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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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 쇼핑’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

24시간 케이블 TV 홈쇼핑 고객 폭증…편리하지만 가짜 등 피해 사례도 속출

  • 입력2005-06-27 13: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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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목동에 사는 30대 주부 김연희씨의 취미는 ‘아이쇼핑’(eye shopping)이다. 김씨가 쇼핑에 쏟는 시간은 보통 하루 서너 시간. 그렇다고 해서 공들여 외출 채비를 마친 뒤, 차를 타고 가서 붐비는 백화점 매장을 헤집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 느긋하게 안방에 앉아 아이쇼핑을 즐긴다. 하루 24시간 열려 있는 ‘TV홈쇼핑’ 덕분이다. 간단히 텔레비전 리모컨만 누르면 들어설 수 있는 이곳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가지 상품이 눈 앞에 현란하게 펼쳐지며 김씨를 들뜨게 만든다.

    “저렴한 가격에 하나 장만해서 집안에 두면 남녀노소 누구나 사용이 가능합니다. 효도선물로도 그만이죠.”

    “주부님들 이 기계를 써 보세요. 비싼 돈 내고 피부미용실 가실 필요없이 간단하고 편리하게 집안에서 얼굴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습니다.”

    상품을 소개하는 쇼핑 호스트의 낭랑한 음성과 적극적인 권유에 김씨는 종종 유혹당한다. “지금 빨리 주문하세요”라는 재촉을 도저히 그냥 넘기지 못한 탓에 김씨는 지난달 남편과 다투기까지 했다. 싸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놓칠 새라 무심결에 누른 다이얼 때문에 9월분 카드대금청구서가 70만원을 훌쩍 넘어섰기 때문이다.

    김씨처럼 TV홈쇼핑으로 몰리는 남녀 고객이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케이블TV 홈쇼핑 사업도 최근 몇 년 사이에 고속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텔레비전 시청→상품 선택→구매전화→집까지 배송’. 눈 깜박할 사이 물건을 살 수 있고, 안방에 앉아서 받을 수 있는 편리함 외에 기존 오프라인 시장보다 저렴한 물건 값 등이 애용자들이 꼽는 케이블TV 홈쇼핑의 매력.



    하지만 소비자가 늘면서 그에 따르는 부작용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가 바로 최근 잇따라 터진 ‘진품’ 또는 ‘가짜’ 논란이다. 가짜 선글라스, 가짜 가방, 가짜 산삼, 가짜 영덕대게…. 이와 관련해 유통업자와 이를 위탁 판매한 홈쇼핑업체 두 곳이 약식기소됐는가 하면, 가짜 산삼을 감정한 뒤 허위 인정서를 내준 모 대학 한의학과 교수는 최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또 러시아 등지에서 헐값에 수입한 대게를 ‘영덕대게’라고 속여 홈쇼핑 등을 통해 판매해온 업자는 불구속 입건됐다.

    최근 가짜 선글라스와 가짜 산삼 파동으로 홍역을 치른 LG홈쇼핑 홍보팀장 신형범 차장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산삼의 경우 전문적인 분야여서 사실 회사 자체에서 검증할 능력이 없다. 때문에 판매할 산삼 매 뿌리마다 품질 인증서를 생산업자 측에 요구했는데 결과적으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심지어 산삼을 감정한 교수가 소속된 대학 측으로부터 각서까지 받았다. 그러나 이미 사과 광고를 내고 문제의 산삼을 구입한 전 고객에 대해 환불조치까지 끝냈다. 앞으로 전문적 감정이 필요한 물품이나 해외 유명 브랜드 상품 등은 품질 검증과정을 더욱 철저하고 엄격히 할 계획이다. 예를 들면 공인된 국가기관에 감정을 의뢰하거나 수입업자로부터 진품 증명서를 받는 등 대책을 마련 중이다.”

    LG홈쇼핑과 CJ39쇼핑이 홍역을 치른 해외 유명 브랜드 진품 소동은 일면 복잡한 유통구조에서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에 언제든 또다시 불거질 수 있다. 해외 유명 브랜드들은 통상 자국내 유통업체를 통해 전세계로 물건을 내보낸다. 이를 아시아 등 지역별 유통업체가 받아 다시 각국 독점 수입업체에 공급한다.

    이러한 정식 루트 외에 또 다른 루트가 있다. 해외 유명 브랜드 생산국에 있는 페이퍼컴퍼니와 제3국을 거쳐, 업계에서 흔히 ‘보따리상’이라 불리는 병행 수입업체를 통한 유통과정이 그것. 독점 수입업체는 해외 유명 브랜드 물품 가격을 많게는 10배까지 올려 받기 때문에 TV홈쇼핑 업체는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이를 선뜻 받기가 어렵다. 대신 병행 수입업체를 통하면 공급단가가 낮아지기 때문에 진품 논란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이 루트를 거쳐 국내에 들여온 상품을 이용하고 있는 것.

    “정식 루트를 통하지 않고 판매된 물품에 대해 본사가 진품 여부를 가려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짜라고 판정하면 정식 유통업체가 문제삼게 되고, 가짜라고 판명하면 자사가 만든 물건을 가짜라고 증명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식 루트보다 음지 루트를 통한 수익이 사실 훨씬 크기 때문에 눈감는 경우도 많다. 이런 과정 때문에 가짜 소동이 불거진다.”

    LG홈쇼핑 신형범 차장의 설명이다. 그러나 병행 수입업체를 통하는 과정에서 ‘물타기’가 시도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물타기란 예를 들어 해외 유명 브랜드 물품 100개를 수입한 중간업자가 진품 10개를 빼돌리고 대신 가짜로 채워 넣은 뒤 진품으로 속여 판매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 경우 시중에 진품으로 둔갑한 가짜가 나돌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는 가짜를 진품으로 알고 구입할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이런저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물품에 대한 신뢰 문제를 TV홈쇼핑 업체가 떠안아야 할 이유가 있다. “소비자가 홈쇼핑 채널을 이용할 때는 그 업체를 믿고 물건을 사지 제조업체를 믿고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다”고 말하는 소비자가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보호원 분쟁조정국 이정식 차장에 따르면 TV홈쇼핑과 관련해 지난해 접수된 소비자 피해 사례 건수는 총 150건. 그런데 올들어 지난 8월 말까지 접수된 건수만 총 1938건에 이른다. LG홈쇼핑과 CJ39쇼핑 관계자들은 “이 가운데 두 업체와 관련된 소비자 피해 건수는 총 19건에 불과하다”면서 “유선 채널을 통해 광고-판매하는 특정 업체 두 곳에서만 무려 1888건에 이르는 피해 신고가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 입장에서 유의할 점은 정부가 정식으로 케이블TV 홈쇼핑 사업자로 선정한 곳은 LG홈쇼핑과 CJ39쇼핑 두 곳뿐이라는 점. 다른 업체는 편법이긴 하지만 각 지역 중계유선방송국의 유선 채널을 사서 홈쇼핑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불법은 아니지만 이들은 영세 업체인 경우가 많아 소비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피해 신고 사례를 유형별로 보면 배송 지연이 가장 많은 1656건에 달했다. 다음으로 환불 약속 후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204건을 차지했다. 한편 디자인 불만 21건, 주문 제품과 상이한 제품이 배달된 경우 22건, 품질상 하자가 있는 경우 20건, 대금 이중청구 등 기타 건수가 15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소비자들의 불만 또는 피해 사례가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은 홈쇼핑업체의 홈페이지 게시판이다.

    “택배 아저씨들이 물건을 약속한 제 날짜에 가져오지 않아 일부러 시간을 내고 기다려도 못만나는 수가 있다. 사전에 구매자와 확인전화를 하고 제 날짜, 제 시간에 수령할 수 있었으면 한다.”

    “약속한 배달 날짜가 지난 뒤 사전 연락도 없이 사무실에 와서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 대리인수하게 하고 물건을 책상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뒤늦게 물건을 찾았지만 이미 분실된 상태였다.”

    “물건 갖다준다던 날엔 오지도 않더니 엉뚱한 날 와서 경비실에 맡겨 놓고 갔다고 했다. 그런데 물건이 없어져 택배회사에 전화했더니 자기들은 일단 배달했으니까 책임이 없다며 막무가내로 나왔다. 화가 나서 홈쇼핑 회사에 전화했더니 택배회사 잘못이라며 그쪽에 알아보라는 말만 했다.”(홈쇼핑 단골고객 김순영씨)

    대부분 업체는 소비자 잘못이 없는 한 반품과 환불이 언제든 가능하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의구심이 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TV홈쇼핑을 통해 컴퓨터를 구입했다가 고생한 이진호씨(남·32)는 “반품할 물건을 가지러 오겠다고 해놓고 차일피일 미룰 땐 이 회사가 정말 반품받을 의사가 있나 싶다”고 털어놓았다.

    품질에 대한 불만도 크다. 한 소비자는 TV홈쇼핑 업체 인터넷 홈페이지에 “며칠 전 카세트 하나를 주문했는데 열어보니 리모컨 여기저기에 흠이 나 있을 뿐만 아니라 작동도 되지 않았다. 큰 맘 먹고 산 건데 너무 화가 났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또다른 소비자는 “정장 바지를 주문했는데 배송 되어온 물건은 상표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잘못 배달된 제품은 이전에 방송된 적이 있는데 내가 알기로 주문한 바지보다 가격이 1만~2만원 싼 것”이라며 어이없어 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또 조명과 카메라 위치에 따라 똑같은 물건이 약간씩 달라 보일 수 있다는 점도 조심해야 한다. TV의 이런 특성을 이용, 광고 효과를 위해 일정 부분 과장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쇼핑업체 담당자들도 “좋은 상품을 고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내용물 일부가 빠진 채 배달되는 것에 대한 불만도 많다. “방송에서는 물통을 끼울 때 쓰는 필터를 하나 더 준다고 했는데 물건을 받아보니 사은품이랑 다 있는데 그 필터가 없다.” “방송에서는 전 구매 고객에게 배터리 1개를 추가로 지급한다고 했는데 추후 전화로 (미발송) 확인을 해야만 받을 수 있다니 황당했다.”

    한국소비자보호원 사이버소비자센터 황정선 팀장은 “실제 TV 홈쇼핑에서 발생하는 소비자 피해 사례는 1%에도 못 미친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홈쇼핑에서 제품을 소개할 때 교수 또는 박사 등 믿을 만한 사람을 게스트로 출연시켜 상품 특성 등을 설명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과도한 믿음을 유발하는 부분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나아가 허위 과장 광고를 하는 경우마저 있다는 것. 황팀장은 “이런 점에서 소비자 불만이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지나친 상술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TV홈쇼핑을 이용하는 주고객은 통상 20~40대 여성이다. 전체 고객 중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70~80% 선에 이른다. 이런 이유로 인터넷 쇼핑몰이 남성 쇼핑중독자를 배출하는 반면 TV홈쇼핑은 여성, 특히 주부 중독자를 낳고 있다.

    주부 조현경씨(가명·40)는 홈쇼핑 중독 증세로 인해 남편이 케이블 방송을 취소하자 이웃집을 전전하며 쇼핑에 열을 올린다. 조씨는 “하루라도 홈쇼핑 채널을 보지 않으면 초조하고 불안하다. 꼭 사야만 할 물건을 놓칠 것 같은 심정이 든다. 그래서 자꾸 텔레비전을 보게 되고, 시중 가격보다 싼 점에 혹해서 무작정 구입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남편이 신용카드를 빼앗아버리자 또다시 몰래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TV홈쇼핑에 나섰고, 현재 200만원 가까운 카드 빚을 지고 있다.

    조씨처럼 쉽고 편리하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 이끌려 리모컨과 전화기 버튼을 무작정 누르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충동구매와 홈쇼핑 중독에 빠질 수 있다. 케이블TV 홈쇼핑 사업자나 소비자 모두 건전한 소비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할 때만이 케이블TV 홈쇼핑의 지속적인 성장이 담보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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