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표적 정보기관은 국가안전부(MSS : 국안부)다. 국안부는 1983년 6월 공공안전부(공안부) 내의 기존 방첩단위(1∼4국)와 건국 초기부터 당내의 내사 및 내부 안전을 담당한 중앙조사부(中央調査部)의 일부 기능 및 군 총참모부의 일부 인력을 통합해 ‘국가 안전 및 반간첩 공작을 영도·관리하며,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및 조국통일의 대업을 보위·촉진’시킬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국안부의 설립은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의 채택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으며, 주요 목적은 중국의 대외개방으로 인한 외국인의 입국 및 내국인의 출국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좀더 조직적으로 간첩·방첩활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안부 조직은 설립 초기에는 9개 공작국과 4개의 직할 지원기관으로 구성되었으나, 개혁·개방의 추진으로 인한 대외접촉의 증가 및 컴퓨터·정보통신·위성·무인항공기(UAV) 등 첨단기술을 이용한 첩보활동 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업무 범위와 조직이 크게 확대되었다.
1990년대 말 현재 국안부는 17개 공작(工作)국과 10여 개의 행정지원국으로 편성되었다. 1∼3국은 지역국으로 해당 지역의 정보수집을 담당하며, 4국은 대만·홍콩·마카오를 별도 관리한다. 5국은 정보 분석의 통보와 정보 수집을 지도·연구하며, 6국은 과학·기술 정보의 수집·연구 및 통신공작을 지휘한다. 6국은 다수의 자연과학 전공자를 충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7국과 8국은 반간첩(방첩) 단위로 반간첩 정보의 수집 및 외국간첩의 정찰·체포를 맡고 있고, 해외의 중국 민주화 인사에 대한 감시 및 공작을 담당한다. 9국은 우편물 검사 및 통신정찰, 10국은 해외 중국 대사관·영사관의 안전공작을 담당한다(일부 자료에 따르면 10국은 해외 중국 대사관 및 영사관 보호 업무와 병행해 유학생 및 반중국 세력의 활동을 감시한다).
문서자료의 수집·연구·관리를 맡는 11국은 대외적으로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소’(中國現代國際關係硏究所, CICIR)로 알려졌는데, 동 연구소의 대외 학술활동으로 인해 외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이밖에 12국은 사회 민의(民意) 및 동태 조사, 13국은 과학 기자재 관리·연구, 14국은 암호·통신공작을 담당한다. 15국은 대만·홍콩·마카오 연구국으로, 4국과 업무 영역이 중첩되는 것으로 보인다. 16국은 국안부 내부 전산망의 안전 관리, 전산망의 외부 침입 방지 및 관련 정보 분석단위로 추정된다. 17국은 ‘청안총공사’(淸安總公司) 같은 국안부 소속 기업 및 사업의 관리를 담당한다.
이에 비해 공안부(公安部, MPS)는 공공치안을 담당하는 주무 부서로, 일반 경찰기관의 업무 외에도 국경수비, 출입국 관리, 소방 및 산불예방, 민간항공, 산아제한, 기술정찰 등 다양한 기능을 담당한다. 특히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각종 소요진압 및 치안유지에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무경’(武警:人民武裝警察)도 공안부 소속이다. 공안부는 당 중앙군사위의 지휘하에 현재 약 150만 명으로 추산하는 무경을 관리·운영한다.
신화사(新華社, NCNA)는 중국의 소식을 대외에 전파하고, 외국의 소식을 국내에 보도하는 일반적 통신사의 기능 외에 전 세계 각지의 소식을 수집·번역·요약·분석하여 중국의 고위급 지도자를 포함한 관계 부처에 수시 보고한다. 더욱이 신화사는 국안부 등 정보기관 요원의 해외 파견 때 신분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신화사는 당 중앙선전부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신화사 사장은 인민일보(人民日報) 사장과 마찬가지로 국무원 부장(장관)급에 해당한다. 국내 31개 지부, 국외 107개 지국을 운영하며, 고용 인원은 1만 명이 넘는다. 특히 신화사 홍콩 지국은 97년 7월 홍콩의 중국 반환 이전 중국 정부의 홍콩대표부로서 통일전선공작을 수행하였으나, 홍콩이 중국의 1개 특별행정구로 설정된 현재도 과거와 같은 정보기능을 수행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안고 있다.
중국의 당·정·군 정보체계는 방대한 조직을 통해 다양한 정보목표를 수행하는데 ‘첨단기술 획득’은 중국의 4개 현대화, ‘대(對) 대만 공작’은 중국의 통일문제와 직결된 주요 업무분야다. 특히 미국 의회 및 반중국 성향 단체들은 중국의 미국 내 첨단기술 불법 획득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제시해 왔는데, 미국 내 중국의 정보활동에 대해 가장 광범위하고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한 자료는 99년 5월 미 의회의 위원회가 발표한 이른바 ‘콕스(Cox) 보고서’다. 주요 내용은 중국이 자국의 군사·정보능력의 향상을 위해 핵무기·미사일·항공우주 기술 같은 미국의 다양한 군사기술을 수십 년 간 불법적으로 획득했으며, 미국 정부의 방만한 기술 수출통제정책이 이같은 중국의 스파이 활동을 쉽게 했다는 것이다.
국안부는 설립 초기인 85년 4월에 발생한 정보처장(과장급) 유강성(兪强聲)의 미국 망명 사건으로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유강성의 망명으로 미국 내 중국 첩보조직의 일부가 노출되었는데, 중국계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 김무태(金無怠) 검거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명이 래리인 진(金)은 지난 50년대에 국안부의 전신인 중앙조사부가 미국에 파견한 이른바 ‘심저어’(深低魚: 장기간첩)로 CIA에서 장기간 근무하다 85년 유강성 망명사건을 계기로 미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간첩혐의로 체포되었다. 유강성 망명사건을 계기로 주요 보직자에 대한 문책인사가 단행된 것을 말할 것도 없고, 같은 해 9월에는 당시 47세의 가춘왕(賈春旺)이 국안부장에 전격 임명되었다. 덩샤오핑의 신임이 컸던 그는 98년 3월 공안부장으로 전보될 때까지 무려 12년 이상을 국안부장으로 재직했다.
이밖에도 97년에는 로스 알라모스 국립실험실에 근무하는 대만계 미국인 피터 리(Peter Lee)가 연구소 근무중 소형 핵탄두의 폭발실험 정보 및 대잠전(對潛戰) 관련 비밀자료를 2회에 걸쳐 중국에 전달한 혐의로 체포되어 유죄를 선고 받았다. 또 99년 초에는 역시 대만계 미국인으로 같은 실험실에 근무한 이문화(李文和, Wen Ho Lee)가 연구원 재직중 핵탄두 설계, 미사일 및 기타 군사기밀정보를 다량 유출한 혐의로 체포되어 중국의 대미 기술 획득 공작의 대표적인 사례로 집중포화를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중국의 첩보활동(혐의)과 첩보결과(중국 핵무기 현대화)의 연계를 입증하지 못한 채 현재 증거 불충분으로 종결단계에 있다.
중국 정보당국의 첨단기술 획득 활동에 비해 대(對) 대만 공작은 중국통일의 문제로서 중국의 정보활동 중 가장 역사가 깊고 포괄적이며 철저한 업무분야다. 또 사안의 중요성으로 인해 당·정·군 지도부에서 민간 직능대표단을 동원하며, 적어도 정보수집 차원에서는 모든 영역을 망라하는 총체적 국가공작이다. 대 대만 공작의 최고지도기관은 ‘중앙대대공작영도소조’(中央對臺工作領導小組)로서 조장(江澤民), 부조장(錢其琛), 비서장(통전부장 王兆國) 외 4명의 위원(해협회 회장 王道涵, 군 부총참모장 熊光楷, 국안부장 許永躍, 중앙대대판공실 주임 겸 국무원 대대판공실 주임 陳雲林)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안(兩岸)관계’를 연구하는 대만의 주요 전문가들은 중국의 대 대만 공작을 ‘협상, 교류, 3통(通商·通航·通郵), 무력위협 및 선전’의 5개 분야에 대한 전면적 차원에서 파악한다. 이를테면 양안 교류분야는 87년 대만인의 대륙 방문 허용 및 91년 대만의 계엄해제 이후 급속한 증가를 이뤘다. 그러나 대만측은 중국의 정보단위가 양안교류 확대를 십분 활용해 국안부의 경우 ‘현대국제관계연구소’, 군 정보기관인 총참 2부는 ‘중국국제전략학회’의 학술교류 등을 통해 대만의 동태를 파악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또 3통의 확대는 중국 정보요원의 대만 침투를 좀더 쉽게 해주는 측면이 있는데, 예를 들어 군 총참 3부의 기업단위인‘개리공사’(凱利公司)는 대만 기업과의 정상적인 상업활동을 이용한다고 보고 있다. 대만에서는 이런 상업활동을 통한 정보공작이 중국과 대만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더욱 확대되었고, 2008년 올림픽 개최로 인한 중국의 국제적 위상과 경제적 활동 제고는 대만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국안부 조직은 설립 초기에는 9개 공작국과 4개의 직할 지원기관으로 구성되었으나, 개혁·개방의 추진으로 인한 대외접촉의 증가 및 컴퓨터·정보통신·위성·무인항공기(UAV) 등 첨단기술을 이용한 첩보활동 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업무 범위와 조직이 크게 확대되었다.
1990년대 말 현재 국안부는 17개 공작(工作)국과 10여 개의 행정지원국으로 편성되었다. 1∼3국은 지역국으로 해당 지역의 정보수집을 담당하며, 4국은 대만·홍콩·마카오를 별도 관리한다. 5국은 정보 분석의 통보와 정보 수집을 지도·연구하며, 6국은 과학·기술 정보의 수집·연구 및 통신공작을 지휘한다. 6국은 다수의 자연과학 전공자를 충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7국과 8국은 반간첩(방첩) 단위로 반간첩 정보의 수집 및 외국간첩의 정찰·체포를 맡고 있고, 해외의 중국 민주화 인사에 대한 감시 및 공작을 담당한다. 9국은 우편물 검사 및 통신정찰, 10국은 해외 중국 대사관·영사관의 안전공작을 담당한다(일부 자료에 따르면 10국은 해외 중국 대사관 및 영사관 보호 업무와 병행해 유학생 및 반중국 세력의 활동을 감시한다).
문서자료의 수집·연구·관리를 맡는 11국은 대외적으로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소’(中國現代國際關係硏究所, CICIR)로 알려졌는데, 동 연구소의 대외 학술활동으로 인해 외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이밖에 12국은 사회 민의(民意) 및 동태 조사, 13국은 과학 기자재 관리·연구, 14국은 암호·통신공작을 담당한다. 15국은 대만·홍콩·마카오 연구국으로, 4국과 업무 영역이 중첩되는 것으로 보인다. 16국은 국안부 내부 전산망의 안전 관리, 전산망의 외부 침입 방지 및 관련 정보 분석단위로 추정된다. 17국은 ‘청안총공사’(淸安總公司) 같은 국안부 소속 기업 및 사업의 관리를 담당한다.
이에 비해 공안부(公安部, MPS)는 공공치안을 담당하는 주무 부서로, 일반 경찰기관의 업무 외에도 국경수비, 출입국 관리, 소방 및 산불예방, 민간항공, 산아제한, 기술정찰 등 다양한 기능을 담당한다. 특히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각종 소요진압 및 치안유지에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무경’(武警:人民武裝警察)도 공안부 소속이다. 공안부는 당 중앙군사위의 지휘하에 현재 약 150만 명으로 추산하는 무경을 관리·운영한다.
신화사(新華社, NCNA)는 중국의 소식을 대외에 전파하고, 외국의 소식을 국내에 보도하는 일반적 통신사의 기능 외에 전 세계 각지의 소식을 수집·번역·요약·분석하여 중국의 고위급 지도자를 포함한 관계 부처에 수시 보고한다. 더욱이 신화사는 국안부 등 정보기관 요원의 해외 파견 때 신분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신화사는 당 중앙선전부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신화사 사장은 인민일보(人民日報) 사장과 마찬가지로 국무원 부장(장관)급에 해당한다. 국내 31개 지부, 국외 107개 지국을 운영하며, 고용 인원은 1만 명이 넘는다. 특히 신화사 홍콩 지국은 97년 7월 홍콩의 중국 반환 이전 중국 정부의 홍콩대표부로서 통일전선공작을 수행하였으나, 홍콩이 중국의 1개 특별행정구로 설정된 현재도 과거와 같은 정보기능을 수행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안고 있다.
중국의 당·정·군 정보체계는 방대한 조직을 통해 다양한 정보목표를 수행하는데 ‘첨단기술 획득’은 중국의 4개 현대화, ‘대(對) 대만 공작’은 중국의 통일문제와 직결된 주요 업무분야다. 특히 미국 의회 및 반중국 성향 단체들은 중국의 미국 내 첨단기술 불법 획득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제시해 왔는데, 미국 내 중국의 정보활동에 대해 가장 광범위하고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한 자료는 99년 5월 미 의회의 위원회가 발표한 이른바 ‘콕스(Cox) 보고서’다. 주요 내용은 중국이 자국의 군사·정보능력의 향상을 위해 핵무기·미사일·항공우주 기술 같은 미국의 다양한 군사기술을 수십 년 간 불법적으로 획득했으며, 미국 정부의 방만한 기술 수출통제정책이 이같은 중국의 스파이 활동을 쉽게 했다는 것이다.
국안부는 설립 초기인 85년 4월에 발생한 정보처장(과장급) 유강성(兪强聲)의 미국 망명 사건으로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유강성의 망명으로 미국 내 중국 첩보조직의 일부가 노출되었는데, 중국계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 김무태(金無怠) 검거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명이 래리인 진(金)은 지난 50년대에 국안부의 전신인 중앙조사부가 미국에 파견한 이른바 ‘심저어’(深低魚: 장기간첩)로 CIA에서 장기간 근무하다 85년 유강성 망명사건을 계기로 미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간첩혐의로 체포되었다. 유강성 망명사건을 계기로 주요 보직자에 대한 문책인사가 단행된 것을 말할 것도 없고, 같은 해 9월에는 당시 47세의 가춘왕(賈春旺)이 국안부장에 전격 임명되었다. 덩샤오핑의 신임이 컸던 그는 98년 3월 공안부장으로 전보될 때까지 무려 12년 이상을 국안부장으로 재직했다.
이밖에도 97년에는 로스 알라모스 국립실험실에 근무하는 대만계 미국인 피터 리(Peter Lee)가 연구소 근무중 소형 핵탄두의 폭발실험 정보 및 대잠전(對潛戰) 관련 비밀자료를 2회에 걸쳐 중국에 전달한 혐의로 체포되어 유죄를 선고 받았다. 또 99년 초에는 역시 대만계 미국인으로 같은 실험실에 근무한 이문화(李文和, Wen Ho Lee)가 연구원 재직중 핵탄두 설계, 미사일 및 기타 군사기밀정보를 다량 유출한 혐의로 체포되어 중국의 대미 기술 획득 공작의 대표적인 사례로 집중포화를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중국의 첩보활동(혐의)과 첩보결과(중국 핵무기 현대화)의 연계를 입증하지 못한 채 현재 증거 불충분으로 종결단계에 있다.
중국 정보당국의 첨단기술 획득 활동에 비해 대(對) 대만 공작은 중국통일의 문제로서 중국의 정보활동 중 가장 역사가 깊고 포괄적이며 철저한 업무분야다. 또 사안의 중요성으로 인해 당·정·군 지도부에서 민간 직능대표단을 동원하며, 적어도 정보수집 차원에서는 모든 영역을 망라하는 총체적 국가공작이다. 대 대만 공작의 최고지도기관은 ‘중앙대대공작영도소조’(中央對臺工作領導小組)로서 조장(江澤民), 부조장(錢其琛), 비서장(통전부장 王兆國) 외 4명의 위원(해협회 회장 王道涵, 군 부총참모장 熊光楷, 국안부장 許永躍, 중앙대대판공실 주임 겸 국무원 대대판공실 주임 陳雲林)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안(兩岸)관계’를 연구하는 대만의 주요 전문가들은 중국의 대 대만 공작을 ‘협상, 교류, 3통(通商·通航·通郵), 무력위협 및 선전’의 5개 분야에 대한 전면적 차원에서 파악한다. 이를테면 양안 교류분야는 87년 대만인의 대륙 방문 허용 및 91년 대만의 계엄해제 이후 급속한 증가를 이뤘다. 그러나 대만측은 중국의 정보단위가 양안교류 확대를 십분 활용해 국안부의 경우 ‘현대국제관계연구소’, 군 정보기관인 총참 2부는 ‘중국국제전략학회’의 학술교류 등을 통해 대만의 동태를 파악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또 3통의 확대는 중국 정보요원의 대만 침투를 좀더 쉽게 해주는 측면이 있는데, 예를 들어 군 총참 3부의 기업단위인‘개리공사’(凱利公司)는 대만 기업과의 정상적인 상업활동을 이용한다고 보고 있다. 대만에서는 이런 상업활동을 통한 정보공작이 중국과 대만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더욱 확대되었고, 2008년 올림픽 개최로 인한 중국의 국제적 위상과 경제적 활동 제고는 대만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