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된 프랑스의 새영호 ‘걸 온더 브릿지‘는 칼 던지기 곡에사와 배우 겸 가수의 사랑 이야기다. 굴곡 깊은 사랑 여정이 유럽 곳곳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들은 파리 센강 다리에서 만나 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 해협을 잇는 다리에서 재회한다. 동서양을 잇는 장소에서 재회한다는 배경 설정이 이채롭다.
흑해와 에게해를 이어주는 보스포루스 해협은 절묘하다. 그 해협 입구의 이스탄불 항구 앞바다에는 몇 백 척의 대형 유람선들이며 상선들이 마치 목장의 소떼처럼 정박하고 있다. 세계 3대 미항(美港)에 들지는 못했지만 이웃나라 이탈리아의 나폴리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
이스탄불이란 ‘이슬람이 많은 도시‘란 뜻이다. 그래서 회교도시의 이미지부터 연상할지 모르지만 회교만 고집하는 배타적인 도시가 아니다. 다색(多色)이라고나 할까. 비잔티움으로 불리던 시절부터의 비잔틴 문화나 아시아적인 정서가 곳곳에서 충돌하며 기묘한 화합을 일구어 낸다. 이 도시의 서쪽 바다로 해가 지는 동시에 동쪽 해협 저쪽에서 해가 떠오르므로 이곳 사람들은 해가 하나가 아니라고 믿는다.
오스만트루크의 술탄 메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의 이전 이름)을 함락했을 때 그는 갓 스무 살이었다. 이 도시를 점령하자마자 그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성 소피아 성당(주간동아 229호 이스탄불 1편 참조)이었다.
그는 십자가와 예수의 초상을 치우고 알라의 상징들을 대신 채워놓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이스탄불에는 성 소피아 사원 시대가 끝나고 술탄 아호메트 사원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 사원은 기둥과 돔 벽에 명암이 있는 아흔아홉 가지의 푸른 타일만을 사용했다 해서 ‘블루 모스크‘라는 별칭으로더 유명하다.
이 사원은 1609년부터 건립되어 8년간의 공사끝에 완서오디었다. 여섯 개의 웅장한 첨탑을 가지고 있는 이 모스크는 역시 성소피아 사원과 더불어 세계적 건축물의 하나로 빼놓을 수 없다. 앞 광장에는 이집트의 카르나크 신전고 그리스 델피의 아폴론 신전에서 옮겨온 대형 석주가 여행자들의 눈길을 끈다. 침략의 징표 들이다.
그러나 모스크 사원만 침략의 역사위에 우뚝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초기 기독 교회는 성 소피아 성당을 지으면서 터키의 에페수스에 있던 아르테미스 신전의 기둥 127개 중 126개를 옮겨다 쓰는 ‘무모함‘의 약탈을 자행했다. 에페수스는 터키의 고대 도시로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는 곳이자,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고향이다. 기둥 하나는 아르테미스의 패배와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하는 기념물로 신전 자리에 남겨 놓았는데, 이마저도 나중에 이스탄불로 실려와 시내 지하의 저수고 교회에서 기둥 받침이 되어 있다.
지난 1999년 8월 터키에서는 15만여채의 주택과 건물들의 붕괴되는 대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537년에 지어진 성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는 강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았다. 성소피아 성당은 터키의 잦은 지진에도 불구하고 무려 1400여년간 ㅕㄴ함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98%가 지진대에 속해 있는 터키의 특수한 지질을 감안, 옛날부터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는 특수한 건축 공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성소피아 성당만해도 완공하기 전에 지진으로 세 차례나 무너졌기 때문에 독특한 공법으로 더욱 견고하게 지었다 한다.
이 건물에 사용된 공법은 이른바 ‘건스2ㅂ법‘이다. 벽돌 사이를 공기가 통할 수 있도록 떼어놓음으로써 지진에 건물이 흔들려도 붕괴되지 않도록 만들었다. 토카피 왕궁이나 블루 모스크도 역시 이런 내진 설계에 따라 건설됐다. 역대 술탄들의 사생활 공간이었던 토카피 왕궁에는 방만 300개가 있다. 이 방마다 술탄을 기다리는 후궁들이 들어 있었다. 지금은 텅비어 있지만 토카피 궁전의 방들도 아직 생생한 모습 그대로다. 일반 건물들도 오래된 것일수록 견고해, 지난해 대지진에서도 50년 이상 된 옛 건물은 거의 무너지지 않았다 하니 첨단만이 능사는 아니다. 역사 아니면 결코 알 수 없는 지혜라고나 할까.
이스탄불 사람들은 알라신을 위해 율볍에 따라 블루 모스크에 모여 기도를 바친다. 그러나 사원 안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다. 벽면에는 십자가나 성 마리아상, 예수 초상화들이 즐비한 기독교 사원같지 않게 아무런 우상도 없다. 오직 텅빈, 그러나 기하학적 무늬가 끝없이 퍼져나가는 문양으로 가득찬 벽만이 있을 따름이다. 천장도 마찬가지다. 언뜻 단순하면서도 화려하기 짝이 없는 도형들만이 가득하다.
이 사원은 오직 마호메트가 탄생한 메카를 향해 기도를 바치는 장소일 따름이다. 사람들은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애절한 목소리를 따라 알라신을 부르고 있다. 술탄 아호메트 사원은 천년의 시차를 두고 성 소피아 사원과 마주보고 서있다. 그 기묘한 공존이 바로 이스탄불의 모습이다.
석양이 에게해의 수평선에 걸리는 시간, 이스탄불 전역에는 ‘아잔‘이라고 하는 은은한 코란 소리가 수만개의 사원에서 울려퍼진다. 블루 모스크의 아름다운 첨탑 6개에서 울려퍼지는 코란 낭송을 듣고 있노라면 이스탄불의 주인이 이슬람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하루 일과를 무사히 끝마쳤음을 감사하는 기도 소리이리라.
흑해와 에게해를 이어주는 보스포루스 해협은 절묘하다. 그 해협 입구의 이스탄불 항구 앞바다에는 몇 백 척의 대형 유람선들이며 상선들이 마치 목장의 소떼처럼 정박하고 있다. 세계 3대 미항(美港)에 들지는 못했지만 이웃나라 이탈리아의 나폴리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
이스탄불이란 ‘이슬람이 많은 도시‘란 뜻이다. 그래서 회교도시의 이미지부터 연상할지 모르지만 회교만 고집하는 배타적인 도시가 아니다. 다색(多色)이라고나 할까. 비잔티움으로 불리던 시절부터의 비잔틴 문화나 아시아적인 정서가 곳곳에서 충돌하며 기묘한 화합을 일구어 낸다. 이 도시의 서쪽 바다로 해가 지는 동시에 동쪽 해협 저쪽에서 해가 떠오르므로 이곳 사람들은 해가 하나가 아니라고 믿는다.
오스만트루크의 술탄 메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의 이전 이름)을 함락했을 때 그는 갓 스무 살이었다. 이 도시를 점령하자마자 그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성 소피아 성당(주간동아 229호 이스탄불 1편 참조)이었다.
그는 십자가와 예수의 초상을 치우고 알라의 상징들을 대신 채워놓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이스탄불에는 성 소피아 사원 시대가 끝나고 술탄 아호메트 사원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 사원은 기둥과 돔 벽에 명암이 있는 아흔아홉 가지의 푸른 타일만을 사용했다 해서 ‘블루 모스크‘라는 별칭으로더 유명하다.
이 사원은 1609년부터 건립되어 8년간의 공사끝에 완서오디었다. 여섯 개의 웅장한 첨탑을 가지고 있는 이 모스크는 역시 성소피아 사원과 더불어 세계적 건축물의 하나로 빼놓을 수 없다. 앞 광장에는 이집트의 카르나크 신전고 그리스 델피의 아폴론 신전에서 옮겨온 대형 석주가 여행자들의 눈길을 끈다. 침략의 징표 들이다.
그러나 모스크 사원만 침략의 역사위에 우뚝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초기 기독 교회는 성 소피아 성당을 지으면서 터키의 에페수스에 있던 아르테미스 신전의 기둥 127개 중 126개를 옮겨다 쓰는 ‘무모함‘의 약탈을 자행했다. 에페수스는 터키의 고대 도시로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는 곳이자,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고향이다. 기둥 하나는 아르테미스의 패배와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하는 기념물로 신전 자리에 남겨 놓았는데, 이마저도 나중에 이스탄불로 실려와 시내 지하의 저수고 교회에서 기둥 받침이 되어 있다.
지난 1999년 8월 터키에서는 15만여채의 주택과 건물들의 붕괴되는 대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537년에 지어진 성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는 강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았다. 성소피아 성당은 터키의 잦은 지진에도 불구하고 무려 1400여년간 ㅕㄴ함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98%가 지진대에 속해 있는 터키의 특수한 지질을 감안, 옛날부터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는 특수한 건축 공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성소피아 성당만해도 완공하기 전에 지진으로 세 차례나 무너졌기 때문에 독특한 공법으로 더욱 견고하게 지었다 한다.
이 건물에 사용된 공법은 이른바 ‘건스2ㅂ법‘이다. 벽돌 사이를 공기가 통할 수 있도록 떼어놓음으로써 지진에 건물이 흔들려도 붕괴되지 않도록 만들었다. 토카피 왕궁이나 블루 모스크도 역시 이런 내진 설계에 따라 건설됐다. 역대 술탄들의 사생활 공간이었던 토카피 왕궁에는 방만 300개가 있다. 이 방마다 술탄을 기다리는 후궁들이 들어 있었다. 지금은 텅비어 있지만 토카피 궁전의 방들도 아직 생생한 모습 그대로다. 일반 건물들도 오래된 것일수록 견고해, 지난해 대지진에서도 50년 이상 된 옛 건물은 거의 무너지지 않았다 하니 첨단만이 능사는 아니다. 역사 아니면 결코 알 수 없는 지혜라고나 할까.
이스탄불 사람들은 알라신을 위해 율볍에 따라 블루 모스크에 모여 기도를 바친다. 그러나 사원 안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다. 벽면에는 십자가나 성 마리아상, 예수 초상화들이 즐비한 기독교 사원같지 않게 아무런 우상도 없다. 오직 텅빈, 그러나 기하학적 무늬가 끝없이 퍼져나가는 문양으로 가득찬 벽만이 있을 따름이다. 천장도 마찬가지다. 언뜻 단순하면서도 화려하기 짝이 없는 도형들만이 가득하다.
이 사원은 오직 마호메트가 탄생한 메카를 향해 기도를 바치는 장소일 따름이다. 사람들은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애절한 목소리를 따라 알라신을 부르고 있다. 술탄 아호메트 사원은 천년의 시차를 두고 성 소피아 사원과 마주보고 서있다. 그 기묘한 공존이 바로 이스탄불의 모습이다.
석양이 에게해의 수평선에 걸리는 시간, 이스탄불 전역에는 ‘아잔‘이라고 하는 은은한 코란 소리가 수만개의 사원에서 울려퍼진다. 블루 모스크의 아름다운 첨탑 6개에서 울려퍼지는 코란 낭송을 듣고 있노라면 이스탄불의 주인이 이슬람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하루 일과를 무사히 끝마쳤음을 감사하는 기도 소리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