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권력 지형에 커다란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변화의 시발은 청와대 비서실 개편이다. 박준영청와 대대변인은 11월22일 “김대중대통령은 신당창당준비위 발족식이 열리는 25일 전 내년 총선에 출마할 비서진을 교체, 신당에 참여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최종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김중권비서실장, 김정길정무수석, 장성민국정상황실장 등 3명은 이날 사표를 제출했다.
이들 3인은 오래 전부터 총선 출마가 예정됐던 만큼 갑작스러운 개편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비서실 개편이 당초 내년 1월로 예정돼 있었다가 앞당겨진 측면은 있다. 이는 옷로비의혹사건과 관련해 김정길수석의 부인 이은혜씨가 언론에 부각되고, 자민련 박태준총재도 대통령 보좌진의 잘못을 지적하는 등 겹치는 악재에 따른 ‘정국 수습용’의 성격이 짙다.
김중권체제 21개월은 김실장이 ‘1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시기였다. 정권 초기 김대통령은 김실장을 ‘2인자’라고까지 칭했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대접’에는 대구-경북 지역에 대한 ‘민심 달래기’ 측면이 작용했다. 이와 함께 정권경영경험이 없는 현 정부가 조속히 국정 주도세력으로 자리잡는 데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김실장의 ‘노하우’가 필요한 측면도 강했다. 김실장은 김대통령의 대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정치 문화가 전혀 다른 현 정부에 성공적인 착근을 할 수 있었다. 한화갑사무총장과의 콤비 플레이로 당과 동교동계 중심 구주류의 반발을 적당히 제어할 수 있었고, 비서실 내부로 보자면 김실장-박주선법무비서관-장성민상황실장의 ‘3각 편제’가 김실장 체제를 지탱하는 커다란 축이 되었다. 외환위기 사태를 넘기고 경제가 조속히 안정되는 데는 청와대 비서실의 이런 안정적 체제가 크게 뒷받침된 것이 사실이다.
“김실장이 먼저 개편 요구”
그러나 옷로비의혹사건 이후의 잇따른 악재에 따라 여권 내부에 정국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청와대 보좌진의 정국 대응력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김실장에게도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위기관리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대신해 모든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비서실장으로서 자신의 이미지관리에만 매달렸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심지어 김실장이 ‘개혁의 걸림돌’이라는 극단적인 평가조차 심심찮게 제기돼왔다. 이 때문에 동교동계에서는 일찍부터 청와대 조기개편론을 주장해왔다. 이번 비서실 개편을 놓고서도 청와대 중심의 신주류와 동교동계 중심의 구주류 사이에 미묘한 갈등 기류가 형성된 것이 사실. 동교동측은 은근히 자신들이 주장한 청와대 조기개편론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번 개편은 김실장 스스로 먼저 요구했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실장은 대통령과의 금요일(19일) 조찬에서 김대통령이 총선 얘기를 꺼내자 출마의사를 밝혔고, 토요일에 다시 만나 “이미 출마하기로 결심한 마당에 비서실장 자리에 있는 것이 도움이 안된다”며 사직서를 냈다는 것. 그러나 김대통령은 “좀 더 생각해보자”고 여유를 두었다가, 일요일 오찬에서 사의를 접수하면서 “그동안 어려운 일 많이 했다. 총선에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비서실 개편 시기와 폭 역시 이 자리에서 결정되었다는 것.
국민회의 이영일대변인은 “김실장이 요즘 정무수석 부인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고 하니까 이러다가 비서실 전체가 큰일 나겠다, 잘못하면 모두가 큰 상처를 입겠다는 판단에서 스스로 떠나겠다는 얘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실장의 출마 지역은 경북 청송`-`영덕이나 대구가 될 것으로 보이나 아직 최종결정되지 않은 상태. 김정길수석도 부산과 성남 분당 중에서 아직 결정짓지 못하고 있다. 장성민실장은 서울 강서을(현역의원 한나라당 이신범) 출마가 거의 확정적이다. 당초 함께 바뀔 것으로 알려졌던 김한길정책수석은 청와대에 그대로 남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2기 비서실의 권력 지형이 어떻게 짜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