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변호사(참여연대 사무처장)는 2000년 9~11월까지의 석 달간 일본 시민사회를 기행하며 공익을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들과 만났다. 미나마타병의 피해자와 동참하기 위해 미나마타로 옮겨가 거기서 평생을 산 한 연극인과 어느 여성 활동가, 농업 공동체운동에 매진하며 거기에 평생을 바친 노인, 대학을 박차고 나와 반핵운동에 평생을 바친 시민과 학자, 스물일곱 번씩 해고를 당하면서 현장을 지켜온 노동 운동가, 나리타 공항 건설에 반대하며 주민들과 함께 투쟁하다 아예 그 고장에 눌러앉아 버린 학생운동 출신 농민운동가. 박변호사는 이들을 가와리모노(괴짜)라 했고, 가와리모노가 많은 나라는 좋은 나라라고 했다. ‘박원순변호사의 일본시민사회 기행’은 한국의 시민운동가의 눈에 비친 일본 지역사회와 지역운동에 대한 경탄을 담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 발견한 것이 법률과 제도의 힘이라면 일본에서 발견한 것은 개인과 집단의 성실성에 기초한 전통과 협동의 힘이다.”
그러나 일본에는 또 다른 부류의 가와리모노가 존재한다. “오늘날 일본의 혼돈과 몰락의 원인을 청소년들에게 ‘자학의 역사’와 ‘사죄의 역사’를 가르쳐 온 교육의 잘못 탓으로 돌리는” 부류들이다. 일본 역사왜곡의 중심에 있는 이들은 19세기 계몽운동가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론(脫亞入口論)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즉 “일본은 독립할 능력이 없는 조선·중국과 같은 동방의 악우(惡友)들과 손을 끊고 아시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이들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은커녕 “일본의 유일한 잘못은 전쟁에서 졌다는 것”이라며 애통해한다. 19세기적 우월감과 환상적인 영광에 취해 있는 가와리모노가 목소리를 높이는 한 일본의 미래는 어둡다.
그래서 일본 지식인의 눈에 비친 일본은 우울하다. 작가이며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인 시바 료타로는 1982년 이어령씨와의 대담에서 “리얼리티가 없는 교과서를 쓰는 나라는 패망하고 말 것”이라 했다. 그로부터 19년, 시바 료타로는 세상을 떠났으나 일본은 그가 우려한 대로 가고 있다.
“신(神)의 나라는 가라.” 이 말은 역사교과서 왜곡에 항의하는 이웃 나라의 목소리가 아니라 일본 내에서 일고 있는 자성(自省)의 소리다. 우에스기 사토시(일본 전쟁책임자료센터 사무국장), 기미지마 가즈히코(도쿄가쿠에이대 교수), 고시다 다카시(가큐슈인대 강사), 다카시마 노부요시(류큐대 교수) 등 4명의 일본 지식인이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를 파헤쳐 ‘신의 나라는 가라’(역사교과서 왜곡의 핵심이 황국사관에서 비롯했다는 의미)를 펴냈다. 이 책은 교과서 집필자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 배후세력인 산케이 신문과 후쇼 출판사가 추진한 교과서 집필 및 채택운동의 실태를 해부했다. 1장에서 이 운동의 위험하고도 위법적인 실태를 밝히고, 2, 3장에서는 문부과학성에 제출한 검정본(검정신청을 위해 출판사·집필자의 이름 등을 인쇄하지 않고, 백표지로 제출하기 때문에 통칭 백표지본이라 함)의 내용을 상세히 비판했다. 4장은 교과서 채택의 위법성을 일본 공정거래원회에 고발한 내용과 반론에 대한 재반론을 실었다.
이 책은 ‘새역모’의 교과서가 지난 4월3일 문부과학성에 의해 검정을 통과하기 직전인 3월에 출간한 것이라 시점상 혼란이 있을 수 있으나, 현재 한국 정부가 수정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와 일본 정부측의 의도를 분명히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여기서 다시 ‘박원순 변호사의 일본시민사회 기행’으로 돌아가 보자. 박변호사는 서문에서 “일본의 지식인이 자신의 사회에 큰 절망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일본에서 배울 것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제도와 실천, 그 어느 면에서도 그들이 우리보다 한 수 위다. 이들이 본받고 따라가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역사교과서 왜곡과 같은 해묵은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양국의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 장기적 해결책을 마련하자는 제안도 했다.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라면 두 책을 필독하기 바란다.
·박원순 변호사의 일본시민사회 기행-가와리모노를 찾아서/ 박원순 지음/ 아르케 펴냄/ 441쪽/ 1만2000원
·신(神)의 나라는 가라/ 우에스기 사토시 외 3인 지음/ 이충호 옮김/ 한길사 펴냄/ 176쪽/ 7000원
그러나 일본에는 또 다른 부류의 가와리모노가 존재한다. “오늘날 일본의 혼돈과 몰락의 원인을 청소년들에게 ‘자학의 역사’와 ‘사죄의 역사’를 가르쳐 온 교육의 잘못 탓으로 돌리는” 부류들이다. 일본 역사왜곡의 중심에 있는 이들은 19세기 계몽운동가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론(脫亞入口論)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즉 “일본은 독립할 능력이 없는 조선·중국과 같은 동방의 악우(惡友)들과 손을 끊고 아시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이들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은커녕 “일본의 유일한 잘못은 전쟁에서 졌다는 것”이라며 애통해한다. 19세기적 우월감과 환상적인 영광에 취해 있는 가와리모노가 목소리를 높이는 한 일본의 미래는 어둡다.
그래서 일본 지식인의 눈에 비친 일본은 우울하다. 작가이며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인 시바 료타로는 1982년 이어령씨와의 대담에서 “리얼리티가 없는 교과서를 쓰는 나라는 패망하고 말 것”이라 했다. 그로부터 19년, 시바 료타로는 세상을 떠났으나 일본은 그가 우려한 대로 가고 있다.
“신(神)의 나라는 가라.” 이 말은 역사교과서 왜곡에 항의하는 이웃 나라의 목소리가 아니라 일본 내에서 일고 있는 자성(自省)의 소리다. 우에스기 사토시(일본 전쟁책임자료센터 사무국장), 기미지마 가즈히코(도쿄가쿠에이대 교수), 고시다 다카시(가큐슈인대 강사), 다카시마 노부요시(류큐대 교수) 등 4명의 일본 지식인이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를 파헤쳐 ‘신의 나라는 가라’(역사교과서 왜곡의 핵심이 황국사관에서 비롯했다는 의미)를 펴냈다. 이 책은 교과서 집필자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 배후세력인 산케이 신문과 후쇼 출판사가 추진한 교과서 집필 및 채택운동의 실태를 해부했다. 1장에서 이 운동의 위험하고도 위법적인 실태를 밝히고, 2, 3장에서는 문부과학성에 제출한 검정본(검정신청을 위해 출판사·집필자의 이름 등을 인쇄하지 않고, 백표지로 제출하기 때문에 통칭 백표지본이라 함)의 내용을 상세히 비판했다. 4장은 교과서 채택의 위법성을 일본 공정거래원회에 고발한 내용과 반론에 대한 재반론을 실었다.
이 책은 ‘새역모’의 교과서가 지난 4월3일 문부과학성에 의해 검정을 통과하기 직전인 3월에 출간한 것이라 시점상 혼란이 있을 수 있으나, 현재 한국 정부가 수정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와 일본 정부측의 의도를 분명히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여기서 다시 ‘박원순 변호사의 일본시민사회 기행’으로 돌아가 보자. 박변호사는 서문에서 “일본의 지식인이 자신의 사회에 큰 절망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일본에서 배울 것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제도와 실천, 그 어느 면에서도 그들이 우리보다 한 수 위다. 이들이 본받고 따라가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역사교과서 왜곡과 같은 해묵은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양국의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 장기적 해결책을 마련하자는 제안도 했다.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라면 두 책을 필독하기 바란다.
·박원순 변호사의 일본시민사회 기행-가와리모노를 찾아서/ 박원순 지음/ 아르케 펴냄/ 441쪽/ 1만2000원
·신(神)의 나라는 가라/ 우에스기 사토시 외 3인 지음/ 이충호 옮김/ 한길사 펴냄/ 176쪽/ 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