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초였던가? 연수를 간 아내 때문에 주말을 꼬박 아이들과 놀다 잠이 오지 않아 오랜만에 컴퓨터를 켰다.
‘컴퓨터 바둑’에 접속하고 상대를 찾았다. 맞수(?)가 되어 준 친구가 “그렇게 빨리 두면 실수하지 않느냐”며 슬슬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때로는 장난기 있는 영어로 질문을 던지기에 나도 질세라 콩글리시로 응대했다.
old u? u live? yr job?….
그날은 어쩐지 ‘한 영어’되는 듯했다. ‘접속’이라는 영화도 봤지만, 사실 나는 이런 통신대화는 처음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무척 긴장되고 재미있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일요일 밤 2시부터 4시까지 수다를 떨었다.
남자들이 떠는 수다란…. 결국 “당신 아내가 예쁘냐” “아이들은 몇살이냐” 등등 시시콜콜한 대화가 이어졌다. 내 아내가 ‘한 미모’한다고 하니까, 저쪽은 ‘한 풍부’한다고 해 낄낄거리며 웃기도 했다. 다행히 그 친구는 나와 동갑이었고 말이 잘 통했다. 다음 날, 돌아온 아내에게 ‘색다른 경험’에 대해 보고(?)했다.
“나 친구 사귀었어, 대전에 산대… 마흔하고도 셋, 동갑이야.”
자기 일 아니면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아내가 큰 관심을 보였다. 이번엔 우리 가족이 함께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내 아내를 소개하니, 그쪽도 ‘짝꿍’을 소개한다. 아이들끼리도 인사를 나눴다. 모두 워드가 익숙한 터라, 서로 마우스를 챙기고 자판을 당기며 우린 ‘컴퓨터 수다’를 떨었다. 그것도 매일 밤.
마침내 온라인(online) 미팅이 오프라인(offline) 미팅으로 발전했다. 그 친구가 상경해 광화문 어느 음식점에서 낙지안주와 소주를 실컷 먹고 마셨다. 그 맛은 정말 기가 막혔다.
어느 비오는 일요일, 천안 톨게이트에서 ‘패밀리 미팅’을 약속, 가족을 동반해 함께 만났다. 그런 방식으로는 처음 만났지만 아주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다. 일식집에서 회로 배를 채운 뒤 노래방까지 가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은 컴퓨터 오락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뒤 그집 식구가 우리 집에서 하룻밤 묵었고, 우리도 대전을 방문해 귀빈(귀찮은 빈대?) 대접을 톡톡히 받았다. 여자들끼리 친해지니 관계가 계속 이어졌고, 아이들도 통신만으로 부족한지 지금도 전화통화를 한다.
컴퓨터가 맺어준 또 하나의 인연이었다.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번개팅’이다 뭐다 하는 그런 ‘이상한’ 것 말고 아이들에게도 건전한 컴퓨터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해준 값진 경험이었다. 이것도 산 교육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