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회장제 유지, 구조조정위원회 한시적 존치.’ 형제간 경영권 다툼을 계기로 지배구조 개선 등 재벌 체제의 강도 높은 개혁을 촉구하는 정부 ‘권고’와 여론에 직면했던 현대가 3월31일 내놓은 해법이다. 현대그룹 ‘왕자의 난’을 계기로 강도 높은 재벌 개혁안이 나오는 게 아닌가 잔뜩 긴장하던 다른 그룹들도 정부가 현대의 해법을 평가하자 안심하는 분위기다. 현재로선 그룹 회장제와 구조조정본부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재벌들은 한때 이헌재 재정경제부장관과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이 ‘구조조정본부 해체’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이 3월29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업의 구조조정본부 등 기업내 총괄 기능 조직을 해체하는 건 더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우려의 뜻을 밝힌 것은 이장관과 이위원장의 발언을 ‘구조조정본부 해체’로 해석했기 때문.
그러나 이장관과 이위원장 발언의 정확한 내용은 그게 아니었다. “계열사들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운영해온 구조조정본부는 인정하지만 현대그룹 경영권 다툼에서 보듯 그룹 인사문제에 간여하는 등 과거와 같은 그룹 회장실이나 종합기획실 역할을 하는 조직이라면 해체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재벌들로서는 현재 운영하는 구조조정본부가 본래 목적에 충실하다면 굳이 신경쓸 필요가 없는 발언이었다. 그럼에도 정부의 이런 입장에 대해 전경련까지 나서 우려를 표명하는 등 재계가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은 무엇 때문일까. 혹 이름만 구조조정본부로 바꾸고 실제로는 과거 그룹 회장실이나 종합기획실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음이 드러난 데 대한 과민 반응은 아닐까. 불행히도 재벌그룹의 구조조정본부를 들여다보면 이런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다. 각 그룹 구조조정본부는 아직도 그룹 회장의 전위대로서 그룹에 대한 회장의 지배력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구조조정본부의 ‘태생적 한계’ 때문으로 분석된다. 잘 알려진 대로 구조조정본부의 전신은 그룹 회장실 또는 종합기획실.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정부가 재벌 개혁 차원에서 재벌 그룹의 선단식 경영을 뒷받침해온 회장 비서실(삼성), 종합기획실(현대), 그룹 회장실(LG), 경영기획실(SK) 등 그룹 조직의 폐지를 요구하자 재계가 구조조정을 위해 한시적으로 존속시키겠다고 설득해 이름을 바꿔 단 게 바로 구조조정본부였다.
이에 따라 권한이 축소되고 기능과 역할이 일부 변하긴 했다. 인원도 대폭 줄었다. 현재 현대 삼성 LG SK 등 4대 그룹의 구조조정본부에는 사장을 본부장으로 하고 그 밑에 40여명 내외의 임직원이 있다.
계열사에 대한 영향력도 줄어들었다. 각 그룹의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들은 과거와 달리 계열사에 자료를 요청해도 협조를 잘해주지 않을 정도라고 말한다. 이들의 말이 곧 그룹 총수의 뜻으로 해석되던 과거 그룹 회장실이나 종합기획실 시절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실제는 과거와 거의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음이 이번 현대그룹 경영권 다툼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기본적으로 정몽구-몽헌 회장 형제간 경영권 다툼을 촉발시킨 현대증권 이익치회장 인사는 현대증권 주총과 이사회가 결정할 사안이었다. 그럼에도 구조조정위원회가 현대증권 인사에 간여하는 듯한 인상을 준 것은 과거 종합기획실 시절처럼 총수의 ‘뜻’을 받들어 계열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한다는 의혹을 살 만했다.
작년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 당시에도 현대 구조조정위원회의 ‘탈선’ 의혹이 제기됐다. 구조조정은 하지 않고 과거 종합기획실 시절과 마찬가지로 ‘오너 재산관리’나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던 것. 물론 형식적으로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최고 책임자는 이익치 현대증권회장이었다.
그러나 당시 현대그룹 안팎에서는 박세용 당시 구조조정위원장(현 인천제철 회장)이 어떤 식으로든 간여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심지어 이익치회장이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만 뒤집어씌우려고 하는 박세용원장과 심하게 다퉜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이를 계기로 그렇지 않아도 라이벌 관계였던 두 사람이 ‘적대적’ 관계로 발전했다는 것.
구조조정본부가 오너 재산관리를 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는 것은 현대그룹뿐만 아니다. 삼성그룹이나 LG그룹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그룹의 경우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집요하게 문제삼고 있는 이건희회장 아들 재용씨에 대한 변칙 증여를 통한 경영권 승계 역시 구조조정본부가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의 경우도 최근 구조조정본부의 ‘활약’에 힘입어 구본무회장과 허창수 LG정유 부회장 등 오너 일가가 막대한 자본이득을 올리기도 했다. 코스닥 등록을 앞둔 LG홈쇼핑 주식을 작년 4월 LG정보통신과 LG캐피탈로부터 매입해 올 1월 LG홈쇼핑의 코스닥 등록과 함께 엄청난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게 된 것.
물론 현대 삼성 LG SK 등 4대 그룹의 구조조정본부가 구조조정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등 본래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가 정부와 재계의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작년 말 정부의 가이드라인인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떨어뜨릴 수 있었던 것도 구조조정위원회의 노력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조조정위원회 임원들은 이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작년 말 인사에서 모두 한 직급씩 승진하기도 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도 “구조조정본부의 강력한 의지가 없었다면 구조조정이 안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 계열사 사장의 경우 단기적인 경영 목표 달성에 급급할 뿐 아니라 자신의 이해관계도 걸려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만 맡겨 놓았을 경우 구조조정이 제대로 될 수 없었다는 것. 이 관계자는 “가령 계열사 사장에게 맡겨놓았을 경우 그 회사 매각이 제대로 이뤄지겠느냐”고 반문했다.
SK그룹 관계자도 SK그룹의 경우 현대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SK그룹 구조조정본부가, 대주주인 정주영명예회장의 독단 경영을 뒷받침하는 기구로 비치고 있는 현대 구조조정위원회와 똑같은 기능과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해라는 설명이다. 과거 경영기획실 시절에도 계열사에 대한 지원과 협조 역할에 충실했고, 지금도 구조조정 업무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것
. LG그룹도 구조조정본부가 원래 목적에 충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구본무회장 스스로 대표이사로 등재돼 있는 화학과 전자 이사회에는 해외출장 등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참석하는 등 이사회 중심 경영이 정착돼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본부는 외자유치나 재무개선 등 구조조정 업무만 하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본부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은 재벌들이 그룹 회장이라는 상법에도 없는 제도를 현실적으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현대그룹 경영권 다툼은 재벌 총수의 경영 전횡 앞에서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포함한 그동안의 재벌개혁 조치들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를 실증해주었다. 이사회나 사외이사가 아무런 견제장치가 되지 못했고, 구조조정을 위해 폐지했다던 종합기획실이 되살아난 듯한 인상을 주었던 것.
결국 정부의 재벌 개혁에도 불구하고 재벌 ‘체제’가 실제로 존재하는 한 구조조정본부의 운명은 바뀌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재벌 회장이 존재하는 한 과거 그룹 회장실이나 종합기획실은 아무리 정부가 폐지하라고 해도 오히려 음성적인 형태로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총수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이 더 시급하다는 얘기다.
재벌들은 한때 이헌재 재정경제부장관과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이 ‘구조조정본부 해체’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이 3월29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업의 구조조정본부 등 기업내 총괄 기능 조직을 해체하는 건 더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우려의 뜻을 밝힌 것은 이장관과 이위원장의 발언을 ‘구조조정본부 해체’로 해석했기 때문.
그러나 이장관과 이위원장 발언의 정확한 내용은 그게 아니었다. “계열사들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운영해온 구조조정본부는 인정하지만 현대그룹 경영권 다툼에서 보듯 그룹 인사문제에 간여하는 등 과거와 같은 그룹 회장실이나 종합기획실 역할을 하는 조직이라면 해체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재벌들로서는 현재 운영하는 구조조정본부가 본래 목적에 충실하다면 굳이 신경쓸 필요가 없는 발언이었다. 그럼에도 정부의 이런 입장에 대해 전경련까지 나서 우려를 표명하는 등 재계가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은 무엇 때문일까. 혹 이름만 구조조정본부로 바꾸고 실제로는 과거 그룹 회장실이나 종합기획실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음이 드러난 데 대한 과민 반응은 아닐까. 불행히도 재벌그룹의 구조조정본부를 들여다보면 이런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다. 각 그룹 구조조정본부는 아직도 그룹 회장의 전위대로서 그룹에 대한 회장의 지배력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구조조정본부의 ‘태생적 한계’ 때문으로 분석된다. 잘 알려진 대로 구조조정본부의 전신은 그룹 회장실 또는 종합기획실.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정부가 재벌 개혁 차원에서 재벌 그룹의 선단식 경영을 뒷받침해온 회장 비서실(삼성), 종합기획실(현대), 그룹 회장실(LG), 경영기획실(SK) 등 그룹 조직의 폐지를 요구하자 재계가 구조조정을 위해 한시적으로 존속시키겠다고 설득해 이름을 바꿔 단 게 바로 구조조정본부였다.
이에 따라 권한이 축소되고 기능과 역할이 일부 변하긴 했다. 인원도 대폭 줄었다. 현재 현대 삼성 LG SK 등 4대 그룹의 구조조정본부에는 사장을 본부장으로 하고 그 밑에 40여명 내외의 임직원이 있다.
계열사에 대한 영향력도 줄어들었다. 각 그룹의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들은 과거와 달리 계열사에 자료를 요청해도 협조를 잘해주지 않을 정도라고 말한다. 이들의 말이 곧 그룹 총수의 뜻으로 해석되던 과거 그룹 회장실이나 종합기획실 시절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실제는 과거와 거의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음이 이번 현대그룹 경영권 다툼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기본적으로 정몽구-몽헌 회장 형제간 경영권 다툼을 촉발시킨 현대증권 이익치회장 인사는 현대증권 주총과 이사회가 결정할 사안이었다. 그럼에도 구조조정위원회가 현대증권 인사에 간여하는 듯한 인상을 준 것은 과거 종합기획실 시절처럼 총수의 ‘뜻’을 받들어 계열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한다는 의혹을 살 만했다.
작년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 당시에도 현대 구조조정위원회의 ‘탈선’ 의혹이 제기됐다. 구조조정은 하지 않고 과거 종합기획실 시절과 마찬가지로 ‘오너 재산관리’나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던 것. 물론 형식적으로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최고 책임자는 이익치 현대증권회장이었다.
그러나 당시 현대그룹 안팎에서는 박세용 당시 구조조정위원장(현 인천제철 회장)이 어떤 식으로든 간여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심지어 이익치회장이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만 뒤집어씌우려고 하는 박세용원장과 심하게 다퉜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이를 계기로 그렇지 않아도 라이벌 관계였던 두 사람이 ‘적대적’ 관계로 발전했다는 것.
구조조정본부가 오너 재산관리를 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는 것은 현대그룹뿐만 아니다. 삼성그룹이나 LG그룹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그룹의 경우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집요하게 문제삼고 있는 이건희회장 아들 재용씨에 대한 변칙 증여를 통한 경영권 승계 역시 구조조정본부가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의 경우도 최근 구조조정본부의 ‘활약’에 힘입어 구본무회장과 허창수 LG정유 부회장 등 오너 일가가 막대한 자본이득을 올리기도 했다. 코스닥 등록을 앞둔 LG홈쇼핑 주식을 작년 4월 LG정보통신과 LG캐피탈로부터 매입해 올 1월 LG홈쇼핑의 코스닥 등록과 함께 엄청난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게 된 것.
물론 현대 삼성 LG SK 등 4대 그룹의 구조조정본부가 구조조정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등 본래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가 정부와 재계의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작년 말 정부의 가이드라인인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떨어뜨릴 수 있었던 것도 구조조정위원회의 노력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조조정위원회 임원들은 이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작년 말 인사에서 모두 한 직급씩 승진하기도 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도 “구조조정본부의 강력한 의지가 없었다면 구조조정이 안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 계열사 사장의 경우 단기적인 경영 목표 달성에 급급할 뿐 아니라 자신의 이해관계도 걸려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만 맡겨 놓았을 경우 구조조정이 제대로 될 수 없었다는 것. 이 관계자는 “가령 계열사 사장에게 맡겨놓았을 경우 그 회사 매각이 제대로 이뤄지겠느냐”고 반문했다.
SK그룹 관계자도 SK그룹의 경우 현대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SK그룹 구조조정본부가, 대주주인 정주영명예회장의 독단 경영을 뒷받침하는 기구로 비치고 있는 현대 구조조정위원회와 똑같은 기능과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해라는 설명이다. 과거 경영기획실 시절에도 계열사에 대한 지원과 협조 역할에 충실했고, 지금도 구조조정 업무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것
. LG그룹도 구조조정본부가 원래 목적에 충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구본무회장 스스로 대표이사로 등재돼 있는 화학과 전자 이사회에는 해외출장 등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참석하는 등 이사회 중심 경영이 정착돼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본부는 외자유치나 재무개선 등 구조조정 업무만 하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본부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은 재벌들이 그룹 회장이라는 상법에도 없는 제도를 현실적으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현대그룹 경영권 다툼은 재벌 총수의 경영 전횡 앞에서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포함한 그동안의 재벌개혁 조치들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를 실증해주었다. 이사회나 사외이사가 아무런 견제장치가 되지 못했고, 구조조정을 위해 폐지했다던 종합기획실이 되살아난 듯한 인상을 주었던 것.
결국 정부의 재벌 개혁에도 불구하고 재벌 ‘체제’가 실제로 존재하는 한 구조조정본부의 운명은 바뀌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재벌 회장이 존재하는 한 과거 그룹 회장실이나 종합기획실은 아무리 정부가 폐지하라고 해도 오히려 음성적인 형태로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총수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이 더 시급하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