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의 대표적 친일 인사로 꼽히는 춘원 이광수. 그에 대한 동시대 혹은 후세들의 혹독한 타매는 과연 온당한 것인가. 춘원의 의식세계를 되짚어 보면 그가 친일 행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설명되지 않을까. 그리하여 ‘인간’ 이광수에 대한 이해를 한 차원 높일 수 있지 않을까.
뉴욕주립대학 이중오 교수가 ‘이광수를 위한 변명’을 집필한 것은 이런 동기에서였다. 이교수는 지금껏 이광수가 ‘친일=악, 반일=선’이라는 흑백논리 속에서 ‘검은 색’으로 분류됨으로써 그가 남긴 문학사적 ‘공’이 ‘과’에 의해 상당 부분 가려졌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춘원의 친일 행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어린시절부터 겪었던 체험과 친일을 선택하게 된 과정을 다층적으로 분석하고 그의 내면세계 갈등을 찬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춘원은 말년의 저서 ‘나의 고백’에서 “나는 내 이익을 위해서 친일 행동을 한 일은 없다. … 어리석은 나는 그것도 한 민족을 위하는 일로 알고 한 것이었다”고 변명한다. 그는 자신이 친일 행각을 택함으로써 당시 일본이 계획하고 있던 3만8000여명에 달하는 민족 엘리트 말살정책을 막을 수 있었다고 믿는다. 즉, 스스로 명예를 버리고 친일파의 누명을 쓰는 희생을 택함으로써 동포를 핍박에서 건져냈다는 것이다.
이런 이광수의 ‘선택’을, 저자는 ‘춘원의 끝없이 확장된 자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자신을 조선, 조선 민족과 동일시하는 순교자적 영웅심, 이것이 춘원의 한계이고 그의 생을 비극으로 이끌어 가는 원천이다.” 춘원이 이같은 ‘확장된 자아’를 갖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나이 차이가 스무살이나 나는 부모의 부조화적인 모습, 어린 나이에 부모와 사별함으로써 갖게 된 ‘고아 의식’이 증폭시켜준 자아능력과 천재성, 사촌인 운허에게 느꼈던 깊은 열등감, 열세살 나이에 현상범이 된 경험 등이 그것이다. 이같은 독특한 경험이 춘원에게 열등의식과 우월의식을 동시에 심어주면서 그를 평생 과대망상적 비전과 자기도취적 언행에 휩싸여 살게 한 것이다.
저자는 이광수 친일 행각의 사상적 근거로 흔히 제시되는 ‘민족개조론’에 대해서도 많은 지면을 할애해 ‘변명’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열등함’을 자인하고 민족성을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한 ‘민족개조론’은 결코 친일로 경사된 문건이 아니라는 게 저자의 주장. 그보다는 ‘민족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되 격변하는 세계 정세에 발맞춰 나가기 위해 변질되거나 척결되어야 할 나쁜 것을 고쳐 나가자는 애국적이고 긍정적인 텍스트로 읽어야 한다는 요지다.
이같은 주장은 과연 기성 문단에 얼마나 설득력 있게 먹혀 들어갈 것인가. 저자가 내린 결론에의 동의 여부는 차치하고, 그가 ‘의사’로서 채택한 이광수 분석의 틀 자체에 대해서 문단은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추론 과정이 섬세하게 가다듬어 있지 않고 다소 비약된 부분도 눈에 띄는 게 사실이다. 문학 전공자들이 행해온 기존의 춘원 연구의 한계를 상당히 강도높게 비판(심지어 그는 이광수 연구에 관한 한 ‘태두’라 할 수 있는 문학평론가 김윤식을 ‘자신의 편견, 선입견, 단순성을 반성할 줄 모르는 순진한 비평가’라고 폄하하기도 했다)한 이 ‘문외한’의 저작은 적잖은 반발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의 추론 과정과 결론에 동의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 책은 한 인물에 대한 독법이 얼마나 다양한 각도에서 이뤄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뭇 흥미로운 책이다. 게다가 ‘해당 분야 전공자가 아니면 남의 분야에 대해 감히 갑론을박하지 못하는’ 우리네 풍토에 비춰볼 때, 저자의 어쩌면 ‘무모하리 만큼 용감한’ 시도는 매우 신선하고 상쾌하게 받아들여진다.
이중오 지음/ 중앙M&B 펴냄/ 304쪽/ 8000원
뉴욕주립대학 이중오 교수가 ‘이광수를 위한 변명’을 집필한 것은 이런 동기에서였다. 이교수는 지금껏 이광수가 ‘친일=악, 반일=선’이라는 흑백논리 속에서 ‘검은 색’으로 분류됨으로써 그가 남긴 문학사적 ‘공’이 ‘과’에 의해 상당 부분 가려졌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춘원의 친일 행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어린시절부터 겪었던 체험과 친일을 선택하게 된 과정을 다층적으로 분석하고 그의 내면세계 갈등을 찬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춘원은 말년의 저서 ‘나의 고백’에서 “나는 내 이익을 위해서 친일 행동을 한 일은 없다. … 어리석은 나는 그것도 한 민족을 위하는 일로 알고 한 것이었다”고 변명한다. 그는 자신이 친일 행각을 택함으로써 당시 일본이 계획하고 있던 3만8000여명에 달하는 민족 엘리트 말살정책을 막을 수 있었다고 믿는다. 즉, 스스로 명예를 버리고 친일파의 누명을 쓰는 희생을 택함으로써 동포를 핍박에서 건져냈다는 것이다.
이런 이광수의 ‘선택’을, 저자는 ‘춘원의 끝없이 확장된 자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자신을 조선, 조선 민족과 동일시하는 순교자적 영웅심, 이것이 춘원의 한계이고 그의 생을 비극으로 이끌어 가는 원천이다.” 춘원이 이같은 ‘확장된 자아’를 갖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나이 차이가 스무살이나 나는 부모의 부조화적인 모습, 어린 나이에 부모와 사별함으로써 갖게 된 ‘고아 의식’이 증폭시켜준 자아능력과 천재성, 사촌인 운허에게 느꼈던 깊은 열등감, 열세살 나이에 현상범이 된 경험 등이 그것이다. 이같은 독특한 경험이 춘원에게 열등의식과 우월의식을 동시에 심어주면서 그를 평생 과대망상적 비전과 자기도취적 언행에 휩싸여 살게 한 것이다.
저자는 이광수 친일 행각의 사상적 근거로 흔히 제시되는 ‘민족개조론’에 대해서도 많은 지면을 할애해 ‘변명’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열등함’을 자인하고 민족성을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한 ‘민족개조론’은 결코 친일로 경사된 문건이 아니라는 게 저자의 주장. 그보다는 ‘민족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되 격변하는 세계 정세에 발맞춰 나가기 위해 변질되거나 척결되어야 할 나쁜 것을 고쳐 나가자는 애국적이고 긍정적인 텍스트로 읽어야 한다는 요지다.
이같은 주장은 과연 기성 문단에 얼마나 설득력 있게 먹혀 들어갈 것인가. 저자가 내린 결론에의 동의 여부는 차치하고, 그가 ‘의사’로서 채택한 이광수 분석의 틀 자체에 대해서 문단은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추론 과정이 섬세하게 가다듬어 있지 않고 다소 비약된 부분도 눈에 띄는 게 사실이다. 문학 전공자들이 행해온 기존의 춘원 연구의 한계를 상당히 강도높게 비판(심지어 그는 이광수 연구에 관한 한 ‘태두’라 할 수 있는 문학평론가 김윤식을 ‘자신의 편견, 선입견, 단순성을 반성할 줄 모르는 순진한 비평가’라고 폄하하기도 했다)한 이 ‘문외한’의 저작은 적잖은 반발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의 추론 과정과 결론에 동의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 책은 한 인물에 대한 독법이 얼마나 다양한 각도에서 이뤄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뭇 흥미로운 책이다. 게다가 ‘해당 분야 전공자가 아니면 남의 분야에 대해 감히 갑론을박하지 못하는’ 우리네 풍토에 비춰볼 때, 저자의 어쩌면 ‘무모하리 만큼 용감한’ 시도는 매우 신선하고 상쾌하게 받아들여진다.
이중오 지음/ 중앙M&B 펴냄/ 304쪽/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