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노동-대포동 미사일은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름이다. 그러나 누가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북한 미사일 공장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정보가 없다.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귀순자가 소리소문 없이 귀순했다. 97년 북한을 탈출해 만주에 숨어 있다 지난 1월 귀순, 현재 탈북자 동지회보인 ‘망향’지 편집장을 맡고 있는 김길선씨(44)가 바로 그 주인공.
노동과 대포동은 한-미 양국이 붙인 이름이다. 한-미 양국은 미국 군사위성을 통해 함경북도 화대군 노동리(蘆洞里)에서 개발해오는 미사일을 발견하고, 개발지(地)의 이름을 따서 이 미사일을 ‘노동’으로 명명했었다.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대포동(大浦洞)에서 개발돼온 미사일에 대해서는 ‘대포동’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그건 제 이름이 아니었다. 김씨는 “김정일이 북한의 미사일에 붙인 이름은 ‘화성’이다”고 밝혔다.
김씨는 “81년 북한이 소련의 스커드B 미사일을 처음 모방 생산했을 때 붙인 이름은 ‘화성1호’였다. 한국이 노동1호로 부르는 것을 북한의 미사일 개발자들은 ‘화성5호’, 대포동1호는 ‘화성6호’로 부른다”고 말했다. 98년 8월 대포동1호 발사 직후 북한은 인공위성 ‘광명성1호’를 발사했다고 떠들었다. 김씨는 “북한의 이러한 주장은 화성6호 로켓 탑재부에, 탄두 대신 광명성1호라는 인공위성을 달아서 쏘아올린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포동1호 발사 직후 한-미-일 군사 당국은 ‘대포동1호는 노동1호와 스커드B를 철제 트러스(truss)로 연결한 조악한 로켓일 것’으로 추정했었다. 이에 대해 김씨는 “김정일은 화성1호나 2호를 화성5호와 결합하면 인공위성을 쏘아올릴 수 있는 장거리 로켓이 된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강조했었다”고 밝혀, 대포동1호는 스커드B(화성1호나 2호)와 노동1호(화성5호)를 결합한 로켓일 것이라는 한-미-일의 추정이 정확했음을 증명했다.
한국에서는 국방부 산하 국방과학원이 각종 신형 무기를 개발해오고 있다. 반면 북한은 유일 집권당인 노동당의 군수공업부 산하 제2자연과학원이 각종 무기 개발을 담당한다. 김씨는 제2자연과학원 원장은 ‘주규창’이라는 사실도 처음 공개했다. 그는 보다 구체적으로 “제2자연과학원에는 각기 다른 무기를 개발하는 약 50개의 연구소가 있다. 이 중에서 화성 미사일은 ‘권동하’가 소장을 맡고 있는 공학연구소에서 개발한다”고 밝혔다.
북한 무기 개발의 메카인 제2자연과학원은 유사시 한미연합군의 공습을 피하기 좋은 평양특별시 용성구역 용성동과 용추동 사이에 있다. 김씨는 제2자연과학원 단지는 ‘위수지역’으로 지정돼 있어 일반인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한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단지 안에서 생활하는데, 위수구역 경비는 한국군 기무사에 해당하는 인민군 보위부가 담당한다. 제2자연과학원 단지는 일반 과학을 연구하는 평성국가과학원 단지와 연결된다. 이에 대해 김씨는 “제2자연과학원을 일반 연구기관으로 위장하기 위해 평성국가과학원 단지 옆에 건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김씨가 제2자연과학원의 실체에 정통하게 된 것은 그의 출신 성분과 실력 덕분이다. 김씨의 아버지는 제2자연과학원의 보안 업무를 담당하는 보위부 소속 군인이었다. 어머니는 제2자연과학원 산하 금속재료연구소 기사였으므로, 김씨는 위수구역 안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김씨가 김일성종합대 조선어문학부를 졸업하자 제2자연과학원은 ‘성분 좋고 실력 있는’ 그를 ‘제2자연과학출판사’ 기자로 채용했다. 제2자연과학원에서 개발한 무기는 북한의 각 방산업체로 넘어가 생산된다. 방산업체 관리는 노동당 군수공업부 산하 ‘제2경제위원회’가 담당한다. 노동당 군수공업부는 무기 개발기관으로 ‘제2자연과학원’, 무기 생산 기관으로 ‘제2경제위원회’, 그리고 북한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온 ‘영변 핵단지’ 까지 거느리고 있어 명실상부한 최고의 군수 정책 기관이 되고 있다.
제2경제위원회가 관장하는 각종 방위산업체 중 미사일 제조와 관계 있는 공장은 ‘약전’이라는 이름을 붙인 곳들이다. ‘만경대약전공장’처럼 고유명사 다음에 ‘약전공장’이라는 꼬리를 붙이고 있으면 십중팔구는 미사일 조립이나 반도체 같은 미사일 부품 생산과 관련된 공장이라고 김씨는 지적했다.
약전(弱電)은 강전(强電)에 반대되는 말로,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전자’에 해당한다. 지금도 전기-전자 학계에서는 발전기 전동기 변압기 등 강한 전류를 다루는 전기 부문을 강전, 전자회로나 반도체 등 약한 전류가 흐르는 전기 부문을 약전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한국 산업계에서는 약전산업 대신 ‘전자산업’이, 강전산업 대신 ‘중전기산업’이나 ‘중공업’이 주로 쓰여 강전과 약전은 사어(死語)가 돼 버렸다.
“미사일공장은 모두 지하 갱도에”
김씨는 “주 취재 대상이 제2자연과학원이었기 때문에 약전공장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북한의 모든 약전공장들은 유사시 한미연합군이 도저히 공습할 수 없는 지하 갱도 안에 들어가 있다. 북한은 지하 갱도를 수없이 뚫어 놓았기 때문에 한미연합군이 약전공장 위치를 파악한 것으로 추정되면 지체 없이 다른 갱도로 옮긴다. 이런 이유로 북한에서도 핵심 권력층이 아니고는 약전공장의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발사된 화성6호(대포동1호)는 아직 개발중인 무기라, 제2경제위원회가 아니라 제2자연과학원이 관장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화성6호를 시험발사한 화대군 무수단리 기지는 ‘화대농업시험소’라는 위장 명칭을 내걸고 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김씨는 “지난 1월 귀순하면서 탈북 이후 만주에서 헤어져 있던 남편과 딸 등 모든 가족과 함께 서울에 온 것이 행복하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북한의 실체를 너무 모르고 있어 답답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