보다 더 빛나는 주인공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니, 저 배우가 언제 저렇게 컸지”라고 놀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조연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김성수 감독님 영화라는 말만 듣고 무조건 한다고 했거든요. 4년 전 영화 ‘비트’를 보고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으니 오랫동안 감독님 팬인 셈이었죠. 시나리오 보고 저도 놀랐어요.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는 인물이다 보니 제가 제대로 못하면 영화 전체가 흔들릴 판이었어요.”
6개월 간 몸무게 7kg이나 줄어
함께 연기하는 주연들보다 연기 경험이 짧은데다, 출연진 중 가장 늦게 합류한 그는 감정의 기복이 크고 복잡다단한 ‘최정’이라는 인물에 젖어 들기가 쉽지 않았다. 첫 촬영을 끝냈을 때 제작진에서는 “최정의 분량을 줄이자”는 말이 흘러나왔다. 주진모는 이를 악물었다. 혼자 시나리오를 안고 밤을 새우고, 자기 분량이 없어도 20kg이 넘는 갑옷을 입고 40℃가 넘는 한낮의 촬영장을 지키면서 다른 이들의 연기까지 모두 눈에 담았다. 거의 눈빛으로만 연기한 정우성과 달리, 상당량의 중국어 대사까지 소화해야 했던 그는 스트레스성 설사병까지 앓았다.
“감독님의 OK사인을 받아도 전 도무지 만족스럽지가 않은 거예요.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더위와 추위, 물이 없어 나흘씩 피 분장한 채로 세수도 못하고 지낸 건 고생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최정이 되어가는 걸 느꼈어요. ‘정말 해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뀐 거죠. ‘난 명예롭게 죽고 싶었다. 그게 내 꿈이었어’라는 최정의 마지막 대사를 하면서, 나 역시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이 영화를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고려장수 최정의 고뇌와 울분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는 동안, 몸에 꽉 껴서 불편하던 갑옷은 어느새 헐거웠다. 그는 운동으로 다진 튼튼한 체력의 소유자(그는 인천전문대 체육학과를 나왔다)였는데도 촬영하는 동안 몸무게가 7kg이나 줄었다. 나중엔 분장 없이 카메라 앞에 서도 죽을 고생 끝에 초췌한 장수의 모습 그대로였으니 ….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선배 안성기는 주진모에게 “내가 지금껏 100편이 넘는 영화를 했지만 이렇게 고생한 영화는 처음이다. 넌 이제 시작하는 입장에서 이런 경험을 했으니 앞으론 많은 것이 달라질 거다”고 말했다고 한다.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중국대륙에서 보낸 6개월은 그에게 ‘배우가 갖춰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 시간이었다. ‘무사’가 벌써 네 번째 영화지만, 그에게 ‘시작’과 다름없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영화 ‘댄스댄스’ ‘해피엔드’에 출연하면서 ‘충무로의 새로운 기대주’ ‘섹시한 미남배우’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주진모는 그러나 여느 청춘스타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슬픈유혹’이라는 드라마에 동성애자로 출연해 여성팬들을 놀라게 하더니, 그 후에는 드라마 출연도 자제하고 충무로의 대표적 아웃사이더 김기덕 감독의 영화 ‘실제상황’에 출연한 것. 이 영화는 하루 동안에 일어난 일을 커트 없이 그대로 카메라에 담은 ‘이상한’(?) 영화였다. 배우로서도 큰 도전이었다.
“돈 많이 벌고, 정말 뜨게 되면 그땐 그런 영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남들은 생각만 하는 일을 실천에 옮긴 거죠. 배우로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하루 만에 찍는 영화도 해보고, 1년 동안 찍는 영화도 했으니…”(웃음).
‘무사’를 끝내고 돌아와 선택한 작품은 순정만화 같은 멜로 ‘와니와 준하’였다. 시나리오 작가인 ‘준하’는 낙천적이고 따뜻한 성품의 20대 청년. ‘와니’역의 김희선과 함께 그림 같은 사랑을 엮어간다니, 언뜻 ‘무사’의 최정과는 잘 연결되지 않는다. “전 자꾸 달라지고 변하는 제 모습이 재미있어요. 그동안 그럴싸하게 폼잡고 어두워 보이는 역할을 많이 했는데, 이젠 확 풀어져 코도 후비고 재채기도 해대는, 사람냄새 물씬 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짙은 눈썹에 부리부리한 눈매, 묵직하게 큰 코에 남성미 물씬 풍기는 근육질 몸매의 소유자. 거기다 목소리까지 유달리 굵고 가라앉은 저음이어서 바리톤 가수 같은 그의 음성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주진모에 대한 인상을 ‘느끼하다’고 일축해 버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주진모는 참 담백한 남자다. 전형적인 압구정족처럼 보이지만 속은 순 ‘촌놈’이어서 영화 ‘댄스댄스’에 출연하기 전까진 나이트클럽 옆에도 못 가봤다. 운동 외에 취미는 낚시. 시간 나면 소양호로, 근처 저수지로 혼자 낚시가방 메고 나가 하루종일 앉아 있다 돌아오곤 한다. 사람 많은 데 가기 싫어하고, 7년 동안이나 만나던 첫사랑에 실패한 후엔 변변한 연애 한번 못 해보고 20대 후반을 맞았다.
“전 한눈 못 파는 경주마 스타일이에요. 천성이 게을러 바쁘게 사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요. 그런데 뭔가 하나 ‘필’이 오면 집요하게 그것만 파고들어요. 지금 제겐 연기가 그 대상이에요. 아무리 많이 배워도, 많은 역을 해도 배우로서의 욕심은 채우지 못할 것 같아요.”
유부녀의 애인(‘해피엔드’)에서 애송이 독불장군(‘무사’)을 거쳐 밝고 따뜻한 또래 남자(‘와니와 준하’)를 거쳐온 주진모는 또 하고 싶은 역이 생겼다. ‘다이 하드’의 브루스 윌리스처럼 심각한 상황에서도 말 한마디로 사람을 웃길 수 있는 코믹 터치의 연기를 해보고 싶은 것. 그 말은 이젠 어느 정도 캐릭터 소화능력이 생겼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도 들린다.
컴맹이던 그는 한동안 쉬면서 인터넷 채팅에 재미를 붙였다. 새로운 사람과 만나 얘기를 나눈다는 게 신기하고 즐거운데, “저는 주진모입니다”고 인사를 하면 “나는 최민수다”면서 영 믿지를 않는다고. 오늘 이후 채팅사이트에서 이렇게 인사하는 남자를 만나면 반갑게 받아주자. 그는 젊음과 용기를 밑천으로 큰 나무로 성장하는 꽤 괜찮은 배우니까.
주진모(28)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영화에 대한 소감부터 물었다. 까만 얼굴과 팔, 듬성듬성 자란 수염 때문에 까칠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아직도 중국 대륙의 모래바람 냄새가 나는 것 같다.
9월7일 개봉하는 영화 ‘무사’는 올 하반기 최고의 화제작으로 진작부터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사람들은 70억 원이나 들었다는 이 거대한 무협액션물이 어떤 영화인지 궁금해서, 또는 김성수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에, 주연을 맡은 안성기나 정우성을 보기 위해 영화를 보러 갈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무리를 이끄는 ‘최정’이라는 장군이 의외로 큰 배역임을 알게 되고, 이 역을 맡은 주진모가 안성기 정우성에 버금가는, 어떤 장면에서는 오히려 이들보다 더 빛나는 주인공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니, 저 배우가 언제 저렇게 컸지”라고 놀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조연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김성수 감독님 영화라는 말만 듣고 무조건 한다고 했거든요. 4년 전 영화 ‘비트’를 보고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으니 오랫동안 감독님 팬인 셈이었죠. 시나리오 보고 저도 놀랐어요.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는 인물이다 보니 제가 제대로 못하면 영화 전체가 흔들릴 판이었어요.”
6개월 간 몸무게 7kg이나 줄어
함께 연기하는 주연들보다 연기 경험이 짧은데다, 출연진 중 가장 늦게 합류한 그는 감정의 기복이 크고 복잡다단한 ‘최정’이라는 인물에 젖어 들기가 쉽지 않았다. 첫 촬영을 끝냈을 때 제작진에서는 “최정의 분량을 줄이자”는 말이 흘러나왔다. 주진모는 이를 악물었다. 혼자 시나리오를 안고 밤을 새우고, 자기 분량이 없어도 20kg이 넘는 갑옷을 입고 40℃가 넘는 한낮의 촬영장을 지키면서 다른 이들의 연기까지 모두 눈에 담았다. 거의 눈빛으로만 연기한 정우성과 달리, 상당량의 중국어 대사까지 소화해야 했던 그는 스트레스성 설사병까지 앓았다.
“감독님의 OK사인을 받아도 전 도무지 만족스럽지가 않은 거예요.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더위와 추위, 물이 없어 나흘씩 피 분장한 채로 세수도 못하고 지낸 건 고생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최정이 되어가는 걸 느꼈어요. ‘정말 해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뀐 거죠. ‘난 명예롭게 죽고 싶었다. 그게 내 꿈이었어’라는 최정의 마지막 대사를 하면서, 나 역시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이 영화를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고려장수 최정의 고뇌와 울분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는 동안, 몸에 꽉 껴서 불편하던 갑옷은 어느새 헐거웠다. 그는 운동으로 다진 튼튼한 체력의 소유자(그는 인천전문대 체육학과를 나왔다)였는데도 촬영하는 동안 몸무게가 7kg이나 줄었다. 나중엔 분장 없이 카메라 앞에 서도 죽을 고생 끝에 초췌한 장수의 모습 그대로였으니 ….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선배 안성기는 주진모에게 “내가 지금껏 100편이 넘는 영화를 했지만 이렇게 고생한 영화는 처음이다. 넌 이제 시작하는 입장에서 이런 경험을 했으니 앞으론 많은 것이 달라질 거다”고 말했다고 한다.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중국대륙에서 보낸 6개월은 그에게 ‘배우가 갖춰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 시간이었다. ‘무사’가 벌써 네 번째 영화지만, 그에게 ‘시작’과 다름없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영화 ‘댄스댄스’ ‘해피엔드’에 출연하면서 ‘충무로의 새로운 기대주’ ‘섹시한 미남배우’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주진모는 그러나 여느 청춘스타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슬픈유혹’이라는 드라마에 동성애자로 출연해 여성팬들을 놀라게 하더니, 그 후에는 드라마 출연도 자제하고 충무로의 대표적 아웃사이더 김기덕 감독의 영화 ‘실제상황’에 출연한 것. 이 영화는 하루 동안에 일어난 일을 커트 없이 그대로 카메라에 담은 ‘이상한’(?) 영화였다. 배우로서도 큰 도전이었다.
“돈 많이 벌고, 정말 뜨게 되면 그땐 그런 영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남들은 생각만 하는 일을 실천에 옮긴 거죠. 배우로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하루 만에 찍는 영화도 해보고, 1년 동안 찍는 영화도 했으니…”(웃음).
‘무사’를 끝내고 돌아와 선택한 작품은 순정만화 같은 멜로 ‘와니와 준하’였다. 시나리오 작가인 ‘준하’는 낙천적이고 따뜻한 성품의 20대 청년. ‘와니’역의 김희선과 함께 그림 같은 사랑을 엮어간다니, 언뜻 ‘무사’의 최정과는 잘 연결되지 않는다. “전 자꾸 달라지고 변하는 제 모습이 재미있어요. 그동안 그럴싸하게 폼잡고 어두워 보이는 역할을 많이 했는데, 이젠 확 풀어져 코도 후비고 재채기도 해대는, 사람냄새 물씬 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짙은 눈썹에 부리부리한 눈매, 묵직하게 큰 코에 남성미 물씬 풍기는 근육질 몸매의 소유자. 거기다 목소리까지 유달리 굵고 가라앉은 저음이어서 바리톤 가수 같은 그의 음성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주진모에 대한 인상을 ‘느끼하다’고 일축해 버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주진모는 참 담백한 남자다. 전형적인 압구정족처럼 보이지만 속은 순 ‘촌놈’이어서 영화 ‘댄스댄스’에 출연하기 전까진 나이트클럽 옆에도 못 가봤다. 운동 외에 취미는 낚시. 시간 나면 소양호로, 근처 저수지로 혼자 낚시가방 메고 나가 하루종일 앉아 있다 돌아오곤 한다. 사람 많은 데 가기 싫어하고, 7년 동안이나 만나던 첫사랑에 실패한 후엔 변변한 연애 한번 못 해보고 20대 후반을 맞았다.
“전 한눈 못 파는 경주마 스타일이에요. 천성이 게을러 바쁘게 사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요. 그런데 뭔가 하나 ‘필’이 오면 집요하게 그것만 파고들어요. 지금 제겐 연기가 그 대상이에요. 아무리 많이 배워도, 많은 역을 해도 배우로서의 욕심은 채우지 못할 것 같아요.”
유부녀의 애인(‘해피엔드’)에서 애송이 독불장군(‘무사’)을 거쳐 밝고 따뜻한 또래 남자(‘와니와 준하’)를 거쳐온 주진모는 또 하고 싶은 역이 생겼다. ‘다이 하드’의 브루스 윌리스처럼 심각한 상황에서도 말 한마디로 사람을 웃길 수 있는 코믹 터치의 연기를 해보고 싶은 것. 그 말은 이젠 어느 정도 캐릭터 소화능력이 생겼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도 들린다.
컴맹이던 그는 한동안 쉬면서 인터넷 채팅에 재미를 붙였다. 새로운 사람과 만나 얘기를 나눈다는 게 신기하고 즐거운데, “저는 주진모입니다”고 인사를 하면 “나는 최민수다”면서 영 믿지를 않는다고. 오늘 이후 채팅사이트에서 이렇게 인사하는 남자를 만나면 반갑게 받아주자. 그는 젊음과 용기를 밑천으로 큰 나무로 성장하는 꽤 괜찮은 배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