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이후 대형 사건을 수사해본 특수부 검사들은 “자금을 추적하다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자금이 나타날 때가 여러 차례 있었다”고 회고한다.
‘못 볼 것’을 본 검사들은 그러나 한번도 그 돈을 끝까지 추적하지 못했다. 안기부가 정치권에 뿌린 정치자금이라는 것을 직감한 수뇌부가 더 이상의 추적을 막았기 때문.
2000년 4월부터 세상에 알려진 프랑스 알스톰사의 고속철도 차량선정 로비의혹 사건을 수사한 대검 중수부 역시 과거와 유사한 ‘못 볼 것’을 보고야 말았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번 수사팀은 ‘못 볼 것’을 적극적으로 들여다보았고 이른바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에 이르렀다.
첫 단서는 4월28일 고속철도 로비의혹 사건으로 구속된 프랑스 알스톰사 한국지사장의 부인 호기춘씨의 진술에서 나왔다. 호씨는 “최만석씨(59·수배중)의 로비력을 알아보기 위해 최씨와 황명수 당시 의원을 집으로 초대했고 최씨가 황씨에게 로비자금을 주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당시 수사의 목표는 최씨가 정치인 누구에게 얼마의 돈을 주고 로비를 했는지에 쏠려 있었다. 당연히 황 전의원에 대한 계좌추적이 시작됐다.
추적 결과 검찰은 황 전의원 주변인물 중 ‘몇 사람’의 계좌에서 최씨의 것으로 보이는 돈 수억원을 찾아냈다. 문제는 그 다음. 검찰은 이 계좌에 ‘의심이 가는’ 또다른 돈이 입출금된 단서를 포착해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추적해나갔다. 검찰이 황 전의원 관련 계좌에서 나온 돈의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자 이 돈은 수차례 정교한 돈 세탁 과정을 거쳐 국가정보원(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의 모(母)계좌라는 ‘저수지’로 통했다.
일단 저수지에 도착한 검찰은 여기에 고여 있던 수백억원이 다시 경남종금을 비롯한 몇 개 금융기관에서 돈 세탁 과정을 거쳐 작은 ‘물줄기’를 이루며 96년 15대 총선 직전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 후보자들에게 흘러간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이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4월부터 최근까지 법원에 여덟 차례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해 10여 개 금융기관에 개설된 100여 개 계좌를 뒤졌다. 검찰 수뇌부의 동의가 없었다면 이처럼 대대적인 계좌추적은 불가능했을 것이므로 검찰이 적당한 때를 기다려 이번 사건을 공론화하려 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검찰이 남산 자금을 뒤진다’는 소문이 금융권에 퍼지고 안기부 비밀자금의 정치권 유입 의혹이 10월4일자 동아일보에 보도되자 검찰은 난감한 입장에 빠졌다. 박상길 중수부 수사기획관은 4일 기자들과 만나 “고속철도 자금 추적과정에서 황 전의원의 계좌와 경남종금 계좌를 건드린 것은 맞으나 이 돈이 안기부 자금인지와 정치인들에게 전달됐는지는 더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시인도 부인도 아닌 이같은 공식 입장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박기획관은 “한가지 수사를 하다가 다른 의심스런 증거가 있으면 추적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 안기부 자금의 정치자금 유입을 시인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지만 외관상 검찰은 ‘수사 중단’ 상태다.
이같은 검찰의 조심스런 반응은 사건에 대한 본격 수사가 몰고올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국정원과 당시 여당에 대한 수사가 그 ‘윗선’에 대한 수사로 비화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파행을 거듭하던 정치권이 9일 여야 영수회담을 계기로 ‘화해무드’로 접어든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도 좋지만 검찰이 나서서 어렵사리 정상을 되찾은 정치판을 깨라는 말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법조계는 이번 사건에 대한 본격수사는 검찰 자체의 판단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최종 책임을 짊어질 대통령의 ‘O. K’사인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못 볼 것’을 본 검사들은 그러나 한번도 그 돈을 끝까지 추적하지 못했다. 안기부가 정치권에 뿌린 정치자금이라는 것을 직감한 수뇌부가 더 이상의 추적을 막았기 때문.
2000년 4월부터 세상에 알려진 프랑스 알스톰사의 고속철도 차량선정 로비의혹 사건을 수사한 대검 중수부 역시 과거와 유사한 ‘못 볼 것’을 보고야 말았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번 수사팀은 ‘못 볼 것’을 적극적으로 들여다보았고 이른바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에 이르렀다.
첫 단서는 4월28일 고속철도 로비의혹 사건으로 구속된 프랑스 알스톰사 한국지사장의 부인 호기춘씨의 진술에서 나왔다. 호씨는 “최만석씨(59·수배중)의 로비력을 알아보기 위해 최씨와 황명수 당시 의원을 집으로 초대했고 최씨가 황씨에게 로비자금을 주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당시 수사의 목표는 최씨가 정치인 누구에게 얼마의 돈을 주고 로비를 했는지에 쏠려 있었다. 당연히 황 전의원에 대한 계좌추적이 시작됐다.
추적 결과 검찰은 황 전의원 주변인물 중 ‘몇 사람’의 계좌에서 최씨의 것으로 보이는 돈 수억원을 찾아냈다. 문제는 그 다음. 검찰은 이 계좌에 ‘의심이 가는’ 또다른 돈이 입출금된 단서를 포착해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추적해나갔다. 검찰이 황 전의원 관련 계좌에서 나온 돈의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자 이 돈은 수차례 정교한 돈 세탁 과정을 거쳐 국가정보원(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의 모(母)계좌라는 ‘저수지’로 통했다.
일단 저수지에 도착한 검찰은 여기에 고여 있던 수백억원이 다시 경남종금을 비롯한 몇 개 금융기관에서 돈 세탁 과정을 거쳐 작은 ‘물줄기’를 이루며 96년 15대 총선 직전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 후보자들에게 흘러간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이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4월부터 최근까지 법원에 여덟 차례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해 10여 개 금융기관에 개설된 100여 개 계좌를 뒤졌다. 검찰 수뇌부의 동의가 없었다면 이처럼 대대적인 계좌추적은 불가능했을 것이므로 검찰이 적당한 때를 기다려 이번 사건을 공론화하려 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검찰이 남산 자금을 뒤진다’는 소문이 금융권에 퍼지고 안기부 비밀자금의 정치권 유입 의혹이 10월4일자 동아일보에 보도되자 검찰은 난감한 입장에 빠졌다. 박상길 중수부 수사기획관은 4일 기자들과 만나 “고속철도 자금 추적과정에서 황 전의원의 계좌와 경남종금 계좌를 건드린 것은 맞으나 이 돈이 안기부 자금인지와 정치인들에게 전달됐는지는 더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시인도 부인도 아닌 이같은 공식 입장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박기획관은 “한가지 수사를 하다가 다른 의심스런 증거가 있으면 추적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 안기부 자금의 정치자금 유입을 시인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지만 외관상 검찰은 ‘수사 중단’ 상태다.
이같은 검찰의 조심스런 반응은 사건에 대한 본격 수사가 몰고올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국정원과 당시 여당에 대한 수사가 그 ‘윗선’에 대한 수사로 비화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파행을 거듭하던 정치권이 9일 여야 영수회담을 계기로 ‘화해무드’로 접어든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도 좋지만 검찰이 나서서 어렵사리 정상을 되찾은 정치판을 깨라는 말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법조계는 이번 사건에 대한 본격수사는 검찰 자체의 판단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최종 책임을 짊어질 대통령의 ‘O. K’사인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