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둑계에서 기획기사화하던 단골 메뉴는 ‘이창호 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 ‘이창호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라는 화두였다. 약방의 감초로 등장했던 이 질문에는 각종 국내대회와 세계대회를 휩쓸었던 이창호 9단에 염증을 느낀 바둑팬들의 새로운 스타탄생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그에 필적할 만한 대항마가 없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렇게 천하무적으로만 여겨지던 이창호가 펑펑 나가떨어지고 있다. 특히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이세돌 3단에게 그답지 않은 수읽기 착각으로 계가도 해보지 못한 채 허망하게 패배한 것은 충격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연 이창호의 전성시대는 다한 것일까.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는데 그의 뒤를 이을 ‘반상의 지존’은 누굴까. 이창호를 위협하는 한-중-일의 차세대 병기들을 알아본다.
‘태풍의 눈‘ 이세돌
우선 LG배에서 2연승하며 사상 최저단 세계대회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세돌 3단이 ‘포스트 이창호’의 선두 대열로 급부상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해 초 32연승의 연승행진으로 바둑계를 후끈 달궜던 이세돌은 연말 배달왕과 천원 타이틀을 차지하며 순식간에 국내 2관왕에 올랐다. 게다가 2000년 한 해를 가장 화려하게 장식한 공을 인정받아 이창호 9단을 밀어내고 최우수기사상까지 거머쥐었다. 기세를 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세계대회 결승까지 치고 올라와 ‘동방불패’ 이창호를 막다른 절벽으로 몰아넣었다. 이창호와의 상대전적에서도 3승2패로 한 발 앞서고 있다.
95년 만 12세의 나이로 입단한 이세돌은 한마디로 조훈현, 유창혁류의 천재형 기사로 분류된다. 섬광과도 같은 빠른 직관과 감각으로 속기에 능한 천재형 이세돌은 무색 무미 무취형의 천재인 이창호와는 반대의 기풍을 지녔다. 바로 이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한국바둑의 계보는 ‘조남철-김인-조훈현-이창호’로 이어져왔는데, 가만히 보면 서로 반대되는 기풍의 소유자가 한 다리 걸러 법통을 이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러시아의 대통령이 한 명 걸러 대머리였던 것처럼.
실리 기풍의 조남철 9단이 두터움의 김인 9단에 무너졌고, 김인 9단은 발빠른 행마를 장기로 했던 조훈현 9단에 1인자 자리를 양위했다. 그러나 ‘바람보다 빠른 날카로운 창’의 조훈현 九단도 거북이처럼 느리되 슈퍼컴보다 뛰어난 계산력을 앞세운 이창호 9단에 의해 15여 년의 독주체제를 접어야 했다. 그런 까닭에 이창호시대를 종식할 기재로 사람들은 방패술에 능한 기사보다는 창검술에 능한 기사를 꼽았던 것인데, 이창호 9단이 ‘선실리 후타개’ 전법을 구사하며 치고 빠지는 이세돌의 변칙스타일에 약점을 드러낸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더군다나 이세돌 3단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기상천외한 펀치를 쏟아붓는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한다. 그간의 바둑계 속설로 볼 때 이세돌 3단은 이창호 9단의 뒤를 이을 가장 유력한 후계자임이 틀림없다. 만약 5월에 속개될 LG배 결승 2라운드에서 이창호 9단을 따돌리고 우승한다면 세대교체를 향한 행보에 더욱더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해 중국바둑 랭킹 1위에 오른 저우허양(周鶴洋) 8단은 특히 이창호의 저격수로 각광받고 있다. 중국의 영웅이라던 마샤오춘(馬曉春)이 이창호 9단을 상대로 6승24패(승률 20%), 창하오(常昊)가 2승14패(승률 12.5%)라는 참담한 성적을 거두며 ‘공이증’(恐李症) 현상마저 불러일으켰지만 저우허양 8단만큼은 이창호 9단에 연거푸 3연승을 거두고 있다.
‘돌부처’라는 이창호보다 더 침착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저우허양은 계산력에서도 전혀 이창호에 밀리지 않고 있어 가장 경계해야 할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직 경험 부족으로 조훈현류의 발빠른 바둑에 약점을 드러내고 있긴 하지만 일단 세계최강 이창호에 전승을 거두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은 중국이 내세우고 있는 선발투수다.
그러나 이창호와 같은 또래인 저우허양보다는(76년생으로 이9단에 비해 한 살밖에 어리지 않다) 올해 18세인 콩지에(孔杰) 5단에 거는 기대가 더 큰 듯하다.
콩지에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중국 주최 세계대회인 춘란(春蘭)배에서였다. 99년 열렸던 제2회 춘란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일약 3위에 올라 세계바둑계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처음 출전한 세계대회에서 입상권에 든 것도 그렇거니와 그 과정 역시 대단했다. 일본과 한국의 정예멤버인 조선진 9단과 최명훈 7단을 물리치더니 8강에서 이 대회 초대 챔프였던 조훈현 9단을 꺾고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비록 준결승에서 2회 대회 우승자인 일본의 왕 리청(王立誠) 9단에게 패했지만 3, 4위 전에서는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 9단을 제압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열린 3회 대회에서는 16강전에서 세계바둑 넘버원 이창호 9단마저 잡아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온 중국대륙이 열광했고 그는 단숨에 ‘중국의 떠오르는 태양’으로 칭송됐다.
자신에 찬 콩지에의 호언이 재미있다. 이창호 9단을 꺾을 차세대 주자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그는 자신만만하게 “이창호를 뛰어넘을 기재는 나와 한국의 이세돌밖에 없다”고 얘기했다.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 9단처럼 ‘한국기사 킬러’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중국이 차세대 간판으로 기대하는 유망주다.
중국의 신예기사들에 비하면 아직 세계무대에서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이지는 못하지만 일본에서도 지난해부터 눈에 띄는 신예들이 부상하고 있다. 먼저 지난해 관록의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 9단을 물리치고 일본의 7대 기전 중 하나인 기성(碁聖) 타이틀을 거머쥐며 혜성과 같이 등장한 야마시타 게이고(山田規三生) 8단. 97년 신인상을 수상하며 서서히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야마시타는 지난해 우수기사상과 최다승리상(59승18패)을 수상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그의 독특한 기풍. 첫 수를 과감히 5-五나 천원(天元)에 두는 등 틀에 박히지 않은 바둑을 두어 아마추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기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에게 ‘우주류’의 원조로 잘 알려진 다케미야(武宮正樹) 9단보다 더 원대한 세력바둑을 펼치는 그는 그동안 한국기사와 대만기사의 득세로 흥미를 잃어가던 일본 바둑팬들에게 새로운 메시아로 대접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최근 일본 국내기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장쉬(張木羽) 6단도 무시 못할 존재다. 지난해 신인상을 거머쥔 그는 일본기원 소속 전 기사를 통틀어 승률 제1위상(53승12패1무, 81.1%)을 차지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기사다. 현재 일본의 3대 기전 중 하나인 혼인보(本因坊)전 본선리그에서 5승으로 선두를 달리며 도전권 획득을 눈앞에 두고 있다. 80년생인 그가 도전권을 획득한다면 일본에서 최연소의 나이로 타이틀전에 나서는 신기록을 작성하게 된다. 장쉬는 린하이펑(林海峰) 9단의 제자로 현재 일본 바둑을 평정하고 있는 대만세의 떠오르는 샛별로 주목받고 있다.
‘장강(長江)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이창호를 무너뜨릴 새 인물은 반드시 나오게 될 것이다. 그게 누구인지와 그 시기가 문제지만 앞서 지적한 한-중-일의 신예 중 한 명이 세계최강 자리를 대물림할 확률이 현재로서는 가장 크다.
세대교체 운운하기에는 아직 때가 이른 감이 있지만 최근 이창호가 흔들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 2월 응씨(應氏)배에서 우승하며 세계최강을 재확인한 이창호지만 그의 기보를 검토한 기사들은 한결같이 예전의 이창호답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심지어 쉬운 수를 착각하기까지 하는 이창호의 극심한 난조에 의문부호를 달고 있는 것이다.
서봉수 9단의 말마따나 정상에 오르는 데에는 수십년이 걸리지만 내려오는 데에는 며칠 걸리지 않는 게 승부세계다. 세계최강에 올라서려는 신예들의 치열한 몸부림과 권좌를 지키려는 이창호의 처절한 방어망. 점입가경을 이루고 있는 21세기 바둑삼국지에서 누가 과연 일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는지…. 어쨌든 바둑팬들은 살맛나게 생겼다.
이렇게 천하무적으로만 여겨지던 이창호가 펑펑 나가떨어지고 있다. 특히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이세돌 3단에게 그답지 않은 수읽기 착각으로 계가도 해보지 못한 채 허망하게 패배한 것은 충격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연 이창호의 전성시대는 다한 것일까.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는데 그의 뒤를 이을 ‘반상의 지존’은 누굴까. 이창호를 위협하는 한-중-일의 차세대 병기들을 알아본다.
‘태풍의 눈‘ 이세돌
우선 LG배에서 2연승하며 사상 최저단 세계대회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세돌 3단이 ‘포스트 이창호’의 선두 대열로 급부상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해 초 32연승의 연승행진으로 바둑계를 후끈 달궜던 이세돌은 연말 배달왕과 천원 타이틀을 차지하며 순식간에 국내 2관왕에 올랐다. 게다가 2000년 한 해를 가장 화려하게 장식한 공을 인정받아 이창호 9단을 밀어내고 최우수기사상까지 거머쥐었다. 기세를 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세계대회 결승까지 치고 올라와 ‘동방불패’ 이창호를 막다른 절벽으로 몰아넣었다. 이창호와의 상대전적에서도 3승2패로 한 발 앞서고 있다.
95년 만 12세의 나이로 입단한 이세돌은 한마디로 조훈현, 유창혁류의 천재형 기사로 분류된다. 섬광과도 같은 빠른 직관과 감각으로 속기에 능한 천재형 이세돌은 무색 무미 무취형의 천재인 이창호와는 반대의 기풍을 지녔다. 바로 이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한국바둑의 계보는 ‘조남철-김인-조훈현-이창호’로 이어져왔는데, 가만히 보면 서로 반대되는 기풍의 소유자가 한 다리 걸러 법통을 이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러시아의 대통령이 한 명 걸러 대머리였던 것처럼.
실리 기풍의 조남철 9단이 두터움의 김인 9단에 무너졌고, 김인 9단은 발빠른 행마를 장기로 했던 조훈현 9단에 1인자 자리를 양위했다. 그러나 ‘바람보다 빠른 날카로운 창’의 조훈현 九단도 거북이처럼 느리되 슈퍼컴보다 뛰어난 계산력을 앞세운 이창호 9단에 의해 15여 년의 독주체제를 접어야 했다. 그런 까닭에 이창호시대를 종식할 기재로 사람들은 방패술에 능한 기사보다는 창검술에 능한 기사를 꼽았던 것인데, 이창호 9단이 ‘선실리 후타개’ 전법을 구사하며 치고 빠지는 이세돌의 변칙스타일에 약점을 드러낸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더군다나 이세돌 3단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기상천외한 펀치를 쏟아붓는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한다. 그간의 바둑계 속설로 볼 때 이세돌 3단은 이창호 9단의 뒤를 이을 가장 유력한 후계자임이 틀림없다. 만약 5월에 속개될 LG배 결승 2라운드에서 이창호 9단을 따돌리고 우승한다면 세대교체를 향한 행보에 더욱더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해 중국바둑 랭킹 1위에 오른 저우허양(周鶴洋) 8단은 특히 이창호의 저격수로 각광받고 있다. 중국의 영웅이라던 마샤오춘(馬曉春)이 이창호 9단을 상대로 6승24패(승률 20%), 창하오(常昊)가 2승14패(승률 12.5%)라는 참담한 성적을 거두며 ‘공이증’(恐李症) 현상마저 불러일으켰지만 저우허양 8단만큼은 이창호 9단에 연거푸 3연승을 거두고 있다.
‘돌부처’라는 이창호보다 더 침착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저우허양은 계산력에서도 전혀 이창호에 밀리지 않고 있어 가장 경계해야 할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직 경험 부족으로 조훈현류의 발빠른 바둑에 약점을 드러내고 있긴 하지만 일단 세계최강 이창호에 전승을 거두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은 중국이 내세우고 있는 선발투수다.
그러나 이창호와 같은 또래인 저우허양보다는(76년생으로 이9단에 비해 한 살밖에 어리지 않다) 올해 18세인 콩지에(孔杰) 5단에 거는 기대가 더 큰 듯하다.
콩지에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중국 주최 세계대회인 춘란(春蘭)배에서였다. 99년 열렸던 제2회 춘란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일약 3위에 올라 세계바둑계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처음 출전한 세계대회에서 입상권에 든 것도 그렇거니와 그 과정 역시 대단했다. 일본과 한국의 정예멤버인 조선진 9단과 최명훈 7단을 물리치더니 8강에서 이 대회 초대 챔프였던 조훈현 9단을 꺾고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비록 준결승에서 2회 대회 우승자인 일본의 왕 리청(王立誠) 9단에게 패했지만 3, 4위 전에서는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 9단을 제압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열린 3회 대회에서는 16강전에서 세계바둑 넘버원 이창호 9단마저 잡아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온 중국대륙이 열광했고 그는 단숨에 ‘중국의 떠오르는 태양’으로 칭송됐다.
자신에 찬 콩지에의 호언이 재미있다. 이창호 9단을 꺾을 차세대 주자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그는 자신만만하게 “이창호를 뛰어넘을 기재는 나와 한국의 이세돌밖에 없다”고 얘기했다.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 9단처럼 ‘한국기사 킬러’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중국이 차세대 간판으로 기대하는 유망주다.
중국의 신예기사들에 비하면 아직 세계무대에서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이지는 못하지만 일본에서도 지난해부터 눈에 띄는 신예들이 부상하고 있다. 먼저 지난해 관록의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 9단을 물리치고 일본의 7대 기전 중 하나인 기성(碁聖) 타이틀을 거머쥐며 혜성과 같이 등장한 야마시타 게이고(山田規三生) 8단. 97년 신인상을 수상하며 서서히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야마시타는 지난해 우수기사상과 최다승리상(59승18패)을 수상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그의 독특한 기풍. 첫 수를 과감히 5-五나 천원(天元)에 두는 등 틀에 박히지 않은 바둑을 두어 아마추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기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에게 ‘우주류’의 원조로 잘 알려진 다케미야(武宮正樹) 9단보다 더 원대한 세력바둑을 펼치는 그는 그동안 한국기사와 대만기사의 득세로 흥미를 잃어가던 일본 바둑팬들에게 새로운 메시아로 대접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최근 일본 국내기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장쉬(張木羽) 6단도 무시 못할 존재다. 지난해 신인상을 거머쥔 그는 일본기원 소속 전 기사를 통틀어 승률 제1위상(53승12패1무, 81.1%)을 차지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기사다. 현재 일본의 3대 기전 중 하나인 혼인보(本因坊)전 본선리그에서 5승으로 선두를 달리며 도전권 획득을 눈앞에 두고 있다. 80년생인 그가 도전권을 획득한다면 일본에서 최연소의 나이로 타이틀전에 나서는 신기록을 작성하게 된다. 장쉬는 린하이펑(林海峰) 9단의 제자로 현재 일본 바둑을 평정하고 있는 대만세의 떠오르는 샛별로 주목받고 있다.
‘장강(長江)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이창호를 무너뜨릴 새 인물은 반드시 나오게 될 것이다. 그게 누구인지와 그 시기가 문제지만 앞서 지적한 한-중-일의 신예 중 한 명이 세계최강 자리를 대물림할 확률이 현재로서는 가장 크다.
세대교체 운운하기에는 아직 때가 이른 감이 있지만 최근 이창호가 흔들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 2월 응씨(應氏)배에서 우승하며 세계최강을 재확인한 이창호지만 그의 기보를 검토한 기사들은 한결같이 예전의 이창호답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심지어 쉬운 수를 착각하기까지 하는 이창호의 극심한 난조에 의문부호를 달고 있는 것이다.
서봉수 9단의 말마따나 정상에 오르는 데에는 수십년이 걸리지만 내려오는 데에는 며칠 걸리지 않는 게 승부세계다. 세계최강에 올라서려는 신예들의 치열한 몸부림과 권좌를 지키려는 이창호의 처절한 방어망. 점입가경을 이루고 있는 21세기 바둑삼국지에서 누가 과연 일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는지…. 어쨌든 바둑팬들은 살맛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