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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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구두-황토구두 들어 보셨나요?”

‘발 모시기 산업’새 트렌드 부상…화장-마사지는 기본, 질병퇴치용 맞춤구두까지

  • 입력2006-02-03 13: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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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차구두-황토구두 들어 보셨나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엔지니어링과 예술의 걸작품”이라고 극찬했던 인간의 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은 그동안 얼굴 성기 손 등 다른 신체 부위에 비해 천대받는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가 GNP 1만달러를 넘어서는 고소득 시대를 맞으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백화점, TV홈쇼핑, 인터넷 전자쇼핑몰에 발과 관련된 상품이 쏟아지면서 ‘발 모시기 산업’이 21세기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는 것.

    미용과 패션의 중심지 이화여대 앞. ‘얼굴 화장’뿐만 아니라 ‘발 화장’도 유행의 한 흐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보디숍 이대점 매장의 발 전용 화장품 코너. 발 스프레이, 발 로션, 레그(Leg)젤 등 한 번 뿌리면 발냄새를 억제하고 피곤함을 풀어주는 기능성 제품에서 페퍼민트 오일이 함유된 마사지 전용제품도 있다. 발 화장품이 놓인 진열대에는 발 마사지를 위한 나무 롤러와 발바닥 각질 제거를 위한 천연경석 등 10여 가지 발 미용을 위한 보조기구도 눈길을 끈다.

    발 관리 전문사이트 속속 등장

    백화점 목욕용품 코너와 발 마사지센터에서도 발 전용 화장품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주로 수입에 의존하는 영국, 독일, 미국산 발 전용 제품으로 냄새 제거는 물론 습기와 무좀 방지를 위한 발 스크럽, 발 파우더까지 나왔다.

    신세계백화점 목욕용품 판매코너 양미라씨는 “발 전용 화장품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하지만 한 번 써본 사람은 종류를 늘려서 계속 구입한다”며 “젊은 직장인과 중년층 부인들의 선호도가 높고, 특히 여름철에 잘 나간다”고 덧붙인다. 인터넷에는 발 관리 용품 전문 판매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베스트스텝(www.bestep. co.kr), 식스터스(www.foots.co.kr), 풋케어(www.footcare. co.kr), 필(www.fil.co.kr) 등 전자쇼핑몰에서는 발 건강을 위한 지압양말, 신발 깔창, 효도신발 등의 일상용품에서 걸음걸이나 발 모양 교정기구까지 수백 가지 발 관련 상품을 다룬다. 이들은 주로 독일, 미국에서 건너온 수입품. 이밖에 ‘김수자 발관리’ ‘문혜영 발관리’ 등 사이버 발마사지센터도 고객상담을 통한 회원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 나라 제화 3사 가운데 엘칸토와 에스콰이어에서는 기능성 구두를 생산하고 있다. 지난 1989년 마그네틱, 자석 등을 이용해 정전기 방지 구두를 선보였던 에스콰이어는 현재 녹차구두, 황토구두에 이어 참숯구두와 키토산 구두를 내놓은 상태. 구두 진열대에 검정 숯도 함께 내놓아 소비자들의 시선 끌기에 바쁘다. 각 기능성 구두의 가격은 일반구두보다 1만∼2만원 더 비싼 10만∼11만원 선.

    탈취, 방취 기능 보강을 위해 녹차의 타닌산 성분을 활용한 녹차구두의 경우 엉뚱한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평소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아 ‘꼴통’으로 통하는 이 회사 디자이너가 사무실에서 마시던 녹차팩을 세안에 재활용해 나름의 효과를 얻었다. ‘녹차가 얼굴에도 좋으니 구두에 넣고 다니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떠올려 신발 밑창에 얼마간 녹차팩을 넣고 다녔다. 이후 녹차가 발냄새 제거에 효과가 있다는 경험에 기초해 녹차구두를 만들어보자고 회사에 제안, 기능성 구두 시리즈가 탄생한 것.

    ㈜에스콰이어 경영전략팀 김문일씨는 “21세기 산업 트렌드 가운데 하나가 ‘자연으로의 회귀’라는 점에 착안해 신소재 개발보다는 자연소재와의 접목을 시도한 결과”라며 “한 해 20만 켤레의 기능성 구두를 생산하고 있는데, 2000년대 경영전략의 일환으로 쑥, 머드 등을 활용한 기능성 구두를 더욱 다변화 할 계획”이라고 한다.

    자연소재 기능성 구두가 일부 항균, 탈취기능에 역점을 두고 대량생산체제를 갖춘 것에 비해 당뇨병, 류머티스 관절염 등 발 치료를 통한 질병 퇴치를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맞춤구두도 있다.

    강남구 양재동 ㈜한국아펙스 사무실. 이곳에는 병원 재활의학과, 정형외과 의사의 진단서를 든 환자들이 문을 두드린다. 수술하지 않고 발과 몸의 기능을 되살리거나 평발, 무반외지증을 보완하기 위해 찾는 손님들이다.

    한상범사장은 “10년 전 제약회사 중역을 지내다가 ‘발 연관 산업이 뜬다’고 예상돼 당장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전문가한테 조언을 구했더니 ‘발산업은 국민소득 1만달러가 넘어가야 시장성이 있는 사업이라며 그때까지 절대 하지 말라’고 반대하더군요. 그래서 GNP 1만달러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지난 96년에야 발 사업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발 사업은 아이템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봅니다.”

    미국에 본사를 둔 한국아펙스는 신발제작에 필요한 깔창, 패드 등의 소재를 전량 수입, 90% 의사처방에 기초해 주문제작한다. 소재에 따라 신발 가격은 천차만별인데 당뇨병 환자를 위한 신발의 경우 깔창 하나에 30만원이 넘는 것도 있고, S그룹 회장 손자는 100만원이 넘는 신발을 해마다 서너 켤레씩 맞추기도 한다고.

    신세계백화점 신관 1층 구두전문관에는 즉석에서 고객의 발 모양을 떠서 발 교정판을 찾아주는 기능성 밑창 맞춤점 ‘알즈너’가 있다. 독일 의사 알즈너가 창안한 플라스틱 소재의 신발 밑창(개당 20만원)은 직립관절의 균형을 잡아주고 발의 통증을 없애는데 활용된다. 하이힐 착용으로 인한 발의 기형과 통증을 호소하는 중년부인들이 주요 고객으로 수입판매원 성신아르텍산업이 발 교정판 판매를 통해 지난해 벌어들인 매출액은 약 3억원. 올해 매출액은 이보다 10배 많은 30억원 이상을 내다보고 있다.

    이처럼 발과 관련한 화장품, 기계, 신발산업이 전문화 다양화를 꾀하고 있는 가운데 이미 96년을 전후해 발 마사지센터, 발 마사지 교육사업도 번창 일로를 달리며 발 연관 산업의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오약석신부발건강법 국제교류협회 백오현회장은 “지난해 파악된 발 마사지센터는 전국적으로 1000군데가 넘는다. 대구만 해도 70군데의 발 마사지센터가 있고, 한 업소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어림잡아 월 500만원을 넘을 것”이라고 귀띔한다.

    사회복지시설 ‘사랑의 전화’에서도 ‘발관리취업정보대학’을 개설, 발반사자격인증시험제도를 실시해 발 관리사를 양성하는가 하면 해마다 중국 한방주발건강관리협회 연구원 등을 초청해 중국 정통 발 마사지 강연회를 연다. 또 발의 중요성을 일반에 홍보하기 위해 ‘예쁜 발 건강한 발 콘테스트’를 개최하고 있다. 대형서점에는 건강한 발 관리를 소개하는 전문잡지 ‘월간 발 건강’‘발 자기진단치료법 163가지’ ‘발을 만지는 여자’ 등의 전문서적도 출간돼 발에 대한 세간의 뜨거운 열기를 증명해준다.

    발 마사지 등의 민간분야 못지 않게 발과 관련된 의학 분야도 전문화-차별화되고 있다. 미국은 ‘안경사’처럼 약 4500명의 ‘발 치료사’(Pedorthics)들이 활발하게 활동한다. 국내에는 이렇다 할 전문자격증제도가 없는 실정이지만 외국에서 공부한 뒤 국내에서 발과 발목치료만 전문으로 하는 풋닥터가 늘고 있는 것도 최근의 현상. 국내 풋닥터 1호 이경태박사가 있는 노원을지병원 족부정형외과를 비롯해 한양대 재활의학과 족부변형클리닉 박시복, 조선대부속병원 김현철, 강남성모병원 정형외과 주인학 등이 대표적인 풋닥터들이다.

    건강을 중요시하는 일반인들의 의식 확대, 국민총생산 1만달러가 넘는 소득의 증대, 노령 인구층의 증가로 발 연관 산업은 앞으로 비아그라, 발모제 못지 않게 21세기 주력산업으로 급성장할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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