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맹 상사가 여직원에게 디스켓을 들고 와 출력을 부탁한다. 여직원은 “바쁜데 직접 하세요! 그 나이 될 때까지 컴퓨터도 못 다루시면 어떡해요”라고 쏘아붙인다. 모 만화잡지에 연재중인 ‘체리체리 고고’의 한 장면. 현실세계에서 이 정도 ‘하극상’이 벌어질 리야 없겠지만, 이 장면을 보고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상사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컴맹 상무, 과장으로 강등
자고 나면 업그레이드되는 디지털 혁명의 속도에 ‘어어’ 하는 사이 ‘퇴물’로 전락한 자신을 확인하며 당혹스러워하는 넷맹들이 적지 않다. 특히 40, 50대 비컴퓨터 세대는 갑자기 도래한 인터넷 세상에서 문맹자가 된 느낌을 갖는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한결같이 인터넷 강박증을 겪는다.
기업체 간부인 이모씨(50)는 “전자결제가 도입된 뒤 꼭 필요한 방법만을 익혀 사용하고는 있지만 정서적으로 적응이 안된다”고 말한다. 특히 “아랫사람이 서류를 가져오면 결재하던 시스템과 달리 매일 스스로 결재란에 들어가야 하는데, 깜빡 결재를 잊을까봐 뭔가 쫓기는 기분”이라고 호소한다.
세무서에서 일하는 공무원 이모씨(58)도 인터넷 블랙홀 세대. 지난해 구조조정을 피하기 위해 컴퓨터 시험을 준비하느라 몇 개월간 굳어진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드려야 했던 그는, 한 차례 떨어지는 수난 끝에 간신히 시험에 통과했다. 그러나 ‘넷’과 관련해서는 전자결재 방법만 달달 외워 사용할 뿐이다. 올해 정년퇴직을 앞둔 그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연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라고 말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여기 저기서 ‘컴맹 퇴치’ ‘넷맹 탈출’이란 구호가 들려온다. 컴맹-넷맹은 이제 쥐나 바퀴벌레처럼 ‘퇴치의 대상’으로 취급되는 현실이다. 컴맹은 이력서조차 내밀 수 없고, 지난해 한 지방중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나서 컴맹 교사 퇴출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다. 경북의 한 수협에서 컴맹 상무를 과장으로 강등시키는 파격인사를 단행, 적지 않은 충격을 주기도 했다. 군대에서는 장병교육의 화두가 ‘문맹퇴치’에서 ‘컴맹퇴치’로 바뀐 지 오래다.
이러한 ‘대세’는 평생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에게도 압박감을 준다. 회사원 지모씨(40)는 얼마 전 칠순을 넘긴 아버지가 “나도 인터넷을 배워야겠다”며 방법을 물어 와 당황했다고 말한다. “신문도 구독하지 않는 어른인데, 인터넷을 모르면 큰일난다는 식의 여론에 자극받으신 거죠.” 인터넷을 하려면 컴퓨터와 모뎀 등을 장만해야 한다며 단념시켰지만 뭔가 서운해하시는 느낌이 역력했다는 게 지씨의 말.
실제로 인터넷을 제대로 못다루면 대화에서도 소외되는 현실이다. ‘O양 비디오’나 영화 ‘거짓말’이 인터넷망을 통해 돌아다녀도 다운로드받는 법을 제대로 모르면 무용지물. 회사원 이모씨(34)는 “다운로드 방법을 몰라 안타까워하는 주변 사람들을 위해 강연회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고 말한다.
가정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주부 정미선씨(41)는 자신이 “컴퓨터 과부 신세”라고 한탄한다. 저녁마다 남편과 아이들이 컴퓨터 앞에 모여 있는 사이 자신은 TV 보는 것밖에 할 일이 없다는 것. 요즘 들어서 는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의 숙제에도 인터넷에서 자료찾기 등이 들어 있어 더욱 고민이다. 그런가 하면 주부 서화진씨(33)는 친구들 사이의 대화에 끼지 못해 소외감을 느낀다고 토로한다. “인터넷 쇼핑으로 뭘 싸게 샀다는 등, 홈 트레이딩으로 얼마를 벌었다는 등의 얘기에 낄 수가 없는 거예요.”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이용되는 대표적인 경우는 사이버 주식거래. 5년 전부터 주식투자를 해온 주부 박향숙씨(45).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 객장 영업사원에게 전화를 해 거래를 부탁하는 방식을 고수하던 그는 “사이버 주식거래를 하는 조카가 절반도 안되는 거래 수수료를 낸다는 얘기를 듣고는 컴퓨터를 배울 결심을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막상 컴퓨터를 배우기로 마음먹어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서화진씨의 경우 “문화센터 컴퓨터 강좌에 등록해봤지만 2개월 코스를 절반도 못채우고 포기했고, 수백페이지에 달하는 인터넷 교습 서적을 몇 권이나 사보았지만 두 번 좌절하는 계기만 됐을 뿐”이라고 한다.
가까스로 넷맹의 단계를 벗어난 사람도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디지털혁명의 속도에 강박증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 평소 이메일을 사용하고 검색엔진을 이용해 필요한 정보를 찾기도 하는 광고회사 간부 정호림씨(42)는 “‘내가 아는 것은 별 게 아니다. 뭘 더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고백한다. 특히 “신문 경제면이나 정보통신면을 보면 뭐가 뭔지 통 알 수가 없고, 나만 처지는 것 같아 초조하고 불안하다”는 얘기다.
연세대 심리학과에서 박사과정중인 반세범씨(34)는 “넷맹 탈출만으로는 결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요즘 대학가에서는 이메일을 쓰고 정보검색을 하는 수준을 넷맹이라 부른다. 적어도 자신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관리하는 수준이 돼야 ‘인터넷을 안다’고 명함이라도 내민다”는 것.
사실 넷맹에서 벗어나는 것과 디지털혁명의 물결을 자유롭게 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 소위 ‘386세대’라는 이모씨(35). 동창회에 나가면 상대적 박탈감에 속이 쓰리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비슷한 처지였던 친구들이 스톡옵션이다 억대연봉이다 하는 걸 보면 문과 출신인 나는 낙오자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는 것. “정말 극소수 골드칼라와 대다수 하급 노동자로 분류되는 20대 80의 사회가 왔다는 게 실감난다”는 그는, 언론에서 떠드는 21세기 최고 인기 직종은 모두 인터넷과 관련된 것들이고, ‘벤처’나 ‘인터넷’자가 들어간 기업의 주가만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현실 앞에서 ‘인터넷을 모르면 죽는다’는 현실의 냉혹함을 절감한다고 한다.
인터넷 강박증은 영어에 대한 강박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포털사이트 솔루션 웹브라우저 웹진 자바 인트라넷 html IT CP…’ 듣기에도 현란한 인터넷 관련 용어들은 모두 난이도 높은 영어로 돼 있어 넷맹들의 기를 죽이기 일쑤다. 미국의 한 조사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인터넷에 저장된 정보의 80%가 영어. 고려대 언론대학원 오택섭원장은 “영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인터넷이란 장님 코끼리 만지기 격”이라고 지적한다.
흔히 거론되는 인터넷 중독증도 실은 강박증의 일종. 회사원 장모씨(37)는 회사 전체의 통신회선이 다운돼 인터넷을 쓰지 못하는 몇시간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더라고 고백한다. “일상 업무에는 별 지장이 없는데도 그런 증상이 찾아오는 게 참으로 이상했다”는 것.
작은 무역업체를 운영하는 정모 사장(45)의 경우는 정도가 더 심하다. 주로 이메일로 거래처와 교신하는 그는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중요한 이메일이 와 있는데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 자다가도 일어나 컴퓨터를 켤 정도라고. “거래 회사가 다른 회사에도 같은 오퍼를 했을텐데 제때 이메일을 확인 못해 거래처를 놓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는 설명이다. 결국 그는 정신과를 찾았고 ‘인터넷 강박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영동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김찬형박사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디지털 혁명이 급속한 변화를 가져왔고, 이 변화에 대한 적응도에 따라 성공의 척도가 극에서 극으로 갈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특히 인터넷 시대의 화두는 속도인데, 바로 이 속도가 성공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 “두뇌회전이 빠르고 포기가 빠르며 단순한 성격인 사람들이 인터넷 시대에 잘 적응하는 반면, 생각이 깊고 신중하며 꼼꼼한 사람들, 특히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일일이 고민하는 사람들은 멀미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 이란 설명이다.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획득해 효율적으로 활용하는지가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이란 점은 이제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한글과컴퓨터 전하진사장은 “인터넷 강박증의 가장 좋은 해소방법은 정면돌파, 즉 배우는 것”이라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즐기라’는 게 그의 조언. “인터넷을 출세수단이나 승진과정의 일환으로 여기지 말고, 게임이건 오늘의 운세건 본인이 재미를 느끼는 분야부터 하다보면 주변 것들도 저절로 익히게 된다”는 것이다.
디지털시대에 인터넷 강박증 환자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을 모른다고 좌절할 일은 결코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컴퓨터가 있고 조금이라도 사용할 줄 안다면 마우스를 클릭하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해보라. 정보의 바다로 가는 길이 활짝 열릴 것이다.
컴맹 상무, 과장으로 강등
자고 나면 업그레이드되는 디지털 혁명의 속도에 ‘어어’ 하는 사이 ‘퇴물’로 전락한 자신을 확인하며 당혹스러워하는 넷맹들이 적지 않다. 특히 40, 50대 비컴퓨터 세대는 갑자기 도래한 인터넷 세상에서 문맹자가 된 느낌을 갖는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한결같이 인터넷 강박증을 겪는다.
기업체 간부인 이모씨(50)는 “전자결제가 도입된 뒤 꼭 필요한 방법만을 익혀 사용하고는 있지만 정서적으로 적응이 안된다”고 말한다. 특히 “아랫사람이 서류를 가져오면 결재하던 시스템과 달리 매일 스스로 결재란에 들어가야 하는데, 깜빡 결재를 잊을까봐 뭔가 쫓기는 기분”이라고 호소한다.
세무서에서 일하는 공무원 이모씨(58)도 인터넷 블랙홀 세대. 지난해 구조조정을 피하기 위해 컴퓨터 시험을 준비하느라 몇 개월간 굳어진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드려야 했던 그는, 한 차례 떨어지는 수난 끝에 간신히 시험에 통과했다. 그러나 ‘넷’과 관련해서는 전자결재 방법만 달달 외워 사용할 뿐이다. 올해 정년퇴직을 앞둔 그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연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라고 말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여기 저기서 ‘컴맹 퇴치’ ‘넷맹 탈출’이란 구호가 들려온다. 컴맹-넷맹은 이제 쥐나 바퀴벌레처럼 ‘퇴치의 대상’으로 취급되는 현실이다. 컴맹은 이력서조차 내밀 수 없고, 지난해 한 지방중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나서 컴맹 교사 퇴출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다. 경북의 한 수협에서 컴맹 상무를 과장으로 강등시키는 파격인사를 단행, 적지 않은 충격을 주기도 했다. 군대에서는 장병교육의 화두가 ‘문맹퇴치’에서 ‘컴맹퇴치’로 바뀐 지 오래다.
이러한 ‘대세’는 평생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에게도 압박감을 준다. 회사원 지모씨(40)는 얼마 전 칠순을 넘긴 아버지가 “나도 인터넷을 배워야겠다”며 방법을 물어 와 당황했다고 말한다. “신문도 구독하지 않는 어른인데, 인터넷을 모르면 큰일난다는 식의 여론에 자극받으신 거죠.” 인터넷을 하려면 컴퓨터와 모뎀 등을 장만해야 한다며 단념시켰지만 뭔가 서운해하시는 느낌이 역력했다는 게 지씨의 말.
실제로 인터넷을 제대로 못다루면 대화에서도 소외되는 현실이다. ‘O양 비디오’나 영화 ‘거짓말’이 인터넷망을 통해 돌아다녀도 다운로드받는 법을 제대로 모르면 무용지물. 회사원 이모씨(34)는 “다운로드 방법을 몰라 안타까워하는 주변 사람들을 위해 강연회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고 말한다.
가정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주부 정미선씨(41)는 자신이 “컴퓨터 과부 신세”라고 한탄한다. 저녁마다 남편과 아이들이 컴퓨터 앞에 모여 있는 사이 자신은 TV 보는 것밖에 할 일이 없다는 것. 요즘 들어서 는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의 숙제에도 인터넷에서 자료찾기 등이 들어 있어 더욱 고민이다. 그런가 하면 주부 서화진씨(33)는 친구들 사이의 대화에 끼지 못해 소외감을 느낀다고 토로한다. “인터넷 쇼핑으로 뭘 싸게 샀다는 등, 홈 트레이딩으로 얼마를 벌었다는 등의 얘기에 낄 수가 없는 거예요.”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이용되는 대표적인 경우는 사이버 주식거래. 5년 전부터 주식투자를 해온 주부 박향숙씨(45).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 객장 영업사원에게 전화를 해 거래를 부탁하는 방식을 고수하던 그는 “사이버 주식거래를 하는 조카가 절반도 안되는 거래 수수료를 낸다는 얘기를 듣고는 컴퓨터를 배울 결심을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막상 컴퓨터를 배우기로 마음먹어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서화진씨의 경우 “문화센터 컴퓨터 강좌에 등록해봤지만 2개월 코스를 절반도 못채우고 포기했고, 수백페이지에 달하는 인터넷 교습 서적을 몇 권이나 사보았지만 두 번 좌절하는 계기만 됐을 뿐”이라고 한다.
가까스로 넷맹의 단계를 벗어난 사람도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디지털혁명의 속도에 강박증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 평소 이메일을 사용하고 검색엔진을 이용해 필요한 정보를 찾기도 하는 광고회사 간부 정호림씨(42)는 “‘내가 아는 것은 별 게 아니다. 뭘 더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고백한다. 특히 “신문 경제면이나 정보통신면을 보면 뭐가 뭔지 통 알 수가 없고, 나만 처지는 것 같아 초조하고 불안하다”는 얘기다.
연세대 심리학과에서 박사과정중인 반세범씨(34)는 “넷맹 탈출만으로는 결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요즘 대학가에서는 이메일을 쓰고 정보검색을 하는 수준을 넷맹이라 부른다. 적어도 자신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관리하는 수준이 돼야 ‘인터넷을 안다’고 명함이라도 내민다”는 것.
사실 넷맹에서 벗어나는 것과 디지털혁명의 물결을 자유롭게 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 소위 ‘386세대’라는 이모씨(35). 동창회에 나가면 상대적 박탈감에 속이 쓰리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비슷한 처지였던 친구들이 스톡옵션이다 억대연봉이다 하는 걸 보면 문과 출신인 나는 낙오자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는 것. “정말 극소수 골드칼라와 대다수 하급 노동자로 분류되는 20대 80의 사회가 왔다는 게 실감난다”는 그는, 언론에서 떠드는 21세기 최고 인기 직종은 모두 인터넷과 관련된 것들이고, ‘벤처’나 ‘인터넷’자가 들어간 기업의 주가만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현실 앞에서 ‘인터넷을 모르면 죽는다’는 현실의 냉혹함을 절감한다고 한다.
인터넷 강박증은 영어에 대한 강박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포털사이트 솔루션 웹브라우저 웹진 자바 인트라넷 html IT CP…’ 듣기에도 현란한 인터넷 관련 용어들은 모두 난이도 높은 영어로 돼 있어 넷맹들의 기를 죽이기 일쑤다. 미국의 한 조사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인터넷에 저장된 정보의 80%가 영어. 고려대 언론대학원 오택섭원장은 “영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인터넷이란 장님 코끼리 만지기 격”이라고 지적한다.
흔히 거론되는 인터넷 중독증도 실은 강박증의 일종. 회사원 장모씨(37)는 회사 전체의 통신회선이 다운돼 인터넷을 쓰지 못하는 몇시간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더라고 고백한다. “일상 업무에는 별 지장이 없는데도 그런 증상이 찾아오는 게 참으로 이상했다”는 것.
작은 무역업체를 운영하는 정모 사장(45)의 경우는 정도가 더 심하다. 주로 이메일로 거래처와 교신하는 그는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중요한 이메일이 와 있는데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 자다가도 일어나 컴퓨터를 켤 정도라고. “거래 회사가 다른 회사에도 같은 오퍼를 했을텐데 제때 이메일을 확인 못해 거래처를 놓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는 설명이다. 결국 그는 정신과를 찾았고 ‘인터넷 강박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영동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김찬형박사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디지털 혁명이 급속한 변화를 가져왔고, 이 변화에 대한 적응도에 따라 성공의 척도가 극에서 극으로 갈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특히 인터넷 시대의 화두는 속도인데, 바로 이 속도가 성공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 “두뇌회전이 빠르고 포기가 빠르며 단순한 성격인 사람들이 인터넷 시대에 잘 적응하는 반면, 생각이 깊고 신중하며 꼼꼼한 사람들, 특히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일일이 고민하는 사람들은 멀미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 이란 설명이다.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획득해 효율적으로 활용하는지가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이란 점은 이제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한글과컴퓨터 전하진사장은 “인터넷 강박증의 가장 좋은 해소방법은 정면돌파, 즉 배우는 것”이라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즐기라’는 게 그의 조언. “인터넷을 출세수단이나 승진과정의 일환으로 여기지 말고, 게임이건 오늘의 운세건 본인이 재미를 느끼는 분야부터 하다보면 주변 것들도 저절로 익히게 된다”는 것이다.
디지털시대에 인터넷 강박증 환자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을 모른다고 좌절할 일은 결코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컴퓨터가 있고 조금이라도 사용할 줄 안다면 마우스를 클릭하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해보라. 정보의 바다로 가는 길이 활짝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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