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도 새마을 운동? 북한에서 발행되는 잡지에 ‘새마을’이 등장하고, 협동농장에도 ‘새마을’이라는 이름이 붙는 등 ‘새마을 바람’이 불 조짐이 보여 최근의 남북 화해 기류와 함께 주목할 만한 현상이 되고 있다.
먼저 북한에서 발행되는 월간잡지 ‘조선’에 올 초 보도된 내용의 한 대목을 보자. “훌륭한 살림집들과 기름진 벌, 소형 발전소 …. 30동의 새마을 전경을 멀리서 바라보면 동화세계의 꽃동산에 들어선 것 같다. 산간마을의 특성에 맞게 나무로 벽과 지붕을 쌓고 울타리도 둘러쳤다. 토끼, 염소 등을 동시에 기를 수 있는 종합 집짐승 우리도 지었다.”
‘조선’은 ‘낭림의 새마을’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힘으로 훌륭한 새마을을 만들자는 것이 (주민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라며 이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북한에서는 처음으로 해발 1100m의 고지대에 위치한 자강도 낭림군 읍협동농장에 있는 월상마을에 ‘새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이 마을은 자체적으로 세운 수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로 조명, 난방 등을 해결하고 있다. 벽과 지붕은 통나무로 돼있고 부엌에는 창고가, 지하에는 감자 저장실이 딸려 있다. 마을 중앙에는 농업과학기술지식 선전실도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해 9월14일 북한 농촌개혁의 상징인 이 마을을 방문해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김위원장은 이 마을에 새로운 감자 종자와 컬러텔레비전, 자동차 등을 보내줄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새마을’이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을 북한이 남한의 새마을 운동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이고 있다. 새마을 운동 중앙협의회(약칭 중앙회) 강문규회장은 “북한이 우리 새마을 운동에서 어떤 암시를 받았기에 그런 이름을 썼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새마을 운동 관계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농업 위기를 맞기 시작한 80년대 후반부터 남한의 새마을 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 또한 90년대 초반에는 북한의 천리마 운동과 비교 검토를 끝내고 ‘북한식 새마을 운동’을 나름대로 정립하는 단계에 들어갔다고 한다.
북한이 새마을 운동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처음 드러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북한 현대그룹 정주영 전명예회장을 만났을 때. 김위원장은 1999년 10월1일 북한 흥남에 있는 서호초대소에서 정 전명예회장, 정몽헌 전현대그룹 회장 등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남쪽이 이만큼 살게 된 것은 박정희 전대통령이 추진했던 새마을 운동 덕분”이라며 새마을 운동을 상당히 높이 평가했다.
중앙회 강회장도 지난해 2월 방북했을 때 북한이 뜻밖에 새마을 운동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놀랐다고 한다. 강회장이 아태평화위원회 관계자에게 명함을 건네니 “새마을 운동 중앙회에서 오셨냐”면서 “그동안 조용하더니 이제 일을 시작하느냐”며 관심을 표명했다는 것. 강회장이 “새마을 운동을 아느냐”고 묻자 이 관계자는 “잘 알고 있다”며 북한의 천리마 운동과 새마을 운동을 비교해 설명하기도 했다고 한다.
북한의 이런 변화에 맞춰 중앙회에서도 적극적으로 ‘새마을 운동 북한 수출작전’에 나서고 있다. 우리의 새마을 운동을 북한과 연계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8년 10월부터. 98년 8월에 취임한 강회장이 두 달 동안의 고심 끝에 시군구 새마을 운동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새마을 운동 경험을 살려 북한돕기에 나서자”고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K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통일정책위원장을 맡는 등 통일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던 강회장은 ‘관변 단체’ 소리를 듣던 새마을 운동의 새로운 출구를 북한돕기운동에서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강회장의 제안은 당장 내부 반발에 부닥쳤다. “뭐하러 그런 일을 하느냐” “그런 선례가 없다”는 등의 반발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강회장은 “새마을 운동의 기본은 지역사회 발전운동이지만 단순한 지역운동 이상의 역할을 갖고 있다. 통일운동이 그것이다”라며 이들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 결과 새마을 운동 지도자 한 사람이 북한 돕기를 위해 3000원씩 낸다는 결의를 끌어냈고, 두 달 만에 6억5000여 만원을 모았다. 중앙회는 이 기금을 바탕으로 강회장이 임시 대표로 있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를 창구로 북한 돕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2월 강회장이 처음으로 방북한 데 이어 올 3월에는 경기도지부 우태하 사무처장이, 4월에는 정갑진 중앙회 사업국장 등이 잇따라 방북해 북측 관계자들을 만났다. 강회장 역시 6, 7월 안에 다시 한번 방북할 예정.
중앙회는 지금까지 젖염소 21마리와 옥수수 등 3억7000여 만원 상당의 물품을 북에 지원했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사업은 1억5000여 만원을 들인 ‘북한농업지원사업’. 평양시 상원군과 황해도 사리원시 등 두곳에 대한 농업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는 1개군당 50ha씩 감자종자, 비료, 농업용 비닐, 농약 등을 중심으로 북측과 협의해 물자를 전달하는 사업. 강회장은 “공동 경영을 하기로 합의했는데 막판에 북측이 자료만 달라고 하더라”며 못내 아쉬움을 토로했다.
‘새마을 운동 수출작전’은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간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됨에 따라 더욱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대통령은 지난 4월22일 서울 화곡동 88체육관에서 있었던 새마을 운동 창립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북한 농촌의 재건을 위해 새마을 운동 지도자들이 노력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회장은 인사말에서 “북측과 관계가 개선되면 북한 농촌개혁을 우리 몫으로 보고 나름의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중앙회는 ‘새마을 운동의 북한 수출’과 관련한 장기 프로젝트를 마련해 놓고 있다. 오는 7월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중앙회 신청사 1층 세미나실에서 열리는 ‘북한농촌 재건운동과 새마을 운동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어렴풋한 윤곽이 나올 계획이다. 중앙회 송중근홍보부장은 “새마을 운동의 농촌개발 경험은 피폐된 북한 농촌을 재건하는데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운동의 성패는 아직 “낙관하기에 이르다”는 전망도 많다. 북측의 태도가 아직 명확치 않기 때문이다. 김일성대학 교수 출신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조명철 연구위원은 “우리가 새마을 운동을 시작한 70년대와 북한의 현 경제상황이 비슷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새마을 운동의 추진 방식 등이 북한 정책에 구체적으로 반영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먼저 북한에서 발행되는 월간잡지 ‘조선’에 올 초 보도된 내용의 한 대목을 보자. “훌륭한 살림집들과 기름진 벌, 소형 발전소 …. 30동의 새마을 전경을 멀리서 바라보면 동화세계의 꽃동산에 들어선 것 같다. 산간마을의 특성에 맞게 나무로 벽과 지붕을 쌓고 울타리도 둘러쳤다. 토끼, 염소 등을 동시에 기를 수 있는 종합 집짐승 우리도 지었다.”
‘조선’은 ‘낭림의 새마을’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힘으로 훌륭한 새마을을 만들자는 것이 (주민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라며 이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북한에서는 처음으로 해발 1100m의 고지대에 위치한 자강도 낭림군 읍협동농장에 있는 월상마을에 ‘새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이 마을은 자체적으로 세운 수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로 조명, 난방 등을 해결하고 있다. 벽과 지붕은 통나무로 돼있고 부엌에는 창고가, 지하에는 감자 저장실이 딸려 있다. 마을 중앙에는 농업과학기술지식 선전실도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해 9월14일 북한 농촌개혁의 상징인 이 마을을 방문해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김위원장은 이 마을에 새로운 감자 종자와 컬러텔레비전, 자동차 등을 보내줄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새마을’이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을 북한이 남한의 새마을 운동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이고 있다. 새마을 운동 중앙협의회(약칭 중앙회) 강문규회장은 “북한이 우리 새마을 운동에서 어떤 암시를 받았기에 그런 이름을 썼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새마을 운동 관계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농업 위기를 맞기 시작한 80년대 후반부터 남한의 새마을 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 또한 90년대 초반에는 북한의 천리마 운동과 비교 검토를 끝내고 ‘북한식 새마을 운동’을 나름대로 정립하는 단계에 들어갔다고 한다.
북한이 새마을 운동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처음 드러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북한 현대그룹 정주영 전명예회장을 만났을 때. 김위원장은 1999년 10월1일 북한 흥남에 있는 서호초대소에서 정 전명예회장, 정몽헌 전현대그룹 회장 등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남쪽이 이만큼 살게 된 것은 박정희 전대통령이 추진했던 새마을 운동 덕분”이라며 새마을 운동을 상당히 높이 평가했다.
중앙회 강회장도 지난해 2월 방북했을 때 북한이 뜻밖에 새마을 운동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놀랐다고 한다. 강회장이 아태평화위원회 관계자에게 명함을 건네니 “새마을 운동 중앙회에서 오셨냐”면서 “그동안 조용하더니 이제 일을 시작하느냐”며 관심을 표명했다는 것. 강회장이 “새마을 운동을 아느냐”고 묻자 이 관계자는 “잘 알고 있다”며 북한의 천리마 운동과 새마을 운동을 비교해 설명하기도 했다고 한다.
북한의 이런 변화에 맞춰 중앙회에서도 적극적으로 ‘새마을 운동 북한 수출작전’에 나서고 있다. 우리의 새마을 운동을 북한과 연계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8년 10월부터. 98년 8월에 취임한 강회장이 두 달 동안의 고심 끝에 시군구 새마을 운동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새마을 운동 경험을 살려 북한돕기에 나서자”고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K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통일정책위원장을 맡는 등 통일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던 강회장은 ‘관변 단체’ 소리를 듣던 새마을 운동의 새로운 출구를 북한돕기운동에서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강회장의 제안은 당장 내부 반발에 부닥쳤다. “뭐하러 그런 일을 하느냐” “그런 선례가 없다”는 등의 반발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강회장은 “새마을 운동의 기본은 지역사회 발전운동이지만 단순한 지역운동 이상의 역할을 갖고 있다. 통일운동이 그것이다”라며 이들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 결과 새마을 운동 지도자 한 사람이 북한 돕기를 위해 3000원씩 낸다는 결의를 끌어냈고, 두 달 만에 6억5000여 만원을 모았다. 중앙회는 이 기금을 바탕으로 강회장이 임시 대표로 있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를 창구로 북한 돕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2월 강회장이 처음으로 방북한 데 이어 올 3월에는 경기도지부 우태하 사무처장이, 4월에는 정갑진 중앙회 사업국장 등이 잇따라 방북해 북측 관계자들을 만났다. 강회장 역시 6, 7월 안에 다시 한번 방북할 예정.
중앙회는 지금까지 젖염소 21마리와 옥수수 등 3억7000여 만원 상당의 물품을 북에 지원했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사업은 1억5000여 만원을 들인 ‘북한농업지원사업’. 평양시 상원군과 황해도 사리원시 등 두곳에 대한 농업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는 1개군당 50ha씩 감자종자, 비료, 농업용 비닐, 농약 등을 중심으로 북측과 협의해 물자를 전달하는 사업. 강회장은 “공동 경영을 하기로 합의했는데 막판에 북측이 자료만 달라고 하더라”며 못내 아쉬움을 토로했다.
‘새마을 운동 수출작전’은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간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됨에 따라 더욱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대통령은 지난 4월22일 서울 화곡동 88체육관에서 있었던 새마을 운동 창립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북한 농촌의 재건을 위해 새마을 운동 지도자들이 노력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회장은 인사말에서 “북측과 관계가 개선되면 북한 농촌개혁을 우리 몫으로 보고 나름의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중앙회는 ‘새마을 운동의 북한 수출’과 관련한 장기 프로젝트를 마련해 놓고 있다. 오는 7월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중앙회 신청사 1층 세미나실에서 열리는 ‘북한농촌 재건운동과 새마을 운동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어렴풋한 윤곽이 나올 계획이다. 중앙회 송중근홍보부장은 “새마을 운동의 농촌개발 경험은 피폐된 북한 농촌을 재건하는데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운동의 성패는 아직 “낙관하기에 이르다”는 전망도 많다. 북측의 태도가 아직 명확치 않기 때문이다. 김일성대학 교수 출신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조명철 연구위원은 “우리가 새마을 운동을 시작한 70년대와 북한의 현 경제상황이 비슷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새마을 운동의 추진 방식 등이 북한 정책에 구체적으로 반영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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