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는 99년 7월1일 난생 처음 제주도를 방문했다. 그는 끝없이 펼쳐진 녹색평원과 그 위에 봉긋봉긋 솟은 368개의 ‘오름’을 보고 “이 섬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원시대륙”이라고 격찬했다.
그러나 이내 그의 눈엔 이상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름의 꼭대기나 허리춤을 자르고 세워진 거대한 송전탑들이었다. 홍세화씨는 동행한 제주범도민회 문용포위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여성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 놓은 것 같군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4월말 기자가 제주도를 찾았을 때는 사정이 더 나빠져 있었다. 경관이 빼어나기로 유명한 한림과 성산포 ‘오름군락’은 ‘송전탑군락’으로 변해 있었다. “300m 간격으로 높이 50m짜리 송전탑 81기가 20.8km에 걸쳐 웅장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자연’에 대한 ‘융단폭격’이죠.”(제주범도민회 고유기사무차장) 문위원장은 이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당국의 ‘과욕’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산관광단지개발’과 연계된다는 이유로 전력 공급을 늘리게 됐는데 막상 관광단지개발은 보류되고 송전탑만 남았다는 것이다.
국내 ‘송전선로’의 총 연장은 1만3727km(3월말 한전조사). 거대한 쇠로 된 탑이 서울-부산 거리보다 세배나 길게 국토 구석구석에 늘어서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마저 충분치 않다”고 본다. 산업자원부의 ‘5차 장기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2015년의 송전선로 규모(3만5165C-km)는 98년 말까지 건설된 송전선로 규모(2만2366C-km)의 157%가 된다. 국토 어디에도 송전탑과 송전선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는 시대가 예고된다. ‘속초’에서 ‘제주’까지, ‘백두대간’에서 ‘주택가’까지 거미줄 같은 송전탑에 둘러싸이는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과연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미래인가”라고 반문한다.
강원 태백시 원동에선 요즘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국내 최초로 76만5000kV(기존 최고는 34만5000kV)의 초고압 송전선로가 이곳에 건설되고 있다. 울진 원자력발전소에서 수도권까지 초고압으로 전기를 보내겠다는 한국전력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따른 것이다. 마을 어귀에 세워진 송전탑의 높이 역시 국내 최대(90m)다. 30가구 주민들의 ‘투쟁’은 눈물겹다. 그들은 송전탑과 연결되는 변전소 부지를 녹색연합에 헐값에 팔았다. 한전이 부지를 확보하지 못하도록 법을 잘 아는 환경단체가 대신 싸워달라는 뜻이었다. 주민 이선경씨는 “우리는 ‘모르모트’가 되기 싫다”고 말했다.
김대건신부의 유해가 안치된 경기 안성시 미리내 성지는 한국 가톨릭의 성역이다. 매년 100만여 명의 국내외 가톨릭 신자들이 찾는 이곳에도 송전탑이 들어선다. 대책위원회 김사욱씨는 “종교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한다. 천주교수원교구가 반대서명운동에 들어가는 등 ‘점잖은 신부님’들도 더 이상 가만 있지 않을 태세다.
“맞벌이 10년만에 어렵게 집을 마련했는데 50m 앞에서 철탑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기가 막힌다.”(경기 용인시 수지읍 정은옥씨) “전원에서 살고 싶어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현장에 가보니 100m 앞에 송전탑이 시공되고 있더라. 이곳으로 온 메리트가 없어졌다.”(용인시 신봉리 이병노씨) 경기 과천, 전남 광양, 강원 횡성 등 전국에서 송전탑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99년 국감 때는 1000건이 넘는 송전탑건설 관련 민원이 일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왜 사람들은 송전탑이라면 ‘질색’을 하는가. 가장 중요하고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홍세화씨나 이병노씨가 느꼈던 것처럼 송전탑이 자연을 여지없이 앗아가 버린다는 사실 때문이다. 환경운동연합의 한성숙간사는 “송전탑은 한마디로 자연생태계와 ‘조망권’을 ‘절단’ 내는 ‘괴물’”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송전탑 건설과 관련, “두가지 점에서 정부와 한전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첫번째는 현지 주민의 의사수렴이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실질적 조사를 생략한 채 한전 마음대로 송전탑을 세우도록 보장한 환경 악법 중의 악법인 ‘전원개발에 관한 특례법’을 왜 폐지하지 않느냐는 것이다(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 이경재교수).
한전 관계자는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따라가기 위해선 송전탑 건립 이외엔 대안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녹색연합 최성국국장은 “당국의 설비 증설 위주의 에너지정책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또 “한국은 전기 생산지와 소비지가 멀리 떨어져 있다. 수도권에서 사용되는 전기의 절대 다수는 동해안과 서해안의 원자력-화력발전소에서 끌어온 것이다. 그러니 송전탑도 많아진다. ‘혁신적인 에너지절약운동’은 벌이지 않는 대신 발전소와 송전탑만 두배로 더 건설하는 의도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전기를 ‘철철’ 넘치게 쓰는 대가로 우리가 지불하는 것은 단지 ‘전기요금’만이 아님을 녹색연합은 이렇게 설명한다.
“울진원전-서울간 송전선로 중 일부 구간(151km)을 조사했다. 거기엔 308기의 송전탑이 있었다. 송전탑 1기 당 625㎡의 녹지를 잡아먹었다. 진입로까지 합쳐 모두 1465ha의 산림이 잘려 나갔다. 이렇게 세워진 송전탑은 수십 km 밖에서도 선명히 보였다.”
그러나 이내 그의 눈엔 이상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름의 꼭대기나 허리춤을 자르고 세워진 거대한 송전탑들이었다. 홍세화씨는 동행한 제주범도민회 문용포위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여성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 놓은 것 같군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4월말 기자가 제주도를 찾았을 때는 사정이 더 나빠져 있었다. 경관이 빼어나기로 유명한 한림과 성산포 ‘오름군락’은 ‘송전탑군락’으로 변해 있었다. “300m 간격으로 높이 50m짜리 송전탑 81기가 20.8km에 걸쳐 웅장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자연’에 대한 ‘융단폭격’이죠.”(제주범도민회 고유기사무차장) 문위원장은 이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당국의 ‘과욕’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산관광단지개발’과 연계된다는 이유로 전력 공급을 늘리게 됐는데 막상 관광단지개발은 보류되고 송전탑만 남았다는 것이다.
국내 ‘송전선로’의 총 연장은 1만3727km(3월말 한전조사). 거대한 쇠로 된 탑이 서울-부산 거리보다 세배나 길게 국토 구석구석에 늘어서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마저 충분치 않다”고 본다. 산업자원부의 ‘5차 장기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2015년의 송전선로 규모(3만5165C-km)는 98년 말까지 건설된 송전선로 규모(2만2366C-km)의 157%가 된다. 국토 어디에도 송전탑과 송전선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는 시대가 예고된다. ‘속초’에서 ‘제주’까지, ‘백두대간’에서 ‘주택가’까지 거미줄 같은 송전탑에 둘러싸이는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과연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미래인가”라고 반문한다.
강원 태백시 원동에선 요즘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국내 최초로 76만5000kV(기존 최고는 34만5000kV)의 초고압 송전선로가 이곳에 건설되고 있다. 울진 원자력발전소에서 수도권까지 초고압으로 전기를 보내겠다는 한국전력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따른 것이다. 마을 어귀에 세워진 송전탑의 높이 역시 국내 최대(90m)다. 30가구 주민들의 ‘투쟁’은 눈물겹다. 그들은 송전탑과 연결되는 변전소 부지를 녹색연합에 헐값에 팔았다. 한전이 부지를 확보하지 못하도록 법을 잘 아는 환경단체가 대신 싸워달라는 뜻이었다. 주민 이선경씨는 “우리는 ‘모르모트’가 되기 싫다”고 말했다.
김대건신부의 유해가 안치된 경기 안성시 미리내 성지는 한국 가톨릭의 성역이다. 매년 100만여 명의 국내외 가톨릭 신자들이 찾는 이곳에도 송전탑이 들어선다. 대책위원회 김사욱씨는 “종교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한다. 천주교수원교구가 반대서명운동에 들어가는 등 ‘점잖은 신부님’들도 더 이상 가만 있지 않을 태세다.
“맞벌이 10년만에 어렵게 집을 마련했는데 50m 앞에서 철탑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기가 막힌다.”(경기 용인시 수지읍 정은옥씨) “전원에서 살고 싶어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현장에 가보니 100m 앞에 송전탑이 시공되고 있더라. 이곳으로 온 메리트가 없어졌다.”(용인시 신봉리 이병노씨) 경기 과천, 전남 광양, 강원 횡성 등 전국에서 송전탑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99년 국감 때는 1000건이 넘는 송전탑건설 관련 민원이 일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왜 사람들은 송전탑이라면 ‘질색’을 하는가. 가장 중요하고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홍세화씨나 이병노씨가 느꼈던 것처럼 송전탑이 자연을 여지없이 앗아가 버린다는 사실 때문이다. 환경운동연합의 한성숙간사는 “송전탑은 한마디로 자연생태계와 ‘조망권’을 ‘절단’ 내는 ‘괴물’”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송전탑 건설과 관련, “두가지 점에서 정부와 한전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첫번째는 현지 주민의 의사수렴이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실질적 조사를 생략한 채 한전 마음대로 송전탑을 세우도록 보장한 환경 악법 중의 악법인 ‘전원개발에 관한 특례법’을 왜 폐지하지 않느냐는 것이다(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 이경재교수).
한전 관계자는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따라가기 위해선 송전탑 건립 이외엔 대안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녹색연합 최성국국장은 “당국의 설비 증설 위주의 에너지정책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또 “한국은 전기 생산지와 소비지가 멀리 떨어져 있다. 수도권에서 사용되는 전기의 절대 다수는 동해안과 서해안의 원자력-화력발전소에서 끌어온 것이다. 그러니 송전탑도 많아진다. ‘혁신적인 에너지절약운동’은 벌이지 않는 대신 발전소와 송전탑만 두배로 더 건설하는 의도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전기를 ‘철철’ 넘치게 쓰는 대가로 우리가 지불하는 것은 단지 ‘전기요금’만이 아님을 녹색연합은 이렇게 설명한다.
“울진원전-서울간 송전선로 중 일부 구간(151km)을 조사했다. 거기엔 308기의 송전탑이 있었다. 송전탑 1기 당 625㎡의 녹지를 잡아먹었다. 진입로까지 합쳐 모두 1465ha의 산림이 잘려 나갔다. 이렇게 세워진 송전탑은 수십 km 밖에서도 선명히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