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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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즐기는 전통 명주

한정 생산으로 희소가치 높은 데다 맛도 해외 유명 술 못지않아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입력2024-09-12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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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국제주류박람회’에 다녀왔다. 수많은 2030세대가 전통주를 시음하려고 긴 줄을 선 채 기다리는 모습이 무엇보다 놀라웠다. 박람회 참여 브랜드는 150개, 관람객은 2만810명으로 지난해 대비 300% 증가했다고 한다. 인기 주종은 대기를 해야만 구입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빠른 시간 내 소진되는 경우도 많았다.

    전통주는 한번 소진되면 그 후에도 구입을 못 하는 경우가 꽤 많다. 수제로 만들기에 생산량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올 추석 선물로는 어떤 전통주가 좋을까. 자고로 선물은 귀한 것을 드리는 법인데, 귀하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희소성을 의미할 테다. 그런 의미로 희소성 있는 전통주 5선을 해외 유명 주류에 빗대어 소개하려 한다. 해당 제품은 모두 법적 전통주로 인터넷에서 구입할 수 있다. 만약 재고가 없다면 전통주 전문가가 포진한 전통주 바틀숍, 백화점 등에서 진행하는 명절 특별 기획전 등에서 찾아보기를 권한다.

    #조선의 샤토 디켐, 한영석 백수환동주

    한영석 백수환동주(왼쪽)와 청명주 세트. [한영석발효연구소 제공]

    한영석 백수환동주(왼쪽)와 청명주 세트. [한영석발효연구소 제공]

    한 병에 가볍게 100만 원이 넘는 전 세계 최고급 화이트 와인이 있다. 프랑스 보르도에서 생산되는 샤토 디켐이다. 이렇게 가격이 높은 이유는 곰팡이를 이용해 포도에 구멍을 내고, 그 구멍 사이로 포도즙이 농축되기 때문이다. 이런 농축된 포도로 만드니 와인이지만 꿀 같은 달콤함을 지닌다. 이에 견줄 만한 전통주가 있으니 바로 전북 정읍에 위치한 한영석발효연구소가 생산하는 ‘백수환동주(白首還童酒)’다.

    백수환동주는 백발의 노인이 이 술을 마시면 어린아이가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조선시대 편찬된 술 제조 비법서 ‘양주방’에 “(백수환동주) 한 말에 한 기(12년)의 수(생명)를 더한다 했으니 더러운 사람이 배우게 하지 말라”고 기록돼 있다. 이 술을 만드는 한영석 대표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누룩 명인 1호’로 지정된 인물이다. 정읍에서 생산한 최고급 쌀에 녹두누룩을 더해 만든다. 누룩 50일, 술 발효 60일, 숙성 30일을 합하면 제조에만 140일이 걸리는 술이다.

    술은 전체적으로 멜론, 참외 같은 과실향이 풍부하고, 마신 후 잔잔히 올라오는 그윽한 화사함이 매력적이다. 2024년 우리술품평회 약·청주 부분 대상을 수상했다. 알코올 도수는 15도. 현재 조선 실학자 이익이 좋아했다는 청명주와 세트로 19만 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코리안 라이스 위스키, 진맥 오크 라이스

    진맥 오크 라이스. [대동여주도 제공]

    진맥 오크 라이스. [대동여주도 제공]

    “위스키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하기는 매우 어렵다. 국가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곡물로 발효 및 증류하고, 오크통에 담아 3년 이상 숙성시켰다면 기본적으로 유럽연합(EU)과 미주에서는 위스키로 인정받는다. 여기에 알코올 도수가 40도를 넘어야 한다. 한국 전통주 가운데 이 기준에 부합하는 술은 바로 경북 안동 진맥소주의 ‘오크 라이스’다.

    진맥소주는 도산서원 근처에 위치한 아름다운 양조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해당 제품은 진맥소주에서 출시한 최초 오크 숙성 쌀 증류주로, 안동 유기농 쌀과 3년간 라이 위스키(호밀 위스키)를 담았던 오크통에서 숙성시켰다. 일반 위스키와 달리 다크초콜릿 향이 은은하게 풍기며, 알코올의 쓴맛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알코올 도수 45도, 가격 18만 원대.

    #코리아 드라이 진, 마한 빕진 AUTUMN LEAVES

    마한 빕진 AUTUMN LEAVES. [스마트브루어리 제공]

    마한 빕진 AUTUMN LEAVES. [스마트브루어리 제공]

    진(Gin)은 영국을 대표하는 또 다른 증류주다. 단맛을 뺀 런던 드라이 진을 유행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공법은 전 세계적으로 진의 대명사가 됐다. 런던에서 만들지 않더라도 런던 드라이 진이라고 표기할 수 있어서다. 일반적으로 진은 숙성 진행을 잘 안 하는데, 국산 진 중에는 숙성 과정을 거치는 제품이 있다. 바로 오크 숙성 소주 ‘마한오크’ 품절 사태로 유명한 충북 청주의 스마트브루어리가 내놓은 ‘마한 빕진 AUTUMN LEAVES’다.

    SK하이닉스 사장 출신 오세용 대표가 운영하는 이곳에서는 주니퍼베리, 사과, 감초, 당귀, 모과, 오렌지필을 넣어 진 증류주를 만든 후 다시 오크통에서 1년간 숙성을 진행한다. 빕진은 ‘Botanicals in Barrel’의 준말로,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식물이라고 볼 수 있다. 오크통 숙성으로 갈색을 띠어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초콜릿 향, 바닐라 향에 향긋한 허브 향까지 느껴지는 제품이다. 흥미로운 점은 오크통 대부분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제작되는 데 반해, 이곳 오크통은 한국산이라는 것이다. 원재료인 쌀, 오크통까지 모두 한국의 맛이다. 알코올 도수 45도, 가격은 7만 원대.

    #조선 3대 명주 가운데 최고 도수, 이강주 55도

    이강주 55도. [이강주 제공]

    이강주 55도. [이강주 제공]

    조선 3대 명주 가운데 하나인 ‘이강주’는 전북향토무형문화재 6호이자 대한민국 식품명인 9호인 조정형 명인이 빚은 약소주다. 이강주라는 이름은 배 이(梨), 생강 강(薑)인데 배와 생강, 울금, 계피 등을 끓여 증류주에 침출한 것으로, 약 기운을 그대로 담은 술이라고 볼 수 있다. 선조들의 감기 예방용 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 이강주는 알코올 도수 25도지만, 이 제품은 2배가 넘는 55도다. 이렇게 도수 높은 술을 만든 비결은 두 번 증류해 5년간 숙성시킨 데 있다. 배와 생강의 은은하면서도 알싸한 맛이 일품이다. 금잔과 달병 세트 포함 18만 원대.



    #조선의 수정방, 소주다움50 로즈골드

    소주다움50 로즈골드. [미음넷증류소 제공]

    소주다움50 로즈골드. [미음넷증류소 제공]

    한국인에게 중국 대표 백주를 묻는다면 아마도 기내 면세점에서 본 적 있는 수정방이라고 답할 것이다. 수정방의 특징은 풍부한 과실 향으로, 그중 파인애플 같은 향이 대표적이다. 중국 백주 기준으로 이렇게 진한 향을 농향 계열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에서도 이러한 농향과 간결한 맛의 청향을 담은 술이 출시됐다. 경기 파주 미음넷증류소가 내놓은 ‘소주다움50 로즈골드’다.

    소주다움50 로즈골드는 한국 최초 전통주 제조법이 기록된 어의 전순의의 ‘산가요록’에 등장하는 취소주법에 따라 만들어졌는데, 유산균 증식을 최대한 유도하는 발효 방식을 적용해 향미가 다양하다. 여기에 증류를 두 번 진행해 풍미까지 강화했다. 수정방보다 맛이 깔끔하다고 볼 수 있다. 수제 증류소인 미음넷증류소는 제품 출시 2년 만에 증류주 신흥 강자로 주목받고 있다. 해당 제품은 초도 물량이 완판될 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알코올 도수 50도, 가격은 7만 원대.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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